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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그거였어?

3.

by 사과꽃


물고 있던 영감 팔을 놓고 보니 말로만 듣던 시가지다. 높은 건물들에서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차들이 부지런히 오간다. 덜커덕 차를 세운 영감을 따라 내려선 곳은 야릇한 건물 앞. 산길이라 구부정한 줄 알았던 영감은 어깨만 구부정한 게 아니다. 다리도 어거적 거리며 걷는다. 시커먼 실내 안은 오래 묵은 공기 냄새로 꽉 찼다. 켜켜이 앉은 먼지를 밟고 들어선 영감이 금속 물체를 휙 집어던지고 의자에 앉았다. 눈이 쭉 찢어진 여인이 문을 열고 나온다.


"기어이 그 짓을 하고 왔수?"


"내 괘씸해서 말이야! 누구 맘대로 나무를 심느냐고"


"아이고 팔았으면 나무를 심든 꽃을 심든 그 집 사정 아니우! 그러다 벌 받아."


"산허리를 팔았으면 제 땅에만 심어야지 왜 옆에 땅을 침범하냐고."


"그쪽으로 접근하려면 걸어 들어가는 곳도 필요하다고 몇 번을 말해요. 솔직히 받을 만큼 받고 판 거 아니우! 그러다 제명대로 못 살아."


쯧쯧거리며 여인이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제야 이해한 자신(子神)은 머리에 뿔이 난다. 훌쩍 날아올라 그 머리로 영감 볼 태기를 쥐어박았다. 이쪽에서 한 번 저쪽에서 또 한 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리 없는 영감은 괜한 의자를 탓하며 엎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욕한다. 일말의 미안함도 없다. 산까지 찾아가 영역표시를 하고 온 짐승처럼 속 깊이 쾌재를 부른다. 발끝을 따라온 자신(子神)이나 잡신들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한다.




다리를 절며 서랍을 열자, 자(子)와 잡신들이 영감을 둘러싸고 들여다본다. 넓적한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는 돋보기를 낀다. 두어 해 전에 배롱나무가 심어진 산허리 조감도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라서 매매하다 보니 산 주인이 여럿이다. 그어놓은 색깔펜이 번져서 소유자를 확인하려면 여러 서류를 놓고 확인해야 한다. 어리석게도 누구 하나 진입로를 요구하는 자들이 없었다.


산꼭대기는 산꼭대기대로, 산 초입은 산 초입대로 잘라 팔아도 돈이 됐다. 일정한 날에 와서 벌초만 하면 될 것을 산 입구부터 제 땅까지 길을 내는 녀석이 있었다. 다른 주인의 땅을 물고 들어가는 건 알바 아니지만 새로 팔 땅까지 침범했으니 두고 볼 수 없었다. 파 놓은 땅을 원상 복귀시키는데 공갈 협박하느라 애먹었다. 영감이 책상 위에 놓인 돌 두꺼비를 툭 치며 내뱉는다.


"겁을 줬으니 제대로들 알아듣겠지? "


그래 놓고 뒤뚱거리며 안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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