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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특별한 와이셔츠

by 손금나비 Jan 20. 2025

수시 실기시험을 친다고 지정 양복점에서 정장을 맞췄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였다. 그런데 정작 시험을 치러 갈 때는 검은 와이셔츠가 필요했다. 학원 담당 선생님이 검은 셔츠를 빌려주었는데, 같은 반 동료들과 돌려 입었다.

“계속 시험을 칠 때마다 필요할 텐데 하나 사지?”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해요!”

수시를 볼 때부터 검은 셔츠를 사라고 했지만, 아들은 싫다고 했다. 싫어하는데 자꾸 말하는 건 강요가 돼서 그 이후로 말하지 않았다.      


그 셔츠는 선생님이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할 때 입은 특별한 셔츠라고 했다. 프러포즈에 성공한 셔츠라서 그 옷을 입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반 친구와 재수하는 형들이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셔츠를 돌려가며 시험을 칠 때마다 빌려 입었다. 여러 명이 돌려 입으니, 셔츠는 낡아져서 선생님이 세탁은 자제해 달라고 해서 오염된 곳만 물티슈로 닦고 구겨진 곳만 다려서 입혀 보내기도 했다.

그 특별한 셔츠를 입고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합격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다행히 수시 칠 때는 돌려 입어도 겹치지 않았다. 난 아들이 당연히 수시에 합격하리라 생각했다. 모든 엄마의 마음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서 상한 속을 달래는 것도 아들과 부모의 몫이다.

정시를 볼 때 아들이 한 번은 선생님 셔츠를 입고 갔는데, 내일은 다른 친구가 빌려 가서 사야 한다고 했다.

‘진작 사지 않고.’     


아들은 옷 가게 마감 한 시간 전에 가서 부랴부랴 옷을 사서 집에 왔는데, 옷이 잘 구겨지지 않는 재질에 팔랑거렸다. 내일 시험 칠 때 입을 거라며 아들은 다리미로 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셔츠를 받아서 데리려고 했는데, 목 옷깃 부분이 좀 이상해 보였다. 보통의 카라보다 작아서 ‘택’을 보니 woman!

“아들, 이거 여자 셔츤데, 괜찮아?

아니 블라우스였다.

“이리 줘봐!”

아들은 내일 입고 갈 양복바지에 오늘 산 셔츠를 입었다.

“길이도 짧네.”

밤 10시 십 분 전인데 다시 가서 바꿀 수가 없는 시간이었다.

“woman인데, 안 살펴봤어?”

“알았다고, 한 번만 말해!”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택 뗐어?”

“응. 어차피 내일 데려서 입고 가야 되잖아.”

“내일 한번 입고 바꿀 거라고. 혹시 안 바꿔주면 어쩌지?”

“안 바꿔주면 엄마가 입을게. 새로 사!”

나는 입시로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아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쿨하게 사라고 했다. 예전 같으면 잘 살펴보고 사지 않은 아들을 나무랐을 것이다.


다음 날, 아들은 7시쯤에 아침을 먹고 수험표를 챙기고 옷을 차려입고서 나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전화가 왔다. 아들의 목소리는 좀 힘이 없어 보였다. 아들은 연기과를 지원해야 하는 걸 연극과를 지원해서 시험도 못 치고 나왔단다. 시험 볼 대학교 시험장을 나와서 10시 44분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대학에서 종종 이런 일이 생긴데요. 그래서 확인하는 기간도 있었고요.”

“알았어.”

아들은 자신의 실수에 솔직했다.

‘어쩌랴! 화나고 속상하다고 한들 엎질러진 물인걸….'

화를 내고 질책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는 걸.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잡아두면 하루 종일 기분만 상하고 자칫하다간 상처가 한으로 남을 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아는 것에서 잊는 마음이 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갈 대학은 아닌가 봐, 널 기다리는 대학이 있을 거야.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실기 준비하고. 점심은 맛있는 거 사 먹고 와!”

나는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다.

아들이 새로 산 검은 와이셔츠는 그렇게 입어보지도 못한 채 시험을 못 본 아픔처럼 종이가방에 고스란히 들어있었을 것이다.

“엄마, 옷 바꿔 올게요.”

“그래, 안 바꿔주면 그냥 가지고 와. 집에 바로 오니?”

“네.”

알았어.”     


아들은 저녁 4시 반쯤 들어왔다. 옷 가게에서  '택'이 떨어져도 입지 않아서, 남자 와이셔츠로 바꿔줬단다. 아들은 바꾼 셔츠가 더 저렴하다며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아들에게 앞으로 실기를 칠 대학에 관해 물었다. 그날은 더 긴장하고 아침을 준비해야 돼서다. 그런데 어떤 대학의 시험 날짜를 었을 때 머뭇거렸다. 나는 다시 물었고 아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실 오늘 실기시험 칠 대학이 두 군데였는데, 한 군데는 포기하고 찾아간 대학은 잘못 지원한 대학이었다. 그래서 지원에 문제없는 대학도 못 치고 온 것이었다. 이 말은 아들이 아까 하지 않았다. 저도 속이 많이 상했나 보다.

'미리 확인도 안 하고!'


아들은 대학도 혼자 정했고, 간섭하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도와달라는 부분만 도와줬는데….

'할 수 없다! 책임은 아들의 몫이다.'

부모가 관여했다면 부딪힐 일이 많은데, 그렇지 않으면 아들이 감당할 일이 좀 더 생기지만 경험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 실수를 안 하려고 더 노력할 것이다.   

나도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있고 사랑으로 더 격려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들, 아니 자녀들이 바라는 것에 늘 부족한 부모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드는지도 모르겠다.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는 건 이번 일을 통해 많이 단련됐다고 느낀다.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다 느끼는 도 기도와 정성으로 갈고닦아 왔고, 이제 잊어버리는 일도 힘들지 않다. 실수나 실패했던 경험이 다음엔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날 것을 믿는다.

'아들아, 잘할 거라 믿어! 늘 응원해,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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