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세 번째
글을 전혀 쓰지 않던 내가
남의 이야기는 입에 전혀 올리지 않던 내가
공개적인 곳에 날 노출하기 싫어 SNS를 아예 하지 않는 내가
이렇게 내 인생의 인간들을 모두 까기 시작한 이유는
어쩌면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 난 타인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친구라는 존재가 내 존재를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평생 갈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에
난 누구보다 기뻤고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 당시 옆에 있었던 내 친구들, 그리고 네가 있었기에.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젊음이 다신 오지 않을 걸 알았다는 듯 불태워서 밤을 새우고,
각자가 조금씩 성장해 조금이라도 잘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축하해 주는
너는 내게 시절이었다.
그 어느 날, 무슨 이유로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드디어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으로 너와 술 한잔하러 찾아갔었던 그날.
우린 종각 포장마차에서 밤새 술을 마셨지.
힘든 이야기는 죽기보다 말하기 싫어하는 내가
특히나 너에게 짐을 주는 게 죽기보다 무서웠던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처음으로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오늘 죽으려 한다고.
그때 너는 울며 그냥 한 마디 했었지.
죽지 말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지.
죽겠다는 친구한테 할 수 있는 말이
죽지 말라는 말 밖에 더 있을까.
근데 나는 마치 그 말이 절대 들을 수 없는 대단한 말인 듯
너의 말을 따르기로 했어.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사람이 우리 엄마 말고
너도 있을 거란 생각에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
그런 너는 내게 삶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늘 그렇듯
각자 삶의 거주지가 다르고
사회에서의 일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니
우린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점점 더 잘 보였지.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우리는 같이 있으면 다시 애처럼
모든 것이 어렵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낙천적으로 살아내갔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길이었다.
그리고 또 역시나 기억하지 못하는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아예 보지 않게 되었을 때,
난 참 허무했다.
같이 보낸 1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깔끔히
없었던 인연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슬프지 않았던 이유는
슬며시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나눴던 그 말처럼
"우린 아마 평생 이렇게 늙어가겠지."
그 말처럼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거라는 그 기대.
그리고 그 기대도 이젠 생각이 안 날 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
난 이제 너의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드디어 내가 어른이 됐나 보다.
우정이니 의리니 하는 따스한 놀이가
의무니 책임이니 하는 무거운 삶의 의지로 달리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너를 적기 위해 너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마음 한 켠이 계속 아려온다.
네가 그립나 보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네가 잘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한 우리가.
너는 정말이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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