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는 아이에게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다가도 아이가 기침하면 바로 깬다.
내가 잠을 더 자도 되는 기침인지 아니면
일어나서 살펴봐야 하는 기침인지를
잠결에 들은 기침 소리 한 번으로도 안다.
일부러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 않아도
나의 모든 신경과 촉수가 본능적으로
아이에게 반응하고 있음을 느낀다.
예민보다는 둔감한 쪽에 더 가까웠던
우리 엄마도,
수화기 너머 미세한 나의 목소리 변화를
쉬이 알아챘던 걸 보면
어미가 가진 본능이 맞는 것 같다.
첫째여서 그랬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힘든 것을 크게 내색하지 않고 자랐다.
하기 싫어도 힘이 들어도 그냥 묵묵히 하는 편이었다.
참는 게 미덕이라고 은연중에 배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가끔 정말 힘이 들면
엄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엄마.. 안아 줘..."
엄마는 그럼 나를 꼬옥 안아주면서 말했다.
"에그... 너 힘들구나?"
무슨 일인지 캐묻지도
나서서 해결해 주시지도 않으셨다.
그냥 그렇게 내가 원할 때까지 한참을 안아주셨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버틸 만했고 또 괜찮아졌다.
방전된 배터리 금세 완충된 것 마냥.
몸과 마음이 힘든 3월을 보냈다.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나고 날카로웠다.
내가 봐도 나는 한동안 뾰족하고 어두웠다.
한참이 지나고야 알았다.
나는 지금,
너, 힘들구나? 하고 알아주는
엄마의 그 짧은 한마디와 따뜻한 포옹이 필요하다는 것을.
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도 어미의 본능이 필요하다.
엄마의 따뜻함이 사무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