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의 가장 큰 이슈는 준비 중인 다이어리를 펀딩 사이트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책을 제작할 때와는 다르게 다이어리는 새로 나올 때마다 펀딩 사이트를 통해 먼저 공개해서 알리고 있다. 현재 국내 펀딩 플랫폼으로 알려진 곳은 텀블벅과 와디즈 두 곳이다. 두 채널을 나름 비교해 보니 컬러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디즈는 주로 남성 고객들이, 또 미디어기기나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들을 주로 볼 수 있다. 반면, 텀블벅은 주로 여성 고객들이 이용하고 웹소설 등의 콘텐츠나 문구류 제품들을 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 제품도 대부분 텀블벅 펀딩을 통해 선공개를 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선공개할 때 가장 큰 장점은 제작한 제품(프로젝트)의 시장 반응을 미리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우리가 제대로 시장성을 파악한 것인지 더 큰 시장에, 더 많은 대중들에게 내놓기 전에 검증을 해보는 것이라고나 할까. 생각해 보면 일반 시장보다 더 좁고 뾰족한 고객들이 모인 곳이라서 좋은 반응이 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샘플북도 만들지 않은 상태지만 다이어리 구성과 디자인 작업은 마친 상태다. 그래서 상세페이지는 주로 목업을 활용해서 만들었다. (목업은 제품의 겉과 속이 ‘이렇게 만들어지겠구나!’하고 완성된 예상 이미지를 말한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펀딩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종이 다이어리가 별로 없었는데 연말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갑자기 20개도 넘는 다이어리가 올라와있다. 문득 ‘지금 펀딩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출판 때문에 예정보다 늦어진 상태라 더는 미룰 수 없었다. 휴.
상세페이지를 작업하기 전에 대본을 미리 만들어둔다. 이는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의 맥락과 순서를 정리하기 위함이다. 텀블벅 펀딩은 업로드 전에 이 플랫폼에 적합한 프로젝트인지, 텀블벅에서 정해놓은 기준과 규칙을 잘 지킨 프로젝트인지 심사를 받는다. 심사는 일반적으로 이틀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첫 펀딩이 아닌 경우는 심사 통과에 소요되는 시간을 좀 더 단축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전 펀딩에 대한 데이터가 남아있기도 하고 반려당하지 않기 위해 체크해야 할 부분들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건 팁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펀딩 심사까지 시간이 타이트한 경우에는 공개예정 때 고객들에게 노출되어야 하는 핵심 정보들을 올려두고 상세페이지나 이미지 정도는 공개예정 기간 동안 수정을 해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덕분에 이번에도 공개예정 단계에서 노출해도 충분한 정보들을 먼저 등록했고 펀딩 시작 전에 공개할 자세한 내용들을 디자인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괜히 시간을 번 기분.
작년 하반기에만 3개의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반면, 올해는 출판에 몰입하느라 다이어리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다이어리를 기획하고 만드는 것도, 펀딩 프로젝트를 하는 것도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이 됐지만 현재까지는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들여서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과정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인쇄와 제작부터가 시작이다.
간혹 책에도 잉크 흘림을 발견하게 되면 반품을 요청하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읽는 데 크게 문제가 없는 경우는 대부분 넘어가는 편이다.(사실 이 정도는 출력실에서 ‘사고'로 치지 않아서 출판사가 파본으로 챙기거나 파쇄해야 한다) 그런데 다이어리는 다르다. 모든 페이지가 사용자의 기록으로 채워지다 보니 손톱만 한 잉크 흘림도 ‘대형 사고'일 수 있다. 이전에 인쇄사고를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어서 다이어리를 제작할 때마다 인쇄소에서 넘겨받으면 이틀 꼬박 새우면서 모든 페이지를 점검한다. 심한 때는 파본이 너무 많아서 모두 반송하고 다시 제작했는데 또 파본이 나온 적도 있다. 으악!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지만, 인쇄 제작 후 모든 제품을 점검하는 단계를 앞두면 상당히 예민해지는 걸 느낀다. 부디 이번에는 사고 없이 지나갈 수 있길.
펀딩에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일반 스토어 고객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을 느낀다. 이미 우리 제품에 대한 기대감과 애정도가 높은 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훨씬 심적으로 가까운 느낌이다. 이번에 다이어리를 펀딩 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을 때, ‘우리한테 너무 헌신하느라 본인을 잃어버린 엄마에게 선물할 거예요.’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획 단계에서 생각했던 대상은 아니었는데 나 역시 엄마를 떠올리면서 브랜드의 주 고객층이 아니라고 정말 필요한 사람을 떠올려보지 못한 건 아니었나 생각이 많아진다.
https://link.tumblbug.com/KFdCaXyTH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