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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Feb 07. 2023

로즈마리와 아이들

아침 9시 반,

아이들 어린이집 등원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나는 바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추워도 더워도 비가 와도 늘 등원하기에

나간 김에 나도 걷는다. 아이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어렵지 않게 운동을 지속한다.


보통 아파트 뒷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데

그 길은 담벼락이 큰 바위들로 되어있다.


지금은 겨울이라 다 시들어 자취를 감추었지만

봄과 여름 가을 늦게까지 돌틈 사이사이에는

갖가지 작은 나무와 꽃들이 예쁘게 심겨있다.

길 끝자락 즈음에는 캐모마일과 로즈마리도

무더기 씩 있다.

     

그 앞을 지나갈 때 나는 잊지 않고 로즈마리를

한아름 크게 훑는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며 강아지 만지듯 매만지면 

안녕~! 하고 곧바로 진하고 상큼한 허브 향을 얼른

한 아름 내어 준다. 그 시원한 향이 너무 좋아

순간 기분이 확 오르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로즈마리 덕분에 운동의 시작이 즐겁다.

손바닥에서 은은히 사라지는 향을 맡으며

커다란 로즈마리 화분을 사다 베란다에 둘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얼마 전 다이소엘 갔다가 우연히

가드닝 코너에 발이 멈추었다.

나는 계획에 없던 작은 화분 네 개와 

로즈마리, 라벤더 허브 씨앗을 사 들고 집에 왔다.


그날 저녁 아이들과 남편은 로즈마리와 라벤더를

화분 네 개에 나누어 심었다. 허브 씨앗이

그렇게 작은 줄 몰랐다. 참깨보다도 더 작은 씨앗을

콧김에라도 날릴세라 조심조심 집어 들고

손톱만큼 흙을 파고는 한두 개씩 넣고 살살 흙으로 덮었다.



아이들과 함께 심은지라 제대로 나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정성스레 심고 물도 주었다.      

씨앗 봉투 뒤에 쓰여있는 설명으로는 약 7-10일 정도

부터 싹이 나온다고 했는데 열흘 정도가 지나자

정말 싹이 나왔다.


씨앗은 생명을 품고 있어~라고 말로는 했지만

진짜 내 손으로 심고 물을 주고 싹을 틔워 보

너무 신기하고 귀하고 소중하고 했다.


제때가 되어 보일락 말락 하나씩 올라오는 떡잎을 보며

아이들과 손뼉 치며 환호했다. 씨앗마다 떡잎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한 줄기에 작은 잎도 몇 개 더

나고 있다.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혹시나 하고 코를 가까이 대어 보았는데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설마…. 하면서  나는 엄지와 검지로 잎을 살짝

문지르듯 만져 코에 가져갔다 아주 깜짝 놀랐다.      


나, 로즈마리야!  허브라고 허브!! 하고 소리치는

진한 향에 어머나! 어머나! 그래 너 허브구나! 

진짜 허브네! 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작고 그 여린 잎 하나에도 로즈마리 덤불이 가진

진한 향이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요즘 나는 로즈마리 화분이 담긴 작은 나무 트레이를

아침저녁으로 옮긴다. 낮에는 베란다에서 따뜻한

겨울 볕을 쏘여주고 저녁이 되면

거실로 데리고 들어온다.


밖에 봄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 집 꼬마 허브로

향기를 대신해야겠다. 오며 가며 여린 잎 다치지 않게

손가락으로 살살 비비고는 코에 가져다가 킁킁 향을 맡는다.


오늘도 진하고 상큼한 향이 코로 훅 들어오며

흠흠~ 나야 나~ 하고 자신의 있음을 알린다.        



                 




며칠 전 허브 화분에 새 떡잎이 또 하나 나왔다.

분명 같은 날 똑같이 심었는데 석 달이 지난 시점에서

반짝하고 나타나는 떡잎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같은 씨, 같은 환경, 같은 조건인데도 발화시기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이제 막 새로 나오기 시작한

그 떡잎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공부방의 한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가 조금 느려요~라고 어머니가

표현하실 만큼 천천히 가는 아이다.

말수도 적고 표정도 다양하지 않다.

무엇을 물어봐도 한참을 생각하다가

단답형으로 대답을 하거나 고개만 겨우 끄덕한다.


다행히도 나는 천천히 가는 아이들이

답답하거나 힘들지 않다. 다행히도 내 눈에는 늘

아이들의 좋은 면들이 반짝이며  먼저 눈에 들어온다.


로즈마리에 물을 주듯

그 아이에게도 매일 물을 주었다.


그 아이가 스스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선생님 눈엔 얼마나 대견한지, 아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어떤 점에 선생님이 감동했는지,

매일매일 듬뿍듬뿍 진심으로 사랑의 말과 마음을 전했다.

다행히도 내가 그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어서.      


석 달이 지나고 새싹이 돋아나 나를 놀라게 했던

그 꼬마 허브처럼, 얼마 전 그 아이 역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오늘은 책 누가 읽어줄래? 수업 끝나기 전

같은 반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있다.

보통은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주로 손을 드는데

그날은 그 바로 친구가 손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닌가!


그 반에는 그 친구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동생들이 있어서 분명 꺼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그 아이는 담담하게 자신이 읽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차분히 잘 읽어 내려갔다.


사랑이 채워져 자존감이 올라가니

자신감 역시 자동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손을 번쩍 든 그 모습이 얼마나 감동이고 감사하던지.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도 나는

그 감동과 여운에

한동안 가슴이 벅찼다.     


아이들이 매일 자라나고 있는 게 보인다.

모두 자신의 색깔과 시기가 있음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이미 그들의 속도대로 잘 가고 있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아이들이 얼마나

대견하게 잘 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잊지 않게

되돌려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뿐이다.      


끊임없이 사랑과 칭찬의 물을 부어준다면

우리 아이들 역시 자신의 발화시점에

어김없이 가장 그 아이 다운 모습으로 싹을틔우고

자신의 세상을 펼쳐갈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깨보다 작은 허브씨앗이  

광활한 우주를 품고있는것처럼.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간  텅빈 거실에 서서

오늘도 나는 나의 삶과 우리 아이들에게

조용히 또 한 번 마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고맙다.

사랑한다.

고맙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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