나는 에세이류의 책을 주로 읽는다. 처음엔 그냥 ‘에세이면 다 좋은가보다' 생각했는데, 최근에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서 누군가의 ‘일'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주로 읽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읽은 책을 쓴 사람들은 하는 일이 제각각으로 달랐지만, 대체로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래서 잘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간다. 주로 쉴 때 이런 책을 많이 읽는데, 언젠가는 ‘쉬면서도 남들 일하는 거 보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요즘은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는 선물⏌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일본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가장 재미있다고 느꼈던 건 편집, 디자인, 교정, 인쇄, 제본, 서점 영업, 서점에서의 책 선정,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말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전 과정을 순서대로 구성한 부분이었다. 처음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사들고 온 건, 단순했다. 책을 디자인하고 책의 내용을 편집과 교정하는 사람이 됐는데, 사수가 없고 부족한 건 많다보니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과 관련한 사람들의 책을 보이는 대로 사서 읽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만나게 된 것이었다. 이러다가 업계 사람들의 책은 잘 만들었든 아니든 다 사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유유출판사, ⌜책이라는 선물⌟, 시마다 준이치로 외 9인
“처음엔 누구나 놓쳐. 놓치면서 배우는 거야.” - 무타 사토코 <마루 밑에서> 중에서
마침 책 교정자인 무타 사코토의 <마루 밑에서>라는 글을 읽다 보니,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이제는 몇 번째 교정 중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보고 있는데, 분명 지난 번에는 보이지 않았던 실수가 또 보일 때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을 만큼 어이가 없고 아찔하다. ‘책이 나오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어쩔 뻔 했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꾸짖는다. 교정 선배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책을 교정한다는 것은 오탈자나 오용된 단어, 불필요하게 잘못 들어간 글자만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문장 속에 모순이 없는지, 읽는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올 표현은 아닌지 정확한 고유명사나 숫자가 표기된 것인지 등 여러 각도에서 계속 들여다보고 다듬는 작업을 말한다.
흔히 책을 교정한다고 하면 ‘빨간펜 선생님'을 떠올린다. 틀린 것을 찾아서 빨간색 펜으로 수정해야 할 정확한 표기를 한다고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눈에 잘 띄니까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잘못된 부분을 찾아 수정하는 작업이 한 두번 만으로 끝나지 않고, 나아가 저자에게 교정을 제안해야 하는 작업에서 교정자가 제안하는 것이 모두 ‘답'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때부터는 색에 치우치지 않고 빈 공간에 따로 빼내서 표기하는 정도로 방법을 바꾸게 됐다.
이렇게 보고 또 봤는데도 책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너무 속상하고 의기소침해질 것 같지만, 최대한 실수하는 부분이 없도록 책을 인쇄소에 맡기는 날까지 꼼꼼하게 체크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번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수많은 실수들을 했다. ‘다시는' 하지 않아야 할 실수들을 노션에 하나씩 기록해두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명심에 또 명심을 기하자고 다짐한 것은, 원고 분량에 대한 것이다. 작가로부터 초고를 받아 처음 본문을 앉혔을 때, 다른 챕터들에 비해 유독 분량이 적은 몇 개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작가님께 최소한 00만큼은 더 써주셔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요청드린 것보다 두 배 많은 분량의 원고가 돌아왔다. 주여. 보통은 기획단계에서 몇 페이지 정도의 책을 쓸 것인지 정하는데, 그걸 해두지 않은 탓이었다! 기억하자. 절대 원고 분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하지 말 것! 애초에 어느 정도 두께의, 얼마만큼 분량의 책을 만들 것인지 기획을 해야 한다는 것을.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페이지의 책이 나오게 될 것 같다. 며칠 동안은 정신이 나가있었던 것 같다. 거의 다 앉혔는데, 다시 내용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또 원고를 돌려받아서 또 교정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서점에 갔다. 정말 답이 없으면, 다시 수정해달라고 요청을 하더라도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을 찾아 두께가 있어 보이는 책들은 몇 페이지나 되는지, 두께만큼 책이 무겁지는 않은지 눈으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책이 얇아지는 추세라고 하던데,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 두께만 보고 독자들이 지레 겁먹고 안 읽고 싶어하면 어쩌나.
걱정을 한껏 안고 서점에 갔는데 다행히 자기계발분야나 경제경영서 중에는 꽤나 두께 있는 신간 도서들이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책을 만들 때 흔히 사용하는 ‘모조지'가 아니라면 벽돌책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지난 번 국제도서전에 갔을 때 지업사에서 샘플 종이를 받아두길 잘했다. 이제 진짜 최종적으로 더블 체크만 마치면, 인쇄소로 넘길 수 있겠다. 나의 미숙함을 가득 받아낸 책이 세상에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