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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29.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거짓말을 혐오하는 이유.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열여섯 번째

나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혐오한다.

유독 진실과 거짓에 크게 반응하고, 

한 번이라도 나에게 거짓말을 들킨 사람하고는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십육(가명)의 영향이 200%다.


어릴수록 사람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어렸을 때 만나는 가족, 학창 시절 친구들, 선생님이 세상의 전부가 되고

이 좁은 사회 안에서 내 성향과 성격과 가치관이 자리 잡힌다.

14살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십육은 정말이지 나에게 큰 가치관을 만들어 준 친구다.


지금 기억하는 그를 말하자면

그의 집에 가면 원래 벽지가 안 보일 정도로 동방신기의 사진들이 꽉 채우고 있는

동방신기의 열렬한 팬이라는 거.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동생 둘 집안의 가장이지만

그의 가족 중 가장 철이 없다는 거.

또, 사람들에게 주목받기를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꾸미는 것에 굉장히 집착했다.

쌩얼로 절대 밖을 나가지 않았고, 동네 뒷산에 운동하러 갈 때도 꾸안꾸를 유지하려 굉장히 노력했다.

여기까지 지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유독 눈에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매번 기본 한 시간에서 두세 시간을 늦는다는 것과

늘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아직 집에 있으면서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왔다는 아주 사소한 거짓말부터

아예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자신을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드는 큰 거짓말까지.


사실 같은 무리였던 다른 친구들은 이미 이 친구를 진작에 포기하고 한 명씩 떠났다. 

결국 어느새 그의 옆에 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에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고

이 친구의 거짓말하는 습성을 고쳐 사람 만들어야지라는 아주 거만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와 함께하는 7년의 시간 동안 때가 되면 화를 내거나 사정을 하면서 매번 설득했다.

제발 거짓말하지 말라고. 믿음 자체가 사라진다고. 너를 믿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내가 그럴 때마다 정말로 자기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듯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였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슬슬 깨달아갈 때쯤

그 친구와 약속이 잡혔다. 

그리고 십육은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여전히 집이었다.

전화를 해보니 아직 출발도 안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차가 막힌다, 곧 도착한다는 개소리를 해댔다.


그때 난 화가 나기보단 체념을 했고, 처음으로 약속 자리를 파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친구는 두 시간 후에 내 집 앞으로 와 계속 전화를 했지만

난 더 이상 내가 이 친구한테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에 끝을 생각하고 받지 않았다.


그렇게 연락을 안한 한 달쯤 후 난 그 친구가 집착하고 있는 다른 이성인 친구와 

놀다가 십육의 어머니를 우연히 마주쳤다.

사실 십육이 집에 없어도 십육의 가족들이랑 놀려고 그의 집에 자주 갔던 나는

그의 어머니와도 정말로 친한 상태였다. 

어쩌면 십육보다도 더. 

십육의 어머니는 우릴 보고 반가워하시며 같이 밥을 먹고 돌아가셨고, 

그날 저녁 십육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아직까지 사이를 풀지 않아 고민을 하다 겨우 전화를 받은 내게

그는 다짜고짜 그 이성인 친구랑 무슨 말을 했냐고 화를 냈다.


내가 아직 자신한테 화가 났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상황에서 오랜만에 전화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묻는 게 내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사실 그 친구는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기도 한 걸 모르지도 않는데 말이다. 

내가 받아줄 수 있는 선은 이미 넘은지 오래였다.


결국 난 그에게 다신 나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최종 통보를 했다.

당시 난 친구가 나라는 존재보다 더 좋고 소중했으므로

내 인생에 친구를 잃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때였다.

하지만 그는 가능케 했다.


나는 당시에 그가 하는 모든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십육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소모적인 느낌이 자주 들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건 정말 저주다. 


그렇게 난 그 친구를 잃고 꽤나 많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지 말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내 옆에 두지 말자.

시간 개념 없는 사람에게 성의를 가지고 화를 내지 말자.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 부분도 있다.

적당히 넘어가 주고 문제로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도 있었을 거다. 

그때의 나는 호불호가 명확하고, 내 생각과 가치관을 고집하고,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융통성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내 틀에 자꾸 다른 사람을 끼어보고 안 맞으면 상대방을 다시 조립하려 했다. 

정작 나는 누군가에게 맞출 생각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간다면 그와 관계를 끊었을 것 같다. 

십육과 연을 끊고 나서 내 삶이 생각보다 편해지고 인상 쓸 일이 적어지고

허전하지 않고 시원함을 느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나에게 꽤 힘들었던 사람이었나 보다. 


어떻게 보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람 중

나에게 가장 먼저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가끔씩 그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더 잘 살아내고 있기를 바라본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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