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번에 ‘나의 쉼'에 대해 글을 써보자고 주제를 정해놓고도 글이 써지지 않아서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탁탁탁탁. 몇 글자 되지도 않는 글을 적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지우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고 나서야 스스로도 짜증과 답답함이 섞인 걸 알 수 있었다. 더이상 글이 써지지 않아 노트북을 책상 한쪽으로 치워두고 노트를 찾아 ‘왜 휴식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을까?’ 라는 문장을 적었다.
적어 놓은 문장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가 마침내 내가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나 나름 잘 쉬고 있어!”라는 걸 알게 됐다. 대체 하루 중 몇 시간을 쉬어야, 일년에 얼만큼을 쉬어야 합당한 휴식인 걸까.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쉬는지, 무얼하며 쉬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바쁘게 살아가는 듯한 이에게 “넌 언제 쉬어?”, “쉴 때 뭐해?”라고 묻곤 한다. 나또한 오랜 기간 동안 이런 질문을 들어왔고, 또 묻기도 했다. 그때마다 뭐라 답해야 할지 어렵기도 하지만, 왜 그게 궁금한 걸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정말 다른 사람의 다양한 쉼이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보다는 질문하는 스스로가 잘 휴식하고 있는 건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일반적으로 월요일이 힘들다고 한다. 주말을 잘 쉬었지만 아쉬운 마음들을 안고 평소의 루틴으로 돌아오면서 나타나는 저항감 때문인 걸까? 오히려 나는 휴가철이나 명절 연휴처럼 긴 시간 동안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더 힘들다. 일단 ‘쉬어야 하는 기간'이라고 했을 때, 바로 '뭐 하지?' 생각해봐도 탁 떠오르는 해야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쉬는 동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하는 나는 쉬는 것이 이미 글러먹은 것이었나.
여튼, 긴 연휴 동안 국내를 떠나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여행을 간다거나 그동안 못 잤던 잠을 몰아서 잔다거나,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놀이나 취미 생활을 하는 식의 휴식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남들처럼 쉬려고 했을 때 ‘쉰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더 피곤하다' 라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는데, 더 근본적으로는 휴가 기간마다 일탈하듯 루틴을 벗어나는 것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더 큰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것에서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어떻게 휴식을 하고 있었나. 난도가 너무 높지 않은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고양이가 나오는 영상을 보거나, 이부자리를 제대로 해서 잠을 자거나,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거나, 걷고 오거나, 공부하거나 또는 글을 쓰는 것이 있었다. 가짓수로 따지면 10개가 채 되지 않는데 이번 글에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혼자서 하는 휴식만을 옮긴 것이다. 몇 가지는 ‘저게 휴식이라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있으려나.
나에게 휴식은 충전할 수 있는 영역과 회복이 필요한 영역으로 나뉜다. 충전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은 주로 ‘내면'의 것인데, 에너지와 동기(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 해내고 싶은 마음)가 여기에 속한다. 또 회복이 필요한 영역은 내면과 외면을 ‘모두 포함'하는데, 조금더 나눠보자면 체력과 감정이 여기에 속한다. 이를 구분해 놓은 이유는, 쉬려고 한 행동들이 정말 쉼으로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같은 휴식방법을 택하더라도 나의 상태에 따라 정말 ‘쉼'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을 알게됐기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항목을 나누어 분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분류하기까지는 무작정 무언가를 해보고 연결되는 나의 반응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있었다. 한 예로, 출판편집디자인 수업을 듣기 시작한 때가 코로나가 한창 창궐할 때라 5개월 중 3개월 이상을 집에서 수업을 들었다. 50분 수업 후 10분 쉬는 시간. 이 과정이 오전 9시 반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로도가 높아짐을 느꼈다. 그래서 50분 수업이 끝나면 화면을 꺼놓고 휴대폰으로 8분 후 알람을 설정한 뒤 이불을 펴서 누웠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단 8분을 눈감고 휴식해도 카페인과 타우린을 콸콸콸 부은 듯 빠르게 피로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똑같이 잠을 자더라도 이렇게 자는 낮잠은 ‘충전'에 해당된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시간 가까이 나가서 걷는 습관이 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관계없이 늘 걷는다. 이렇게 습관이 되어 있는 걷기는 내게 '충전'의 영역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터져나오는 감정을 다스려야 할 때마다 걸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등산로 입구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 있다. 눈물이 차올라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을 때,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평소와 다른 기분을 느끼면 나가서 걸었다. 평소 걸음보다 천천히, 때론 뛸 것처럼 빠르게. 가장 좋아했던 건 우산을 써야만 하는 비오는 날 새벽 4시 ~ 5시의 시간대에 걷는 것이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우산 아래 숨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길을 걷든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리하면, 이때의 걷기는 나에게 '회복'을 위한 휴식방법에 해당한다.
여튼, 덕분에 지금은 내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휴식의 방법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 난도가 낮은 책(휴식) / 난이도에 관계없이(충전)
드라마, 영화를 볼 때 : 체력과 에너지의 회복
예능을 볼 때 : 충전할 때
고양이 영상을 볼 때 : 진짜 지쳤을 때
1시간 이상 낮잠을 잘 때 : 몸의 피로도가 높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때
30분 이내 낮잠을 잘 때 : 충전할 때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을 1대1로, 4시간 이내로 만날 때 : 충전할 때
1시간 걷기 : 마음의 회복이 필요할 때 or 충전(루틴으로 걸을 때)
15분 걷기 : 집중이 흐트러졌을 때 (충전)
공부할 때 : 충전할 때
글을 쓸 때 : 동기를 충전할 때
나의 몇 안되는 활동들을 통해서 나는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 뿐 아니라, 루틴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덕분에 굳이 새로운 것들을 의도적으로 찾아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쉬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더 잘 쉬고 싶다'는 욕구가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욕구는 지금까지의 휴식이 그에게 제대로 된 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사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굳이 색다른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 내가 휴식하기 위해 택하던 방법들을 나의 상태 또는 상황과 맞춰보려는 시도가 있기만 해도 쉼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휴식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나답게' 휴식하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