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못이 박히도록 매일 듣는 소리였는데, 딸의 말이 씨가 되어버렸다. 씨가 열매가 돼서 지금 막내는 방 안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됐다. 요즘 유행하는 ‘마이코 플라스마’ 폐렴에 걸린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돌아가며 코로나에 걸린 세 자녀를 돌본 경험과 작년에 아들이 수두에 걸려서 돌본 경험이 있어 수월할 거라고 믿었는데, 병시중은 상황과 강도는 달라도 힘든 것이었다. 친정아버지가 엄마의 병시중에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는데, 그 마음을 이번 막내가 아프면서 떠올리게 되었고 아버지의 고생과 감사함을 좀 더 깊게 느낀 것 같다.
아들이 수시에 모두 떨어져서 낙심하고 있었던 터라 막내 병시중이 더 힘들게 느껴진 것도 있다. 무조건 붙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기대와 예상이 빗나갔다. ‘뭐든 최악을 생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면 내게 맞닥뜨려지는 일을 덜 힘들게 느끼지 않을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까지 떨어지니까 아들을 예전처럼 똑같이 대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다. '재수도 좋고, 취업도 좋고, 대학에 합격할 수도 있어.'
마음을 비우니까 아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다. 어떻게든 결과는 나올 것인데, 거기에 내가 얽매이고 힘들어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마지막날을 생각하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하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날이 막내가 폐렴에 걸린 날이 되었다. 감기로 알고 처방을 받았는데 11월 3일에 다시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는 폐렴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일찍 발견해서 다행히 아니냐고 했다. ‘왜 하필!’이 ‘일찍 발견해서 다행!’으로 바뀌었다.
‘긍정이 매직이지!’
막내는 학교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아했다.
“와, 학교도 학원도 안 간다!”
막내는 쉬는 동안 뭘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구시렁구시렁.’ 하루 종일 게임과 동영상을 보고 엄마 심부름 시키는 일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엄마, 물!”
“엄마, 우유!”
“엄마, 약!”
“엄마, 요플레!”
“엄마, 보쌈이 먹고 싶어!”
막내는 생각나는 데로 요구하고 있었다.
“밥 차렸는데...”
“엄마, 잔치 국수는 해줄 수 있어? 입맛이 없어 그래.”
“불고기 했는데, 할 수 없지 뭐. 잔치국수 해줄게!”
나는 냄비에 국수를 삶으면서 설거지 그릇들에 힘을 줘가며 힘든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엄마, 핸드폰 봐봐!”
딸은 방문에 대고 큰소리로 말하다가 힘든지 어느 순간 카톡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도서관에 다녀와.”
“식사 챙겨주고 나갈까? 도서관부터 다녀올까?”
“엄마, 나 배고파.”
“알았어. 식사 챙겨주고 나갈게.”
......
딸 방에 들어갈 때는 마스크를 쓰고 들어가서 삼시 세 끼를 챙겨주고, 청소도 하고, 널브러진 옷도 정리하고 빨 옷과 수건도 내오고... 병시중으로 들고 간 모든 것은 다시 가지고 나와야 했다. 딸 방에 머무는 순간은 입원실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딸이 감기인 줄 알았을 때는 처음 병원 다녀와서 이튿날 마라탕을 사달라고 했고, 먹고 난 후에 배탈이 났는데 내게 얘기를 안 해주고 다음 날 라면을 먹고 속이 더 안 좋아졌다. 막내는 끼니때마다 입맛이 없다며 한두 숟갈만 뜨고 우유를 자주 달라고 했다. 나는 폐렴 때문인 줄 알고 기운이 없으니 우유는 받는가 보다 하고 챙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폐렴 때문인 것도 있지만 배탈이 나서 잘 먹지 못했던 거다. 우유를 남기는 걸 보고 막내에게 물어보니 사실은.... 하면서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속이 상해서 아픈 딸에게 짜증을 냈고 병시중 일주일이 지나니까 지치고 힘들었다.
“학교도 안 가고, 학원도 안 가고. 네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아?”
“엄마, 꼭 그렇게 얘기해야 해?”
“소원이 이루어져서 좋냐고, 엄만 힘든데.”
“뭐, 나쁘진 않아! 이렇게 3년은 쉬고 싶다!”
“3년! 아뿔싸!”
“소화도 잘 안되고, 나가지도 못하고 핸드폰만 만져서 답답하지만 좋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학교며, 학원 다니느라 힘들었는데!”
“그래, 푹 셔.”
막내의 열은 37도 언저리에서 머물렀고, 점점 몸은 쇠약해지고 기침이 심해졌다. 일주일쯤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병원에 갔을 때는 수액을 맞으면 빨리 낫는다며 의사 선생님이 추천해 줬다. 막내는 8만 원 하는 수액을 맞고 온날부터 밥을 잘 먹기 시작했다. 내 손은 거칠어지고 며칠 잠을 못 잔 사람처럼 피곤해져도 딸이 건강해지고 있어 다행이었다. 딸이 호전되듯이 나도 컨디션이 좋아졌다.
나는 딸에게 다시 물어봤다.
“소원이 이루어져서 아직도 좋아?”
“난, 외계인이 와서 학교를 반쪽으로 갈라놓고 당분간 학교에 안 가는 게 소원이었지, 이렇게 밖에도 못 나가고, 방에서 꼼짝도 못 할 줄 몰랐어. 게임도 이제 지겨워. 이건 감옥에 갇힌 거잖아!”
“외계인이 어딨어? 학교에 안 가는 일은 이렇게 아플 때나 있는 거야! 다른 애들처럼 매일 학교 가는 게 낫겠다!”
“엄마, 심심해, 심심해, 심심하다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있잖아! 하루 종일 책 읽고 싶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책 보는 것도 지겨워!”
막내는 계속 ‘심심’ 돌림노래를 불렀다. “나가고 싶어!”
“어째, 폐렴에 걸려서 그런 걸.”
“내가 걸릴 줄 알았어! 여행 가고 싶다, 여행 가고 싶어. 비행기 타고.”
“뭐, 소원이 바뀐 거야?”
어제부로 막내의 소원이 바뀌었다. 학교, 학원에 가기 싫은 소원은 쏙 들어가고, 비행기 타고 여행 가고 싶다고 한다. 소원이 바뀌었지만 다행인 건 학교 가기 싫다는 애창곡을 당분간 안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병원에 갔는데 통원확인서를 써주셨다.
“상기 환자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진단, 자가격리 치료 후 11월 11일에 등원가능합니다.”
딸은 빼빼로 데이를 기다리고 있다. 기억하기 좋게 10월 31일에 폐렴에 걸려 빼빼로 데인날 등원하는 거니 절대 잊어버리지 못할 기억이 됐다.
‘우리 딸 소원 이룬 날!’
딸은 모처럼 밖에 나와 좋은지, 편의점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집에 온 딸의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는데, 불닭볶음면 한 개와 빼빼로 4개였다.
소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닌가 보다. 딸은 몹시 심심했는데 학교에 갈 수 있어서 좋고, 나도 딸의 잔소리 같은 돌림노래(학교 가기 싫다!)를 당분간 안 들을 수 있어서 좋다. 비 온 후 갠 하늘처럼 감사함은 힘든 일이 지나가고 잔잔하게 일상처럼 주어지는 소소한 행복일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