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기술은 초 단위를 말하지만, 인간은 연대를 기억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도착하지만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한다.
의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AI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화폐를 이야기하는가?
하지만 이 전환은 갑작스럽지도, 낯설지도 않다.
왜냐하면 지금 이 사회에서 ‘통화’는 더 이상 숫자나 지폐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판단하고 거래하는 데이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자동환전 시스템이 도입되며,
우리는 어느새 ‘화폐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화폐에 반응하는 인간’으로 변모한다.
우리의 손은 여전히 휴대폰 위에 있지만, 거래의 본질은 점점 멀어진다.
우리는 결제할 뿐이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고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가치 저장의 자유’를 약속했지만, 결국 소수가 독점하는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CBDC는 공공의 편의를 말하지만, 언제든지 개인의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정치적 레버리지’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흐름을 가능케 한 AI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이제 가치 판단의 주체로서 화폐의 작동 방식을 설계하고 통제한다.
슐로모프가 말했듯, 우리는 점점 ‘사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생성하고 반응하는 객체’로 변해간다.
AI는 우리의 소비, 행동, 심지어 감정 패턴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바탕으로 시장을 작동시킨다.
그러나 이 예측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자유를 ‘관리 가능한 통제’로 바꾸는 구조적 기술이 된다.
브레머와 루비니는 경고했다. 디지털 통화는 기술의 이름으로 포장된 권력의 재편일 수 있다고.
국가의 통화 정책이 AI와 접속되는 순간, 시민은 더 이상 정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선택된 정책에 복종하는 객체가 될 위험에 처한다.
들뢰즈는 이를 ‘통제 사회’라 불렀다. 과거의 억압이 감옥이나 규율이었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선택지 속에서 선택하도록 유도되는 것이 억압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결제하고 자유롭게 이체하지만, 사실상 ‘유도된 자유’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도착했지만,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한다.
이 장은 그 무수한 ‘빠른 도착들’이 우리를 어디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묻고자 한다.
기술은 초 단위를 말하나, 철학은 연대를 말한다.
우리는 이제 기술이 놓은 시간의 속도에서 내려, 다시금 인간의 속도로 윤리를 찾아가려 한다.
※ 관련 철학적 배경:
슐로보프 (Shoshana Zuboff): 감시 자본주의 이론
브레머 & 루비니: CBDC와 기술 권위주의의 위험
질 들뢰즈: 통제 사회 이론 — 선택의 유도화
우리는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빠르게 도달하게 만들었지만, 그 결과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었다.
판단은 빠르고, 선택은 쉬워졌지만, 그 안에 인간이 머물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느려지기로 한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올바르게
기술이 다다르지 못하는 윤리의 느림으로
우리는 왜 선택하지 못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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