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던 그날

7.

by 사과꽃


눈 감고 입 닫으니 더 이상 볼 수도 어떤 말을 전할 수도 없네. 평소 하던 말에 마음이 다 전달되었을 거라 착각했지. 어느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했음을 이제야 알아. 그럼 뭐 하나. 눈감은 순간부터 어떤 말도 전할 수가 없는데 대체 그 많던 시간 동안 무얼 하며 보냈는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정성을 담아서 한 번 더 쳐다보고 말 한마디 더 전할 걸 그랬어. 딸 아들 상관하지 말고 골고루 대할 걸 그랬어.


생전에는 딸이고 죽어서는 아들이라고 한 건 미안해서 그랬지. 더 짐이 될 수 없기도 하고 딸에게는 큰 인물 될 거라는 기대조차 인색했으니. 바라지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도 않았으면서 죽어서까지 짐이 될 순 없잖아. 서운했을 일도 많았을 텐데 그래도 자주 왕래한 자식은 딸이야. 그 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메모 많이 했지. 용돈 주는 거 기억해서 조금이라도 갚아주려고 세밀히 적었는데. 내 젊은 날 없이 살아봐서 조금이라도 갚아 주고 싶었지.


어떤 말도 더 이상 전할 수 없는 상황은 생각보다 가혹해. 평소 내 뜻을 되짚어 처리하리라고 여겼으니 욕심이지. 자손들이 모여서 인사 나누고 울고 웃고 하는 자리는 그렇게 또 잊혀 가는 게 순리야. 서운할 일도 조바심 낼 일도 없지. 이제 모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데 아쉬움을 너머 미안함만 남았네. 덜 아끼고, 더 많이 즐길 거로. 기대도 고루 해줘야 하는데 아들한테만 한 게 잘못이야. 마음은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아들에게만 그리 하게 되더라고. 딸들한테 말이라도 정답게 해주는 건데.




그렇다오. 놓고 보면 후회 덩어리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이면 저들도 간혹 이쪽으로 마음을 쏟는다우. 잊고 사는 것 같아도 알아채는 때도 있어요. 뒤통수를 내려치며 가슴을 치는 후회로 알게 될지라도 알아채는 시기와 방법이 그때뿐이니 어쩌겠소. 저들도 저들 뜻대로 살 수밖에 없으니 맡겨두어야지요. 높은 곳에서 구름이나 감상하고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놓고 보시오.


도대체 입은 옷이 언제 적 옷인지 구분이 안 가는 구려. 이 산이 생기기도 전부터 계셨나 보오. 반갑소. 이렇게나 많은 존재들과 함께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할 수 만 있다면 걱정 말라고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군요. 간간이 들어와서 저들의 힘을 키워갈 수만 있다면 다행인데 이곳에 오는 길이 험해서 그도 아쉽네요. 구경만 해야 하는 우리가 지켜만 봐야 하는 우리가 해줄 일은 정말 없군요.




자네는 3가지를 잘했지. 애 잘 키우고 밥 잘하고 잠 잘 자서 그렇게라도 건강유지 해줘서 고마웠네. 따라 사느라 고생했어. 내 좀 더 약을 챙겨줬어야 하는데 먼저 와버려서 약도 제때에 못 먹고 많이 아팠지? 애썼어. 이쪽으로 와서 저기 한 번 봐. 저쪽에서 해가 뜨면 동그랗게 이쪽으로 넘어갈 때까지 온종일 빛이 드는 곳이야. 내가 이 자리 하나 보려고 그렇게 공부를 했네. 어때 괜찮지? 동무들도 많고 말이야.


진작에 나한테 살림 좀 가르쳐주고 경제권을 주지 그랬어. 쓰고 나면 없어질 물용품들 그 이루는데 내 공 없이 되었을까. 절반은 내 몫인데 어찌 그리 야박했소. 내 뜻도 묻지 않고 처리하고. 온 생을 걸고 기대했던 자식이 온 생을 다 무시할 줄 몰랐네. 때려서 가르쳐야 하는 교육에 우리는 실패한 거야. 놓고만 키웠어. 더 쓰고 더 놀걸 하는 후회는 없소. 그저 한 생 감사했지.




내 부모조차 무심했던 학업을 삼촌이 설득해 줘서 계속할 수 있었어요. 가시는 날에 겨우 그 산까지 함께하고 그 후로는 간혹 마음만 그곳으로 갑니다. 계속 배우고 공부하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웠습니다. 딸자식들 부지런히 뒷바라지했어요. 비 오던 그날 그 산이 이제 기억 속에 가물가물 하지만 삼촌의 영향력은 그날 모인 모두의 가슴에 남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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