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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안 가본 옆집

6.

by 사과꽃


"톡톡! 토토톡!"


조용하던 산 초입에서 소리가 난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토신이다. 이제 막 무성해지는 길이 곧 잡초로 덮일 즈음인데 그 길을 짚는 건지 헤집는 건지, 사뿐사뿐 밟는 소리가 난다. 산짐승들이 지나는 줄 알았다. 그 소리 사이로 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와 함께 나란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내가 앞 설 테니 내 발자국을 따라와! 혹시 뱀이라도 나타날지 몰라"


지신이며 목신들이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았던가. 한 사람이 입을 뗐다. 요즈음 자주 내린 비는 길바닥까지 흙을 퍼 날랐고 오가는 이 없는 길은 이제 풀밭이 되었다. 길에는 잡풀만 올라오는 게 아니라 솔가지도 올라온다. 그 길을 기다란 막대로 톡톡! 토토톡 짚어 가며 올라오는 두 사람이다.


'내가 앞설 수도 있는데'


'내가 더 젊건만 두어 살 많다고 형 노릇이네!'


뒤 따르던 이가 싱긋 웃는다. 그래도 밟아주는 곳을 따라가니 편하다. 이곳은 올 때마다 모습이 다르다. 차를 세우고도 한참을 걸어 들어와야 하는 골짜기는 생각만 해도, 와서 바라만 보아도, 밟고 올라가도 언제나 먹먹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래 길이 나타났다. 우측 비탈을 오를 건지 좀 더 긴 좌측을 오를 건지 의논한다. 우측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산허리를 깎아 한집안이 이주했다. 울창하던 나무를 다 쳐내고 높은 지대부터 산 초입까지 반듯하게 줄을 세워 돌을 깔았다. 집안의 윗대들은 다 모았다. 그 길로 한 번 오른 뒤에는 웬일인지 가지 않는다.


조금 돌아서 가더라도 오늘은 좌측으로 오르기로 한다. 해마다 흙이 밀려 내려와 올 때마다 가파르다. 쓸려 내려온 흙보다 진 땅보다 그들을 막아서는 건 허리 위를 올라오는 잡초들이다. 얼굴을 위협한다. 어느 정도 걸어 이제는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도저히 잡풀을 뚫고 들어설 공간이 없다. 길이 없다.


다시 한번 뒤로 돌아선 이는,


"이쪽으로 올라가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자"


마치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 해놓고 더 나아간다. 또다시 제 뒤를 따르란다. 땅을 두드리고 풀을 제 끼며 얼마큼 오른 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눈앞에 제 키만큼 높은 봉분들이 하나 둘 셋넷도 아니고 그 이상의 수만큼 둘러 서 있지 않은가. 나란히 섰다가 서둘러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둘 다 말이 없다.




우측으로 뚫고 들어가 조금 내려와서 목적지에 다다랐다. 뒤로 부채같이 터를 닦고 가운데 두 봉분이 앉은 곳은 제법 지대가 높다. 눈에 넣을 듯 누군가를 찾 듯 바라보다가 이내 주위를 살핀다. 뒤쪽 벽도 좀 내려앉은 듯하고 아래 비탈은 많이 꺼지고 있다. 지대가 자꾸 내려앉는 건 아닐까, 두런두런 걱정을 주고받는다. 우측 나무 벽 너머에서 그렇게나 많은 봉분이 보고 있을 줄 몰랐다.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자네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아"


싸 온 과일과 술을 나눠 먹던 귀신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 주려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위 쪽에 앉은 석곽묘의 주인에게는 모두가 하나로 보인다. 훌렁훌렁 가지를 흔들어대는 목신들이나 흘러내리는 황토를 움켜쥐고 있는 토신도 그저 말이 없다.


"'늘 가던 곳으로만 다녔으니 못 봤지?"


"바라보는 시야가 그리 좁으니 날아다니는 우리가 부러울 게야!"


술 한잔 얻어 걸친 잡신들이 주고받는다. 그래서 이 주위에 서면 그렇게 서늘했던가. 올라오느라 진을 뺀 둘은 왠지 겸손해진다. 내 땅 내 터라고 소리칠 일이 아니다. 혹여 담장을 넘을까 봐 목소리도 줄인다. 공유 공존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귀신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귀신처럼 날아다니지 못해도 두 발로 걸으며 산세를 보아서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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