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子)가 발돋움하고 손을 뻗쳐도 영감은 더 높이 끌려간다. 오른쪽 팔은 토신이 왼쪽 팔은 목신이 잡았다. 오색황토로 만든 가운을 걸친 토신은 잡은 영감의 손을 놓고 망토 위로 패대기친다. 솔가지를 늘어뜨린 목신이 이쪽 손을 받아 솔가지 위로 집어던진다. 떨어지는 사이에 잡신들이 달려들어 쥐어패고 있다. 그러면서 어디론가 끌고 간다.
영감의 얼굴이 추하게 씰룩대도 자(子)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발아래 불빛들이 차츰 사라지고 칠흑같이 어두운 숲이 나타난다. 고성과 곡성으로 얼룩진 곳, 낮의 그 산이다. 가지가 타고 이파리도 다 탄 배롱나무 아래에 영감을 떨구었다. 비탈에서 구르다가 제가 난장질한 배롱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멈춘다.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 작자가 맞아"
"요 아래 길을 냈다고, 제 땅이라고 들어가는 입구조차 막고 텃세를 부리던 놈"
"산에 줄을 그어 이 집 저 집에 비싸게 떼어 팔았지!"
컴컴한 숲에서 잡신들이 울렁울렁 주고받는 말이다. 엎어진 영감은 배롱나무 그루터기마다 굴러가기 시작했다. 비탈이기도 하고 토신이 부리는 재주다. 이를 악다문 노인이 아무 말이 없으니 다음 나무로 또 다음 나무로 밀고 간다. 사과 한마디 안 해도 제 눈으로 배롱나무 가지의 처참함을 볼 수밖에 없다. 쪼그라지고 깨지고 상처 입은 제 모습과 똑 닮았다.
지켜보던 석곽묘에 앉은 이가 돌아 앉는다. 자(子)도 옆에 앉았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메우는 존재는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단다. 첫째는 제 자리다. 공존을 위한 제 구역이란다. 넘보거나 넘겨주거나 할 일이 아니다. 두 번째는 위해하지 않기다. 제 욕심으로 상대에게 해를 가하면 안 된단다. 이 두 가지를 어긴 자는 숲에 들어올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숲으로 공고하게 전해지는 울림은 구경하고 섰던 잡신들에게까지 파급되고 엎어진 영감에게까지 전해진다. 알아들었는지 이해했는지 요동도 없다. 훌렁 뛰어간 자(子)가 어깨를 건드리자 두 눈을 번쩍 뜬다. 어느 결에 자기 집 의자에 앉아 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만져본다. 피범벅이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다가 도로 고꾸라진다. 오물신이 몇 해 동안 고여있던 물인지 알 수 없는 시커먼 오물을 한 바가지 퍼부었다. 뱀 허물을 벗듯 흐느적거리는 벌레신들이 스멀스멀 영감 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