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디지털의 자유는 결국 디지털의 통제로 이어진다."
비트코인은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일종의 '패러다임'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도 은행도 아닌, 코드가 만들어낸 완전한 탈중앙 통화.
21세기 판 금이라 불리며, 누구도 위조하거나 발행을 조작할 수 없는 순수한 신뢰의 결정체였다.
채굴이라는 노동 과정을 통해 생성되고, 탈 권위적인 블록체인에 기록되며, 어떤 중앙기관의 승인도 없이 거래되는 화폐로 인식되어 왔다.
누구나 채굴할 수 있고, 범세계적인 통화이며,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졌던 윤리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상은 현실에 부딪혔다. 총발행량이 고정된 그 유한성은 오히려 투기의 대상이 되었고, 가격은 실물경제와 무관하게 요동쳤다.
비트코인을 많이 소유한 이들은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봉건 영주가 되었고,
그 권력은 알고리즘의 이름으로 은밀하게 농축되었다. 비트코인은 ‘모두의 통화’를 꿈꿨지만,
지금은 '소수의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현실 경제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는 이 통화는, 비트코인이 실패한 유통성과 안정성을 보완하고자 했다.
1달러에 고정된 가치는 거래를 가능케 했고, 그 안정성은 점점 더 많은 디지털 플랫폼 속에 통합되었다.
이제는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CBDC)까지 등장하며, 통화의 디지털화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시스템이 AI 기반 알고리즘을 통해 운영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도, 스테이블코인도, 결국 인간이 제어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다.
비트코인은 채굴 난이도 조정, 네트워크 유지, 거래 속도 최적화 등에 이미 AI 기반 예측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고, 스테이블코인은 더 노골적으로 알고리즘 통화로 움직인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AI를 통해 실시간 금리 조정, 소비 추적, 자동 환율 결정, 심지어는 개인별 맞춤 복지금 분배까지 계산할 수 있다.
결국 형태는 달라도, 두 통화 모두 AI의 자동성과 정밀함에 기대고 있으며, 인간은 그 구조 바깥으로 밀려난다.
처음에는 ‘효율’을 위해 권한을 넘겼다. 빠른 거래, 간편한 송금, 실시간 시장 대응, 공정한 세금 부과 등
모든 것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설계되었다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이상한 점을 하나씩 발견한다. 실물경제의 가격이 어느새 오르고 내리는 상황 속에서 통화 가치가 변화하는 논리도 이해하지 못한 채 AI의 계산 결과만을 수용하는 위치에 서 있다. 기술이 초 단위로 결정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속도와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관찰자로 전락한다.
비트코인은 자유를 상징했지만,
그 유한성은 곧 투기를 불러왔고,
그 결과는 소수의 권력 집중이었다.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성을 약속했지만,
그 기반은 중앙 집중 알고리즘이었고,
그 결과는 더 정교한 통제 구조였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있는가?”
“이 모든 흐름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주체인가?”
또한 더 근본적인 문제는,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동시에 시장에 유통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
비트코인은 정해진 총량이 있다.
채굴을 통해야만 발행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채산성은 낮아진다.
이는 필연적으로 희소성을 기반으로 한 가치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어떠한가. 국가가 발행하면 그만이다.
과거 종이 화폐를 인쇄하듯, 이제는 중앙은행이 클릭 한 번이면 디지털 자산을 '합법적으로' 무제한 찍어낼 수 있다.
AI는 이 두 통화 간의 수요와 공급, 유동성과 가치의 차이를 정교하게 계산해 실시간 환율을 조정할 것이다. 그 자체로는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정교함 때문에, 사람들은 어느 순간 '왜 그 환율이 정해졌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소비자가 된다.
AI는 사람들의 심리, 시장의 흐름, 글로벌 이슈 등을 예측하여 비트코인을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환산하고, 각국의 CBDC 가치를 '공정하게' 조율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언제나 무한히 공급될 수 있는 쪽에 속한다.
만약 어떤 국가가 정치적 위기나 경제 불안정을 겪고 있다면 그 나라의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 대비 끊임없이 평가절하될 것이고, 그 평가는 AI에 의해 자동으로 수행된다.
자유는 무한 발행되지 않는다
그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짐바브웨의 통화 폭락, 혹은 루블화의 붕괴처럼
한 나라의 화폐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는 디지털판 재현이 되는 것이다.
무제한으로 발행되는 통화와 유한하게 고정된 자산.
이 비대칭 구조에서 환율이 자동으로 책정된다면,
그것은 결국 AI가 '국가의 경제적 존속 여부'를 판단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통화 주권의 문제이며, 인간의 존엄과 연결된 윤리적 문제이다.
결국 이 모든 구조 비트코인의 유한성, 스테이블코인의 무한성,
그리고 AI의 환율 통제 시스템은 우리가 점점 더 ‘알아야 할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삶’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왜 이 가격인가?”
“왜 나의 자산은 가치가 하락했는가?”
“왜 그 나라는 무너졌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이상 인간이 찾지 않는다.
AI가 알고 있고, AI가 판단했으며, 우리는 그 결과를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부에서부터 우리는 거듭 말해왔다.
판단과 책임은 반드시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 짊어져야 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기술도, 인간의 윤리적 결정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유는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의 값으로 우리가 구매한,
단언컨대 강력한 무기이다.
그리고 이 무기는, 자동화된 알고리즘 속에서 가장 먼저 녹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