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라고 느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책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저 문장의 오탈자나 오류를 수정하고 다듬을 수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출판편집디자인과정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학원에 5개월 동안 다녔는데, 솔직히 학원에서는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주로 활용하는 시각디자인이 9, 인디자인을 활용한 편집디자인은 1의 비율로 다룬다. 5개월 동안 인디자인으로 만들었던 건 매거진 1부가 전부였으니까.
그마저도 학원에 다니기 전에 다이어리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어, 인디자인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던 터라 ‘이 정도만 다룰 줄 알면 되는 건가?’, ‘별 거 아닌데?’라는 망상에 가까운 생각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정작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제대로 배우고 다루기 시작한 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는 건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나 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책 편집자로의 일을 시작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심지어 책 편집자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다수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문장과 책에 대한 애정이 있음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일을 시작해보고 나서 느낀 건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건 디폴트, 그밖에 요구되는 역량들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 편집자들의 책을 사서 읽어봐도, 요구되는 역량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출판시장에서 원하는, 이라고 하기에 거창한가 싶지만, 편집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소통능력이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소통능력은 이야기를 잘 듣고 또 잘 말하는 것이라기보다 일이 기한에 맞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작가를 비롯해 인쇄소, 배본사, 유통사에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잘 말하고 또 이뤄내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출판업은 본디 제조업에 속하기 때문에 ‘납기일'을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과 대화를 잘하는 것을 넘어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기 위한' 소통능력을 중요하게 본다고 느꼈다. 서로가 바쁘고, 물가가 올라서 어렵고,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지만 그런 중에도 기획한 것들이 잘 진행될 수 있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일이니까. 그만큼 전화와 메일,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고, 필요하다고 느꼈던 역량은 종이에 대한 이해도였다.
편집자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보통은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판형과 종이재질도 정한다. 그래야 예산을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하고자 하는 책이 어떤 느낌이었으면 하는지, 어떻게 읽혔으면 하는지에 따라 흑백으로만 제작을 할 건지, 컬러를 사용할 건지, 컬러를 사용한다면 몇 색이나 사용하는지, 또 표지, 면지, 내지에 필요한 종이종류를 고르고 그에 따른 견적을 받아 예산의 범위를 정한다.
종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하고 싶은 것'을 고른다거나 ‘모두가 많이 하는 것'으로만 제작한다면 만들고자 하는 책을 제대로 구현하기까지 다시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지업사에서 판매하거나 무료로 제공하는 종이 샘플북이 있다. 내지, 면지, 표지에 잘 맞는 종이 샘플들을 구비해 놓고 틈틈이 들여다보는 것을 권한다. 일반 종이책에 사용한 지류의 종류를 기록해 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아직 그런 책은 거의 보지 못한 듯하다. 만져만 보고도 ‘이건 무슨 종이네!’ 바로 알 수 있기까지는 아마도 그만큼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편집자로서의 경력이 많은 분들은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제 일의 역량은 ‘기획력'이라고도 했다.
기획도서들 중에서 대박 한 방을 터뜨리는 것들이 왕왕 있기도 하고, 그 경력이 쌓이면 편집자 본인에게도 커리어를 높여 이직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안정적 원고수급을 위해 외서를 번역해서 판매하려는 출판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와 관련한 이유들을 여기저기서 들었는데 이 글에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접어두겠다. 여하튼, 그 역시 한국시장에 노출되지 않은 좋은 원서를 볼 수 있는 눈과 상품으로 제작하고 판매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기획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언제 도서 기획을 하게 될지 모르니 꾸준히 ‘눈'을 길러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번에 내 글에 대한 기획안을 적어보면서 한 번쯤 ‘이게 팔릴 글이 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글쎄. 분명 시장에 없긴 한데, 그렇다고 팔릴만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누군가 ‘팔리는 책'은 편집자가 만들어서 ‘모두가 이 글을 알면 좋겠다'는 강한 염원을 담아서 내놓을 때 이뤄지는 거라고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나란 녀석이 워낙 퍽퍽한 사람이라 염원을 가득 담기 위해서 내가 쓰는 글과 내가 만드는 글에 대한 애정과 확신을 담는 노력이 더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