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5장_자각을 유지한 채 살아가기

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by rio


자각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어쩌다 삶의 주도권을 타자에게 위임하게 되었을까.

기계에게 사고를 넘기고, 감정을 모사하게 하며, 관계마저 아바타로 대체한 채

인간은 점차 ‘스스로 존재한다’는 감각을 상실해 간다.



우리는 한때 모든 것을 질문하던 존재였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를 물었고,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으며,

우연히 부딪힌 낯선 존재에게서도 나와는 다른 우주를 상상하곤 했다.



AI가 모든 것을 대답해 주는 세계에선, 질문의 필요조차 사라진다.

정답은 언제나 곁에 있고, 판단은 예측 시스템이 대신하며, 경험은 클릭 몇 번이면 재현 가능하다.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되묻지 않는 세계에 도달했다.

그러나 모든 질문을 잃은 존재는, 더는 자신이 왜 살아가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금 질문하는 용기를 회복하는 일이다.

정답을 몰라도 괜찮다.

"왜?"라고 묻는 것, 그것이 자유의지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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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된 삶은 우리를 화면 속 존재로 만들었다.

기계가 움직여주고, 감정은 이모티콘으로 표기되며, 실재의 고통은 단순화되어 기호로 표기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래 ‘몸으로 느끼는 존재’다.

계단을 오를 때의 숨참, 손끝의 떨림, 타인의 체온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의 총체다.

하나의 고민을 심연 속이 자아와 끊임없이 소통하여 이루어내는 결과물은

과정의 아름다움을 언제나 대표하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몸도 뇌도 더 이상 깊숙하고 길게 쓰이지 않는다.

우리는 불편함을 제거한 만큼, 판단의 실재감도 함께 잃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아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사라지면, 세계는 단지 데이터의 조합이 될 뿐이다.

판단의 실재감을 회복하는 윤리적 행위가 필요한 시점은 바로 이것에 있다.


이렇게 감각이 퇴화한 시대에, 타자와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피상적이 된다.

서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전에 답을 알고 있다는 착각, 공감보다 해석이 빠르고,

해석보다 판단이 앞서는 사회.

이 안에서 책임이란 개념은 급속히 희미해진다.

실수한 이는 있어도, 잘못한 이는 없다.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타자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이제, 감정 없는 네트워크 위에서 죄 없는 괴물이 되어간다.


인간은 타인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윤리적 존재’가 된다.

부딪히고, 다치고, 울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책임은 태어난다.

감각의 윤리는 타자를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닌,

타자 앞에서 내가 변화해야 한다는 감각이다.



이러한 시대에도, 자각하는 인간은 존재한다.

침묵 속에서 다시금 질문을 품는 이들, 기계가 주는 답 대신 삶의 이유를 되묻는 이들,

타자와 마주할 때 책임을 감각하는 이들.


그들은 똑같은 코드를 살아도 서로 다른 시간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자각은,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이 공동체는 같은 답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질문을 존중하며,


다름 속에서 인간 됨을 회복하려 한다.

공동체란,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를 무시한 채 몰입된 개인화 알고리즘 속에서, '자각한 자’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들은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서로 다른 세계를 경청할 줄 아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공동체는 동질성의 연결이 아닌, 이질성 사이의 연결로부터 출발한다.



틀린 것은 비판하되, 다른 것은 수용한다.




문명의 진보는 인간의 자각을 강화시킬 때 비로소 윤리적일 수 있다.

르네상스가 인간의 존엄을 예술로 승화시켰듯,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또 다른 르네상스는

기술의 틈 사이에서 인간성을 지켜내는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진보해 왔는가?

기술은 발달했지만, 자아는 왜소해졌다.

모든 것을 ‘더 쉽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자신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나 진정한 진보란, 자신을 잃지 않는 속도의 관리이다.

돌아간다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인간성’이라는 궤도 위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회귀해야 할 윤리다.

이 회귀 속에서 우리는 AI를 오롯이 도구로서 수용하고, 주체를 우리로 적용하여

인간 주체의 올바른 사회를 나아갈 수 있음이 분명하다.

또한 바로 그 사회가 '5차 혁명'의 반석으로서 세워지게 될 것이다.



“5차 혁명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에서 시작된다. AI가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시 자각하는 과정이다.”



미국의 연구자 댄 헨드릭스는 AI가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인간처럼 판단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지만, 이건 동시에 두려운 질문을 던진다. AI가 인간의 윤리를 흉내 낸다고 해서, 그게 정말 ‘윤리적’인가? 윤리라는 건 단순히 정답을 찾는 문제가 아니다.

수천 년간 인간이 사회 안에서 경험하고 부딪히며 만들어낸 감정과 약속의 역사다.



독일의 윤리학자 에이미 반 빈스 버그는

“AI는 인간의 윤리를 반영해야 할 뿐, 판단의 주체가 되어선 안 된다"라고 말한다.

철학자 조너선 버치 역시

“AI가 도덕적 권위로 받아들여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책임질 기회를 잃는다"라고 경고한다.


이건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판단을 포기하고 비생명체에게 도덕적 결정을 맡긴다면, 결국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까지 희석시켜 버리게 된다.

살아 있는 존재로서의 무게, 자아의 책임, 감정과 공감의 윤리까지 전부. 우리는 그래서 지금, 새로운 회귀를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기술의 진보였다면, 앞으로의 5차 혁명은 ‘윤리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인간이 신의 권위를 이겨낸 것처럼, 지금 우리는 AI의 권위에 맞서 인간 중심의 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윤리는 코드가 아니다. 도덕은 알고리즘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느끼고 지킬 수 있는 감각이다. 결국 5차 혁명의 중심에는 ‘도구로서의 AI’와 ‘주체로서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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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로서의 인간이 뿜어내는 빛은, AI라는 스테인리스 글라스라는 필터를 거쳐 더욱 황홀한 미래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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