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광활한 강이 이어졌지. 그리 높은 산도 없고 산이라면 돌 산이었어. 끝없는 평지 위로 긴 강이 흘렀고 돌 산 사이에서 자란 나무도 지금처럼 울창하지 않았어. 수종도 단출했지. 모래톱 같은 땅 위 에는 키 작은 풀이 자랐고 습지에는 물고기를 잡으러 오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다녔어. 강을 따라 늘어선 오두막 그 어딘가에 살았던 것 같아.
돌무더기가 흙이 되는 동안 수풀이 수목으로 변했어. 큰 산이 생기고 협곡이 만들어질 때 강가의 물을 막고 땅을 개간했지. 부락이 생기고 사람들이 늘어났어. 그즈음 이 산은 다시 솟아올랐어. 내가 들어오고도 많은 이들이 따라 들어왔는데 사라진 이들도 많아. 전 생과 이 생을 오가는 반복 속에 모습을 달리 한 이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곳을 가장 오래 지켰네.
가장 높은 곳에 돌 담을 쌓아준 덕을 봤지. 말이 변하고 의복이 변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이 돌담을 넘어오지 않더라고. 쉬 허물지도 않았어. 지형이 변하는 동안 담이 내려앉고 돌 담도 작아졌지. 내 앉은자리는 좀 특별했던 가봐. 나무가 솟고 오가는 짐승이 달라지는 기간보다 땅이 뒤집어지는 기간이 더 길었는데 그 기간 동안 이 자리가 크게 변하지 않았어. 많은 구경을 했네. 하늘과 땅 사이 인간이 하는 일을 숱하게 보았어.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인간들에 의해 불이 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생기더라고.
첫서리가 내린 산이 뿌옇게 잠들었을 때야. 갈잎 댓잎이 층층이 떨어진 길은 아직 짐승의 발걸음조차 없이 축축했지. 저벅거리는 둔탁한 걸음이 새벽 공기를 깨우더군. 실눈으로 바라보니 얇은 입성으로 오들오들 떨며 오는 이가 있었어. 한 젊은이가 벌게진 눈으로 갈지자로 걸어오더군. 모두 숨죽이고 바라보았지. 어느 정도 걸었던가. 한참을 섰더니 뭔가를 내려놓고 땅을 파기 시작했어.
부스럭거리는 소리 사이로 톡톡 거려도 얼어붙은 땅은 파이질 않더라고. 그때 알았지. 젊은이가 소리 없이 웅얼 대더라고. 땅 파느라 애써는 줄 알았는데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어. 손등으로 훔쳐가며 악을 쓰고 있더군. 한 줌도 내어주지 않으려는 땅과 그리 다투더니 어느 틈엔가 곱게 안고 온 뭉치를 고이고이 그 속에 내려놓네. 흙을 덮었어. 햇살이 들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어. 그때까지도 몰랐지. 묻어놓은 게 뭔지.
앉지도 서지도 않은 자세로 있다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한참을 신음하더라고. 지난밤에 곁을 떠난 아기였어.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해 누군지 알기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했지. 산속 깊은 곳에 이태 전에 들어와 땅을 파며 살던 자였지. 자꾸만 길 아닌 데로 가고 넘어지며 그렇게 내려가고 나서 숲은 한동안 무겁게 조용했지.
산에 와서 살던 이들이 많던 때였어. 간혹 무리들이 와서 잡아가기도 하던데 그러면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어. 오죽하면 숨어들어 고생을 할까. 산 열매며 나무껍질까지 먹어가며 살아내려던 그들에게 산속은 가혹하거든. 그래도 가솔들을 데리고 해마다 산으로 오는 이는 늘어나서 인가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가 싶었네.
이 산 저 산의 수목이 제법 울창할 즈음이었지. 깊은 산이 매일같이 우렁우렁 울었어. 큰 나무 동걸부터 베어 냈어. 여러 작자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수목을 세어가더니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고는 수년간 베어가기 시작했어. 베어내고 다시 가지를 쳐내느라 애먼 산까지 파 헤쳐서 온 산이 벌갰어. 이 산도 그때 많이 내려앉았지.
그렇게 다듬은 나무를 아주 멀리 싣고 간다더군. 바다건너까지 가져간다고 술렁술렁했지. 선 나무나 누운 나무나 흉흉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나무들이 내는 비명이 끊이지 않았어. 그 와중에 멀쩡하던 사람도 많이 탈이 났는데 나무가 덮치기도 하고 큰 덩치의 나무를 끌고 내려가면 깔리기도 했지. 사람에게도 칼자루를 함부로 쓰던 그들은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데 변변한 나무는 다 쓸어갔어.
가장 높은 곳에 앉았다 보니 산 아래가 훤히 보였어. 둘러싸고 있은 수목들은 내 수족 같고 덮고 있는 땅은 내 이불이지. 뛰어다니는 짐승들은 내가 품고 있는 목숨들이고 그러니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살갑겠나. 살아서 들어오는 이도 있고 들어와 눕기도 했어. 그들 모두가 내겐 친구지. 말을 나누든 나누지 않든 주고받는 마음이 있으니까 우린 그냥 알아. 그리 산 세월이 참 길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