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무지한 다수의 침묵은, 능력 있는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가장 편리한 조건이 된다
AI와 디지털 화폐가 결합한 사회에서는, 기술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사이의 격차가 점점 분명해진다.
CBDC, 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 그리고 이를 뒷단에서 운용하는 AI 시스템들은 ‘모두를 위한 금융 인프라’라는 이상을 내세우지만, 실제 구조를 살펴보면 상황은 다르다.
환율, 세율, 유통 속도 등 주요 금융 변수들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에서, 일반 개인이 판단하고 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복잡성과 속도는 특정한 기술적 역량 없이는 따라잡기 어렵고, 구조 역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해석조차 쉽지 않다.
이처럼 기술적 장벽이 높아질수록 금융 시장의 주도권은 특정 소수 집단에 집중된다. 이들은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통제하며,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데 있어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반면 다수는 결과를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고, 시장이 열리고 닫히는 결정권 역시 소수에게 귀속된다.
1장에서 언급된 자동환전 시스템은 편의성을 강조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판단 능력을 분산시키는 방식이었다. 2장에서 다룬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의 구조 역시 겉보기에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나, AI가 개입하는 순간 실질적 통제권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희소성과 발행 권한의 차이는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3장에서 다룬 바와 같이, AI의 판단이 곧 규칙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변화한다. 화폐는 이제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받았는가’로 정의된다. 종이화폐 시절 지갑 속 현금이 전적으로 개인의 것이었다면, 디지털 화폐는 코드 한 줄로 제한·동결·목적 지정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전환은 부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고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금융 활동 전반 내 투자, 환전, 세율 적용이 알고리즘과 운영 주체의 판단에 따라 작동하는 환경에서, 다수는 소비 행위에 적응하는 구조에 머무른다. 기술 격차와 정보 비대칭성은 소득 및 자산 격차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하며, 이 불균형은 경제 영역을 넘어 정치, 문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결국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소수는 더욱 강력한 자산과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며, 반대로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는 다수는 점점 더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 무지한 다수의 침묵은, 능력 있는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가장 편리한 조건이 된다”라고 했다. 지금 사회는 그 조건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1부에서부터 다뤄온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판단과 책임은 기술이 아닌 인간이 감당해야 한다.
자유는 자동화된 판단에 기대는 순간 본질을 잃고, 인간은 시스템에 의해 분류되는 데이터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기술의 중립성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설계되고 누구를 위해 작동하느냐는 점이다. 기술은 사회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수단이며, 따라서 그 통제력은 단순한 기능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통화 질서를 택하는가는, 단순한 금융 혁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 공동체 구조를 포함한 윤리적 선택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