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목마에 앉은 노모

8

by 사과꽃


"내 등에 업혀라!"


허리가 한 줌밖에 안 되는 이가 뻣뻣한 풀을 밟으며 엎드린다. 둘러선 몇이 하하 웃는다. 산 아래 여러 사람이 나타났다. 지팡이를 짚고 선 노모가 웃기만 하자 이번에는 조금 실한 놈이 제 등을 내민다. 노모가 두어 발자국 나서서 업힌다. 얼굴을 찌를 듯한 잡초를 꺾으며 엎드린 이가 몇 차례 힘을 주다가 일어섰다. 둘러선 이들이 두 손을 내밀고 다가선다. 몇 발 겨우 떼는 모습을 보다가 같이 산을 올려다본다.


"치아라! 못 올라간다."


내려서며 노모가 말하자 이번에는 가장 몸집이 굵어 보이는 놈이 나선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업을 사람은 저뿐이라는 듯 옹골차게 등을 내놓는다.


"업혀봐라! 내는 할 수 있다."


남은 둘이 옆에서 껴잡고 마다하는 노모를 업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잘 업히긴 했는데, 모두가 기대하는데 이 사람도 무릎을 선뜻 펴지 못한다. 덩치만으로 업을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얼굴이 시뻘게지고 부들부들 떨며 일어섰다. 모두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겨우 두어 걸음 내디뎠다. 노인은 이번에도 뻗대며 내려선다.


"안된다 해도 내 말을 안 듣네! 그냥 여기서 쳐다보면 된다."




차가 올 수 있는 곳까지는 들어왔는데 더 이상은 걸어가야 한다. 양쪽에서 부축하여 오르기에도 산 길은 좁고 걸을 힘도 없어 보인다. 노인에게서 전해오는 미세한 떨림에 주위는 벌써 숙연하다. 고요하던 산에 처자 셋이 노모를 모시고 와서 옥신각신한다.


누군가 팔 목마를 제안 한다. 오른손으로 제 왼 손목을 잡고는 옆 사람에게 따라 하란다. 그도 제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고는 둘이 마주 보고 남는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손 4개가 모여서 사각의 판이 만들어진다. 노모의 한쪽 다리는 이쪽 가슴팍에 넣고 다른 쪽 다리는 저쪽 사람의 가슴팍에 넣었다. 노모가 짧은 두 팔로 양쪽에 선 이의 목을 껴안으니 팔 의자에 앉은 모습이 됐다. 이제 둘이 같이 일어서면 된다.


두 사람이 일어서려 애쓴다. 뜻대로 되지 않자 얼굴을 맞대고 와하하 한바탕 웃는다. 동시에 하나 둘 영차를 외치며 일어섰다. 이동하려면 양쪽 힘이 비슷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옆에 섰던 이가 자청한다.


"내가 해볼게!"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고 노모를 앉혔다. 끄엉끄엉 둘은 박자를 맞추고 남은 사람은 뒤에서 하나 둘 구령을 붙이고 발을 맞춰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수풀이 제법 자라 길도 드러나지 않는 비탈길을 그렇게 올라오려는가 싶다. 얼굴이 갈수록 벌게진다. 모두 웃는데 운다. 가만 보니 지신 목신들이 둘러서서 손을 보태려고 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경하던 귀신들이 돌아서서 눈물을 닦는다.


"됐다 고만해라! 이래 가지고는 못 올라간다."


열댓 발 가다가 주저앉았을 때 노모가 말했다. 갈 수 있다고 고집하며 그만둘 기세가 아니다. 길도 좁아 몇 번을 그리 멈추었다. 멈춘 게 아니라 땅에 처박히는 듯 보이는데 그때마다 '쉬었다 가자'라는 말을 나눈다.


오랜만에 벌어진 구경거리다. 기어이 산 꼭대기에 올라왔다. 노모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이 집 저 집에서 쳐다보는데 그리 올라와서는 숨만 몰아쉬고 말이 없다. 빙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타박하니 호위하는 듯하고 햇살이 그들을 비춘다. 여기 모셔놓았노라 보여주려고 셋이 그리 보듬고 올라와서는 노모에게 말이 없다.


비 오던 그날도 가보지 못한 곳을 기어이 나를 껴잡고 올라왔네. 영감은 말도 없이 가놓고 산에 홀로 앉아서도 말이 없네. 이 하늘이며 나무며 땅이 다 뭐라고, 내 안 봐도 익히 알았는데 생각했던 대로다. 안 온다고 그리 말했건만 한 발자국도 못 떼는 나를 이리 지고 오르다니. 저 옆자리는 내 자린가. 모골이 송골송골해지는 내 맘을 너희들이 알겠나. 이리 보여주면 뭐 해. 다시 데려올 수 없는 사람 이리 본다고 반가운가.


너희들이 이리 해도 내 하나도 안 반갑다. 그냥 내 말을 좀 들어주면 좋으련만 어찌 된 게 나이가 드나 안 드나 위아래가 매 한가지니. 내가 미안해서 뭐라고 말을 못 한다만 왜 내 뜻을 너희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우기는지. 엄마도 그랬소? 자식들이 이리 무서웠소? 내 몰랐던 일을 이 나이 들어서 이렇게 매일 깨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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