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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이 Dec 12. 2023

사과병 낫는 방법 아는 사람?


교육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안서를 발송하기 위해 혹은 제안서를 발송하고 나서 확인차원의 콜드콜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콜드콜은 ‘모르는 잠재고객에게 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을 목적으로 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피부로 느낀 콜드콜은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 영업을 위한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 ‘안 해요' ‘됐어요' ‘필요 없네요'의 직접적인 거절뿐 아니라 전화를 받는 수신인의 말투와 한숨소리, 통화 대기 시간까지 모두 ‘거절당하는 과정'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당시에 1시간 통화하고 나면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몸에 담이 올 정도였다.






여전히 사회초년생이던 나는 컴플레인을 받으면 일단 ‘죄송하다'라고 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단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때의 난 뭐가 그렇게 죄송했던 걸까. 고객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불편한 마음을 먼저 알아주지 못해서?


당시 나의 ‘사과병'은 일할 때만 나타나지 않았다. 일상에서도 나는 일단 먼저 ‘미안하다'라고 했다. 엄마랑 다투게 될 땐 죽어도 나오지 않던 말인데 왜 그렇게 쉽게 툭툭 나왔는지. 나의 빠른 사과는 문제의 진위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런 불편감을 느끼는 상황을 빠르게 도망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분위기를 벗어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고, 무조건 사과한다고 해서 유사 상황에 대한 대처하는 역량이 발달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부분들을 그때의 나는 정말 몰랐을까.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팩트'보다 내가 느끼는 ‘불편감'을 지우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고객을, 상대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일하는 연차가 쌓일수록 다행히 나의 ‘사과병'은 호전되는 듯했다. 사과를 안 하게 됐다기보다는, 언제 사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까. 최소한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컴플레인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부터 확인하게 됐다. 어떤 지점에 대한 불편을 호소하는 것일까. 이것을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생각'을 먼저 해보고 대처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조금 더 똑똑하게 일하게 된 느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컴플레인을 오롯이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이 내게 가장 유의미한 변화라고 하고 싶다. 모든 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진짜'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로부터 ‘불편함'을 전해 듣는 것은 능숙해지지 않는다. 더불어 뭔가 고객들과 유대감이 어설프게 형성되어 있다고 느낄 땐 똑똑하게 ‘일'을 하며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걸까. 나의 오피셜 한 대처가 진정성까지 해치는 것은 아닐까. 고객 또는 상대를 위한 마음을 우선하는 게 먼저일까, 그럼에도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먼저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일을 잘하고 싶은데, 그러면 컴플레인이 발생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일까. ‘목적 없는' 컴플레인도 있으니 그건 어려운 걸까. 여하튼 오늘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그대로 글에 담아본다.




진행 중이던 텀블벅 펀딩이 무사히 종료되었습니다.

다음 다이어리는 '시간, 꿈, 여행' 주제 중에서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응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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