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마쳐야 하는 마감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미춰버려
‘RRRRR’
또 전화가 울렸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건 전화를 걸거나 전화를 받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껏 스스로를 ‘콜 포비아(Call-Phobia)’라고 알고 지냈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을 만큼 전화를 걸고 또 받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긴장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긴장되는 건, 그냥 디폴트다.
올해는 추석과 개천절, 대체공휴일까지 이어진 바람에 연휴가 꽤나 길다. 연휴를 앞둔 다수의 사람들은 ‘연휴 때 어디에 갈까?’ ‘무엇을 하며 보낼까?’ ‘누구를 만날까?’ 등의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러니 연휴가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일이 주어져도 마음이 떠있을 가능성이 높아, 연휴 2~3일 전에 책을 배본해야 할 거라고 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좀 느슨해지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더 서둘러야 할 거라며 업계 경력 30년을 훨씬 넘긴 거래처 형님의 피가되고 살이 되는 팁이다. 문제는 뭐랄까. 갑자기 마감기한이 확 당겨진 듯한 느낌이랄까. 마음이 바빠졌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 땀이 흐르는 듯했다.
덕분에 지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바쁘게 보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이어달리기 하듯 순차적이고 단계적인 것 같으면서, 많은 경우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일들로 연결되어 있다. 배본사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도서번호(IBSN)발급 신청을 했다. 오래 걸리면 일주일도 걸린다는 리뷰들이 가득했지만, 다행히 출판사 발행 번호와 도서번호가 모두 나오기까지 이틀이 걸렸다. 동시에 샘플북을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인쇄가 가능한 인쇄소를 찾았다. 최종적으로 책을 만들기 위해 결정한 종이와 완전하게 같지는 않았지만 홍보에 쓰일 제품촬영이라든지 유통사 MD와의 미팅 자리에 가져갈 견본 정도는 됐기 때문에 더욱 속도를 높이게 됐다.
하아. 사건 사고는 왜 끊이지 않는지. 사이즈를 수정하지 않아서 샘플북을 다시 만들어야 하질 않나, 다시 만든 샘플북을 찾으러 갔는데 다른 곳에 배송을 보내 버리지 않나. 사고가 발생한 것을 알아챈 순간에는 심장이 쫄깃해지는 듯했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정수리로 열이 뻗어 나오는 것 같았다. 머리로 주변의 온도보다 내 몸이 더 뜨거워지는 게 느껴져서, 들고 있던 손선풍기를 정수리에 가져다 찬 바람으로 열을 식혀야 했다. 다행인 것은, 수습가능한 범위의 사고들이었다는 것. 이런 작은 사고 조차 일어나선 안되겠지만, 완전한 책이 나오기 전에 발생한 사고라는 점은 잠시나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보통 인쇄업체에서 책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영업일 기준 8일(넉넉하게는 2주)로 잡는다. 목표하는 추석 연휴 전에 각 서점에 책이 비치되려면 이번 월요일에는 최종 파일이 출력실에 넘겨져야 했다. 꼼꼼하면서도 빠르게 더 점검하고 수정해서 보내고 싶었지만 내게 ‘여러 번'의 기회는 더이상 없었다. 그래서 주말 밤을 새워가며 마지막 한 번의 기회에 꼼꼼히 보고 수정해야했다. 월요일. 업체에 연락해서 최종 견적을 요청했다. 추가로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고, 또 통화를 하고 나서야 파일을 넘길 수 있는 웹하드 정보와 업로드 이후 연락해야 할 담당자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연락만 주고 받았는데 월요일이 끝났다.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화요일. 아침 일찍 다시 파일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웹하드에 업로드했다. 이제 끝이라고 생각해서 폴더명도 ‘최종'이라고 적어 올렸는데, 그게 최종이 아니었다. 누가 그랬는데. 최종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말라고. 그 말이 무슨 얘기인지 왜 나는 이제야 안 걸까. 출력실에서 올려준 확인 파일을 보고, 챕터 사이에 들어갈 간지를 수정했다. 다시 올린 파일을 보고 출력실에서 전화가 왔다. 표지 정렬을 다시 확인해야 하고, 본문에서도 레이아웃으로 넣어둔 라인을 더 여유있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요청사항대로 수정하고 파일을 올렸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인쇄할 표지가 먹 2도인데 지금은 컬러 4도로 되어 있다고. 다른 색이 들어있으면 안되니까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금박을 입히기 위해서는 금박을 입힐 부분을 표시해서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어떻게 해서 보내드려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했더니 색을 다르게 해서 표시해주면 된단다. 알려준 대로 해서 보냈는데 출력실 담당자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렇게 하시면 안되고요. 박이 들어갈 부분을 뺀 표지 한 장, 박만 들어갈 부분을 먹색으로 만든 한 장으로 보내주세요.”라고.
꼼꼼히 확인하고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실수가 이렇게 많다니. 반복되는 수정작업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치만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주시는 게 어디인가! 바로 수정해서 웹하드에 파일을 올렸고, “다시 올렸습니다. 확인부탁드려요.” 전화로 알렸다. “잠깐만요.” 수화기 너머의 담당자님이 말했다. “이제 됐네요.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이제 더이상 수정할 게 없다고 알리는 담당자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는데, 체감하기로는 하루가 몽땅 다 지난 것 같았다. 힘이 다 빠지기 전에 기록해두기로 했다. 다음엔 이런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