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다음 책 원고를 기다리면서 다이어리 제작을 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은 한 달 동안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질문과 템플릿을 구성하는 ‘자아발견 다이어리'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고민해 보게 되는 주제들을 메인 키워드로 정리했는데 일, 관계, 공부, 돈, 마음, 휴식, 습관, 독서, 꿈, 여행, 건강, 시간이 해당된다. 이 중에서 벌써 9개 주제의 다이어리를 만들었고, 그중 두 개의 주제는 두 번 이상 제작했다. (다이어리 중쇄라니)
지금 만들고 있는 다이어리는 ‘마음'을 주제로 하는데 사실 이 주제만 세 번째 만드는 중이다. 종이 다이어리로 시작해서 디지털 다이어리, 그리고 다시 종이 다이어리로 돌아왔다. 우리 다이어리 특성상 다른 키워드 다이어리를 만들다 보니 마음 주제로 처음 만들었던 500부가 다 판매되고 나서도 한동안 ‘재고 없음'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해당 다이어리에 대해 재입고 문의가 계속 이어져 디지털 다이어리로 형태를 바꿔 만들게 됐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 아이패드 전용 다이어리들의 유행이 한창이기도 했고 실물의 재고가 없고 만들고 싶은 템플릿을 원 없이 만들어서 넣을 수 있으니까 우리에게도 좋고 원본 파일을 잘 보관해 두면 원하는 만큼 복제해서 쓸 수도 있고 표지도 여러 가지 버전이 있으니 다양하게 변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종이 다이어리는 언제 다시 나오나요’라는 문의가 계속 이어져 왔다. 솔직히 ‘디지털 다이어리가 더 효율적이고 좋지 않나?’ 생각했는데 ‘나'에 대한 기록만큼은 뭔가 손글씨로, 아날로그 하게 쓰는 걸 선호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결국 다시 세 번째 만드는 다이어리는 종이 다이어리로 제작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같은 주제의 다이어리라고 해도 형태에만 변화를 주지 않는다. 다이어리의 큰 주제를 유지하되 세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템플릿과 질문 구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획을 한다. 그래서 첫 번째 마음 다이어리는 ‘자존감'을,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우울'을, 그리고 지금은 ‘건강한 마음관리'를 작은 주제로 해서 도움이 될 템플릿과 질문들로 채웠다.
처음엔 기획 단계가 너무 막연하고 어려워서 재미가 없었다. 당시 나는 ‘우리가 예상한 대로 사람들이 따라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이 난이도가 과연 적절한 건가?’ 등의 의심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그래서 회의를 진행할 때마다 그게 가능한 거냐며 마치 ‘나를 설득해 보세요' 식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바람에 기획 단계에서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컸던 것 같다.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 그러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재미가 없고 어렵기만 했다. 왜 굳이 번거롭게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주제뿐 아니라, 다른 주제들의 다이어리를 계속 꾸준하게 만들면서 점점 기획의 가장 기본 단계 아이데이션부터 준비하고 시장 조사를 하고, 필요한 내용이지만 기성품 중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들을 우리 다이어리에 녹여내기 위해 제안하기 시작하면서 기획이 재미있어졌다. 나의 안건이 받아들여지고 ‘그 의견 좋은데?’라는 피드백이 쌓이는 것, 그리고 실제 제품으로 제작된 다이어리를 고객들이 사용하면서 좋다는 피드백이 쌓이니 신기하게도 기획하는 것이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만들면서 가장 많이 깨닫는 건, 제작하는 사람이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을 기꺼이 해낼수록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사실 재고가 없는 상태니까 첫 번째 다이어리 그대로 다시 제작해도 무관하다. 하지만 이전 다이어리들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더 보완할 부분들을 찾아 수정하고, 지금 시점에서 마음을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주제로 질문을 구성해서 넣는 것들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는 걸 믿는다.
가장 바라는 것은 우리가 만드는 다이어리를 사용하면서 사용자들이 ‘나'에 대해 기꺼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마주하게 되는 나를 천천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힘을 딛고 1센티미터라도,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하는 힘을 내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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