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놓치면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더 젊던 날에는 눕자마자 잠결에 들어 한시도 놓치지 않고 그 결에 묻혔다. 그래도 잠을 설치면 뒷 날 피곤했는데 요즘은 선잠을 자고도 다음날이 피곤하지 않다. '이건 또 무슨 증상이지?' 의아스러워하며 처음으로 가고 있는 오십 고개다.
어느 틈에 두꺼워진 이불, 나온 팔이 시린 아침을 맞는다. 얼굴만 내놓고 눈을 감고 생각한다. '얼굴은 왜 시리지 않을까?' 아직 어딘가에 매인 몸임에도 풀렁 끈이 풀린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오늘 무얼 해야 하나?' 끈을 주워 들고 감은 눈에 생각한다. 매인 곳이 새삼스레 고맙기도 하면서 그렇게 일어난 날, 또 하루를 번개같이 살아낸다.
'나에게 단지 3일만 남았다면?' '철렁!'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엄마 아버지를 찾아가야지.' 술 한잔 드리고 절 두 번 하고 산신령님께 부모님 잘 부탁드리고 와야지. 그리고 내 살아온 터를 정리할 순서다. 흔적을 정돈하는 거다. 옷도 책도 물건도 내 손으로 담아내야겠다. 그리고 가족 개개인에게 평소처럼 잘 지내주기를 바란다고 감사의 글을 써야겠다. 덕분에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나에게 단지 마지막 3일이 남아있다면!' 그날은 분명 예고되어 있는데 이렇게 가정법으로 예측하고 부르기에 너무나 큰 말이다. 분명 그날이 올 것이기에 하루도, 한 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기온이 떨어진 아침에 끈 떨어진 기분으로 있을 일이 아님을 이렇게 적어보니 알겠다.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면 노력해서 키워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땐 부지런히 해봐야 한다.
내게 올 마지막 3일이 더 다가오기 전에 만날 사람 부지런히 만나고, 고맙다고 전하고, 어지간하면 용서해 주고, 나로 인해 불편한 사람은 없도록 해야지. 일터에서 배운 거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나누고, 공유하고 싶은 사실도 전해야 한다. 선배들에게 배운 게 있다면 나도 작은 전달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기록이든 말로 전하는 사연이든 다정한 이야기 하나는 남겨두고 싶다.
이 생에 오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나로 인해 생긴 삶 자녀와 젊음을 함께한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야지. 늘 함께할 테니 너무 놀라진 말라고, 또 만나자고, 쓸 수 있을 때 많이 표현해 두어야 한다. 글은 사랑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늦게 시작한 글쓰기가 내게 삶을 주신 부모님을 새기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읽고 쓰는 글공부를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