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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May 19.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나의 마지막 애인.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네 번째

오늘의 모두 까기 대상자는 나의 현재까지 마지막 연인, 사삼이다.(가명)

그 사람과 헤어지고 7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난 점점 더 추악해져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하면 7년 전 사랑이 굉장히 대단한 사랑인 것 같지만

너무나도 가벼움 그 자체인 연애였다.

특히 나에게는.


당시 나는 호주에서 워홀을 보내고 있었고, 

세컨드 비자를 얻기 위해 시드니 인근 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외국에서 한국인끼리 뭉치는 힘은

느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실히 놀라운 힘으로

없던 애국심까지 끌어올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단숨에 찐친이 될 수 있었다.

거기다 외국의 특성인 나이 불문, 성별 불문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난 한국인 커플과 친해졌고, 그들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들과 이미 친한 사이였던 호주인 사삼이를 초대했다. 

그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나는 외국인 친구가 없었으므로 

그곳에서 자고 나란 호주 사람이 신기했고, 이상하게 순박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만남은 한국인 커플이 작정하고

우릴 이어주기 위해 홈 파티를 개최한 날이었다.


나는 절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눈에는 내가 나름 매력이 있었나 보다.


수줍어하며 대화를 걸어오는 사삼이에게 나는

출중하지 않은 영어실력으로 열심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당시에 나는 그 사람과 연인이 될 생각이 아닌 외국인 친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 영어 실력이 더 늘어날 거라는 계산하에….


그렇게 그 한국인 커플과 나와 사삼이는 만나는 횟수가 늘어났고

같이 커플 여행을 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둘이서 따로 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매일 집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는 그를 보며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사귀고 있구나.


정말 외국인은 사귀자는 말도 없이 사귄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때였다.

그리고 역시나 쿨한 척하기 위해 나이도 묻지 않았던 나는

나중에서야 사삼이가 3살 연하임을 알게 됐다.


평소 연상만이 이성이다를 외치던 나에게 너무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외국인은 정말 보기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이건 비하가 아닌 사실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일 뿐이다.


어쨌든 여기는 외국이 아닌가.

나이가 무슨 대수일까. 

그렇게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나는 연하의 호주인과 연애를 시작했고,

그는 생각보다 순박한 로맨티시스트였다.


꽃집을 지나갈 때 한국에서는 연인끼리 꽃 선물을 자주 한다는 흘러가는 말에

집으로 초대해 요리를 해주며 슬며시 꽃 한 송이를 내밀고.

데려다주고 돌아서지 못해 계속해서 문 앞에서 칭얼거리기도 하며

그렇게 그 나이대에 맞는 연애를 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더 철이 없었다.

워홀의 특성상 한 곳에서 6개월 이상을 보낼 수 없는 규정 때문에

그곳에서 떠나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는 당연히 이별을 생각했다.


하지만 사삼이는 이미 나보다 그 상황을 더 먼저 생각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이곳을 떠나 자동차를 사서 나와 같이 떠날 것이라고

신나게 계획을 말하는 게 아닌가.


지금의 나라면 그 말이,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울지 상상도 안 간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겁부터 났다.

나는 현재를 봤고 이 사람은 미래를 보고 있다. 

나의 미래에는 여전히 혼자였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길래, 나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당연하게도 나와 같이 떠날 생각을 했는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표정관리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한 후,

나는 사삼이에게 쿨한 이별을 강요했다.

미드를 봤을 때 외국인들은 헤어진 후 친구로도 잘 지내길래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이기적이게 친구로 남자고 말했고,

그다음 날부터 사삼이는 날 봐도 모른 척했다. 


사삼이는 내가 가진 모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부숴줬다.

쿨하고, 모든 것이 능숙하고, 능청스러울 것이라고 편협하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순수했고, 몰랐으며, 따스했다.


난 정말이지 모두 까기라는 제목을 반성한다.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가 어떻게 보면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가. 

나의 무지를, 나의 편협함을, 나의 이기적임을 고백하는 글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어찌 됐든 그에 대한 벌로

나는 그 이후로 어떠한 연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도 역시 나로부터겠지.


물론 그는 나를 완전히 잊었겠지만

나는 이렇게 가끔씩 떠오르는 걸 보면

조금 덜 억울해 하려나. 

이전 16화 인간들 모두 까기, 첫사랑도 이런 모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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