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6장_사유는 어디로 되돌아오는가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되돌아옴이야말로 문명의 순환이다.




기술은 진보라 불렸고, 진보는 곧 앞으로 나아감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그 직선은 곧 무한한 속도를 향해 돌진하는 비행체와 같았고, 인간은 그 속도에 방향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문명의 궤적이 직선이 아니라 원형에 가깝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기술의 진화와 인간의 내적인 진화의 속도는 서로 너무 다르다. 인간은 종종 이 간극을 인식하지 못한 채, 눈부신 기술의 속도에 편승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과정은 능동적인 판단이 아닌 무임승차에 가까웠다. 자신을 비워낸 채 기술에 몸을 맡긴 결과, 그 대가는 곧 사회현상으로 드러난다.


인간성의 소외, 관계의 해체, 윤리적 감각의 둔화는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내려야 할 판단을 유예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기술을 진보라 부르며 직진해 왔지만, 그 궤도는 점점 인간을 중심에서 밀어냈다.


그러나 문명은 본디 직선이 아니다. 인류는 고통을 통해 전진하기보다, 상실 속에서 회복을 발견하는 존재였다.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문명의 또 다른 진보다. 이제는 파괴로 나아가는 개발이 아니라, 되돌아옴 속에서 의미를 다시 짓는 순환의 사고가 필요하다.


인간은 파괴를 통해 발전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실 속에서 되돌아오는 존재였다. 이 되돌아옴이야말로 문명의 순환이며, 기술의 비판적 수용이 아니라 감각과 사고의 재발견이라는 르네상스의 계보 속에서 이루어지는 귀환이다.


과거 르네상스가 인간의 눈과 손, 생각과 감정을 다시 세계의 중심으로 불러들였듯, 지금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르네상스는 기술을 통과한 뒤 되돌아온 감각, 그리고 AI를 마주한 후 재구성된 사고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 이 계몽은 지식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다움의 회복이다. 정답을 알려주는 AI가 아닌, 질문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의 회복. 속도와 효율이 아니라 공감과 반성이 만들어내는 느린 성찰이 우리의 다음을 이끌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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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기술이 인간의 속도를 앞질렀을 때마다, 인류는 그 간극을 성찰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중세 말, 르네상스는 바로 그 틈에서 피어났다. 그것은 단지 예술이나 철학의 진흥이 아니라, 인간을 다시 중심에 놓겠다는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소수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소수는 시대의 열차에서 무임승차를 거부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낙오자가 아닌 질문자였고, 느린 자가 아닌 되돌아본 자들이었다. 우리가 오늘 마주한 AI와 디지털 기술의 속도 역시, 또 하나의 르네상스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르네상스는 복고가 아니다.


감각과 사고의 부활, 즉 ‘자각을 가진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운동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 움직임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기술의 흐름을 따르되 방향을 묻는 소수의 손이 되어야 한다. new르네상스는 다시금 인간을 위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르네상스, 돌아온 르네상스, 부메랑



계몽은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판단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AI가 모든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에, 진짜 계몽은 스스로 질문을 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인간다움은 AI의 기준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윤리적 직관과 감정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인간다움을 구성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느림을 회복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AI 시대의 계몽은 결국 ‘자각’의 다른 이름이다.


부메랑은 던진 자에게로 되돌아온다. 기술이 인간의 손에서 출발했다면, 그 기술의 윤리적 방향성 또한 결국 인간의 자각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것이 부메랑의 철학이다.


진보는 무조건적인 나아감이 아니다. 기술이 앞질러 달릴 때, 그것을 무작정 추종하는 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없다. 진보란 길을 잃은 자들을 다시 돌아보는 리더의 윤리이자, 불안에 떠는 이들을 기다려 함께 걷는 선지자의 태도다.


앞만 보고 달리는 자는 결국 공허 속에 던져진다.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를 잊은 채 자기 목적만을 향한 기계처럼. AI 시대의 진보란 그런 무의식적인 속도경쟁이 되어선 안 된다.



되돌아보라.



기술로 인해 지워진 타인의 목소리, 외면된 감각, 위임된 판단을 다시 직면하라. 그리고 그들과 다시 같이 나아가라. 그것이 진보이며, 그것이 이 시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일반론적 도덕개념이다. 진보는 앞을 향한 돌진이 아니라, 방향을 묻는 ‘되돌아오는 사유’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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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선형이 아닌 반성이다.


이 질문에는 아직 답이 없다. 아니, 답이 있어서는 안 된다. 되돌아옴은 늘 ‘열린 문’이다. 기술 이후의 인간은 하나의 형태로 정해질 수 없으며, 사회마다, 개인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다시 구성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다. 사유는 어디로 되돌아오는가? 그 끝에 선 우리 각자가, 그 질문의 종착지다. 이 장은 끝이 아니다.

답이 없되 방향은 정해져 있다. 인간 중심의 사회, 감각을 되찾고 사고를 회복하는 문명. 그러나 그 방향을 향해 가는 방법은 열려 있다. 누군가는 타인과 감각을 공유하며 오프라인에서 함께 걷는 방식으로, 또 다른 이는 내면의 예술적 감각을 서서히 길어 올리는 고독한 탐색으로 그 길을 찾아간다.

개인, 소수, 다수는 저마다 다른 리듬과 언어로 인간됨을 탐구한다. 서로 다른 방법들이 모여 이루는 풍경은 AI에 의해 통제되거나, 동일화된 하나의 판단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다양성은 각자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무의식적 계몽의 궤도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부메랑처럼, 사유는 결국 다시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기술을 통과해 더욱 깊어진 감각으로, 인간은 다시 자기 존재를 묻는다. 끝은 없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자각의 이름으로 움트고 있다.




프로젝트 : 부메랑_1부_실재를 잃어버린 시대.. :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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