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떨리고 작아짐을 느낀다. 이제는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은 아닌 걸까. 심지어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후 잠시 동안 숙연해지는 것이 느껴질 때면 어디 숨을 곳이 없는지 찾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다른 이야기는 떨지 않고 잘한다. 매주 교회에서 퀴즈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예전에는 팟캐스트 고정패널로 참여한 적도 있을 만큼 대화를 포함한 말하기에 능한 편이다. 그런데 왜 유독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울컥하는 마음이 드는 것일까. 심지어 이런 증세(?)가 결국 과호흡으로 이어져 강사생활을 접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나에게 큰 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이다.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해 왔다.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도, 그래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나도 행복감을 느끼길 원한다. 나에겐 '과정에서의 행복'이 다른 것들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들을 많이 탐색하고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내면의 소리에는 부분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게 된다.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왜 내 이야기를 할 때 떨리고 울 것만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그것은 나의 해결되지 못한 완벽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박보영 배우가 여러 채널에 나와서 말했다. 자기에게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거든 집에 있는 금고 안 일기장을 모조리 태워달라며, 친구에게 거듭 부탁한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마저도 부탁할 친구가 없거니와, 행여라도 나의 구질구질하고 때로는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써둔 일기장을 가족 중 누구라도 보게 될까 봐 이미 일기 쓰기를 멈춘 상태였다.
최근엔 스스로에게 가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느껴졌는지, 나의 야기를 어떻게 하면 구구절절 털어놓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흔히 글을 쓰면 감정이 정리된다고 하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물론 단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지만) 상대는 나에게 글로 쓰는 게 처음부터 어렵다고 느껴지면 흐트러진 모습을 다 보일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이 드는 사람들에게 말로 먼저 꺼내 놓으라고 했다.
일기장을 누가 볼까 봐 쓰는 것을 멈춘 나를 보았을 때, 나는 가족조차 그 대상이 아님을 깨닫는다. 문득 스스로 외롭길 자처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들키고 싶지 않은 게 많다. 내가 느끼는 불안과 우울과 분노를 포함해서 좋은 감정까지도. 감정이 요동치지 못하게 자물쇠를 걸어 잠그듯 잘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서 그 감정들이 발효되다 못해 가득 찬 가스가 틈을 비집고 나오려는 상태임을 인지하게 된다.
제작 중인 다이어리를 먼저 써보고 있다. 매일의 기록을 하는 공간에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지표'를 담아두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마음 만족도'와 매일의 감정 단어를 체크하고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개인적인 이유는 그 감정들에 매몰되어 더 깊이 빠져들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잘못'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감정을 들여다보되 거기에 빠져서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지난주, 내 마음 상태를 점수로 표현하지 못했다. 결국 어느 숫자쯤 되는지 정하지 못한 채 한 주를 보냈다.
마음이 불안정함을 인지한 것을 감안하고, 또 앞으로 더 건강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더해서 현재 나의 마음은 6점을 주겠다. 점수, 그게 뭐라고. 그냥 상태를 인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생각하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련다. 10점이 아니라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내 일상이 바스러지지 않으니 괜찮다고.
나에 대한 기록을 통해 '나'를 만나게 하는 자아발견 다이어리 '마음과 나, 두 번째'를 펀딩 중입니다.
펀딩은 11/30까지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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