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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18.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언젠가 너에게 가겠다.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세 번째

글을 전혀 쓰지 않던 내가

남의 이야기는 입에 전혀 올리지 않던 내가

공개적인 곳에 날 노출하기 싫어 SNS를 아예 하지 않는 내가

이렇게 내 인생의 인간들을 모두 까기 시작한 이유는

어쩌면 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 난 타인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친구라는 존재가 내 존재를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평생 갈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에

난 누구보다 기뻤고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 당시 옆에 있었던 내 친구들, 그리고 네가 있었기에.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젊음이 다신 오지 않을 걸 알았다는 듯 불태워서 밤을 새우고,

각자가 조금씩 성장해 조금이라도 잘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축하해 주는


너는 내게 시절이었다.


그 어느 날, 무슨 이유로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드디어 죽을 각오를 하고 마지막으로 너와 술 한잔하러 찾아갔었던 그날.

우린 종각 포장마차에서 밤새 술을 마셨지.

힘든 이야기는 죽기보다 말하기 싫어하는 내가

특히나 너에게 짐을 주는 게 죽기보다 무서웠던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처음으로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나 지금 너무 힘들다고. 

오늘 죽으려 한다고.


그때 너는 울며 그냥 한 마디 했었지.

죽지 말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지.

죽겠다는 친구한테 할 수 있는 말이 

죽지 말라는 말 밖에 더 있을까. 

근데 나는 마치 그 말이 절대 들을 수 없는 대단한 말인 듯

너의 말을 따르기로 했어.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사람이 우리 엄마 말고

너도 있을 거란 생각에 정신을 차리게 되더라.


그런 너는 내게 삶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가 늘 그렇듯 

각자 삶의 거주지가 다르고

사회에서의 일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니

우린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점점 더 잘 보였지.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우리는 같이 있으면 다시 애처럼

모든 것이 어렵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낙천적으로 살아내갔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길이었다.


그리고 또 역시나 기억하지 못하는 어떠한 이유로

우리가 아예 보지 않게 되었을 때,

난 참 허무했다.


같이 보낸 1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너무나 깔끔히

없었던 인연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슬프지 않았던 이유는

슬며시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나눴던 그 말처럼

"우린 아마 평생 이렇게 늙어가겠지."

그 말처럼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로를 위한 존재가 될 거라는 그 기대.


그리고 그 기대도 이젠 생각이 안 날 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

난 이제 너의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드디어 내가 어른이 됐나 보다.

우정이니 의리니 하는 따스한 놀이가

의무니 책임이니 하는 무거운 삶의 의지로 달리했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너를 적기 위해 너를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마음 한 켠이 계속 아려온다.

네가 그립나 보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네가 잘 되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서로를 위한 우리가.


너는 정말이지 나였다. 


이전 17화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나의 마지막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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