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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18.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예쁘고 허무한.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첫 번째

매일 글 쓰는 습관을 잡기 위한 프로젝트로

나는, 내 인생에서 크고 작게 영향을 끼쳤던 99인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사실 기억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내가, 또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 극히 적어 

아싸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99명의 사람들을 과연 얘기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든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99명의 사람들 중 거의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있을 거고, 

얼굴은 기억하나 이름은 전혀 기억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얼굴마저 희미해 신기루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극히 내 주관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모두 까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오늘은 글쓰기 첫날.

내가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사일(가명)이다.

왜 처음으로 사일이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현재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고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와 현재 많이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사일이를 알게 된 때는 약 6년 전이다.

첫 학원 수업을 듣는 날, 나는 빠르게 도착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빈자리는 채워졌고 수업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사일이는 내 옆으로 와 자리가 있냐고 물은 뒤 없다는 나의 대답에 옆자리에 흔쾌히 앉았다.

마치 초등학교 반 배정을 받은 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인근으로 친해져 무리가 되는 것처럼

나와 사일이는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들과 금방 친해져 신나는 학원생활을 했었다.


내가 본 사일이의 첫인상은 이쁘장하고 까다로운 아이.

으레 이쁘장한 아이들에게 붙는 편견인 새침함과 더불어.


사실 사일이는 당시에 내가 보기엔 굉장히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인생에 어떠한 어려움 없이 곱게만 살아온 아이.

그래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간절함이 없는 아이.

모든 것에 아무 감흥이 없는 아이.

시크하지만 상냥하고 자기 사람은 챙길 줄 아는 아이.


나는 정말이지 이 친구가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이상향, 가치관을 갖고 있어도.

그래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어떤 인간과 교제를 하더라도.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이 아이는 자신만의 삶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5개월의 학원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사일이와 둘이서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사일이는 울었다.

본인의 부모님 이혼사를 이야기하며 왜 자신이 그토록 냉담할 수밖에 없는지를 토로했다.

왜 차가운지, 왜 기대를 안 하고 사는지, 왜 감흥이 없는지를.


처음으로 사일이가 어렵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사일이의 가정사 때문이 아니라 

사일이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웃고 넘기는 말들을 해왔던 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일이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마치 내가 자기랑은 전혀 다른 사람인 양 구는 것에 대해 조금은 설명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설명이 되었다.


내가 얼마나 치졸하고 편협한 인간인지.

얼마나 많은 편견들로 세상을 다 아는 척 굴었는지.


이 친구는 여전히 인생을 별다른 감흥 없이 살지만

자기 사람을 참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부족한 나도 친구로 여길 줄 안다.

무리 중 가장 빨리 결혼할 줄 알았지만 진짜로 우리 중 가장 빠르게 결혼한 이 친구는

여전히 내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을 많이 가진 친구다.


6년을 같이 보낸 친구이기 때문에 사실 할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뭘 설명하든 똑같은 양산 이지 않을까.

이해 못 하겠고 이해된다는 그 말들.


학원을 수료함과 동시에 절대 다시 안 볼 거라고 생각했던 이 친구가

내 인생에서 이렇게 소중한 자리에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그리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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