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책이 교정하는 단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분량이 더 많아졌다. 다시 읽고 몇 문장을 삭제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게와 두께를 줄여줄 수 있는 가벼운 종이를 찾아야 했다. 이전에 국제도서전에서 명함을 받아둔 지업사에 평량이 가벼운 종이를 취급했던 게 기억이 나, 바로 미팅 약속을 잡았다.
먼저 샘플로 보고 갔던 종이와 유사한 특성의 다른 종이 2가지를 더 볼 수 있었다. 본문제작을 위한 종이를 고를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두 가지였다. 무게감, 그리고 연필로 썼을 때 종이에 걸림 없이 잘 써질 것. 저마다 책을 읽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형광펜으로 밑줄도 긋고, 연필로 떠오르는 생각을 더하기도 하면서 읽는 타입이다. 그래서 나는 책이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는지도 중요하다. 물론 나를 위해 만드는 책은 아니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더 신나서 책을 보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거기에 대표님은 종이가 가진 고유의 색도 고려했다. 이번 책의 본문은 오로지 ‘흑색'으로만 되어있었고, 텍스트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책을 끝까지 완독 하기 위해서는 눈에 피로감이 적으면서 본문을 잘 받쳐줄 수 있는 색이어야 한다고 했다. 세 가지 종이재질을 비교하다가 원래 결정했던 종이를 본문 종이로 결정했다. (결정하는 데는 금액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인쇄소에 내지 종이만 보내고, 나머지는 인쇄소에서 구할 수 있는 종이로 제작을 하기도 하나요?”
사실, 표지나 면지는 일반적인 것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상담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간 김에 더 볼 수 있으면 좋은 거니까, 본문 종이에 어울리는 조합으로 표지와 면지도 추천을 받았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지업사마다 종이에 붙이는 이름이 다르지만 전반적인 종이에 대한 이해도가 있으면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책에 대해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급지가 왜 고급지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견본집을 보여줄 때 대표님과 내가 절로 ‘오와'하고 반응했기 때문이다. 대표님은 처음부터 책에 힘을 주어 만들 생각이 없었다고 했지만, 좋은 종이를 보고서 ‘이걸로 하자’ 했다. 좋은 종이로 만들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겠다.
막상 종이를 정하고 보니, 우리가 사용할 종이들을 이전에 견적 상담을 받았던 인쇄소에서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업사를 찾아갔던 이유와 동일하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건 본문 종이였다. 그래서 지업사에 이 종이로 책을 만들어본 적 있는 인쇄소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로부터 견적과 함께 추천받은 업체는 총 세 곳. 한 곳은 우리가 원하는 종이 그대로 인쇄견적을 보내주었고, 다른 한 곳은 선택한 종이들이 우리 책 사양에 적합하지 않으니 판형을 바꿔 전체적으로 수정을 하든지 아니면 방문해서 종이를 다시 정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맙소사. 결국 내가 가장 마주하기 싫은 순간이 왔다. 대표님이 “혼자라도 다녀와. 결정은 하지 말고, 가서 어떻게 제안하는지 듣고 와.”라고 했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처음 견적 받은 곳에서 그대로 진행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발품을 팔수록, 많이 질문할수록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걸. 어차피 초보인 건 말하지 않아도 들키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그걸 숨기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상대 업체의 기세에 눌려 ‘을'처럼 굴다가 올까 봐 긴장이 됐다. 오늘 오전은 틈틈이 마인드셋을 하는 게 필요하겠다. 견적은 견적일 뿐, 계약이 아니라는 것. 문의하러 가는 거지, 결정을 지으러 가는 게 아니라는 것. 상대 업체도 우리에게 좋을 종이와 견적을 제안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나는 삥 뜯기러 가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