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 부메랑 _ 수백 년 만에 다시 필요하게 된 스스로의 자각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AI가 그렇게 판단했을 뿐이다.
자아의 소멸과 책임의 회피
“그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기계가 그렇게 판단했을 뿐이다.”
이 문장이 흔한 자기 방어로 통용되는 시대, 우리는 과연 죄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도덕적 감각은 판단의 주체가 있을 때 작동한다. 그러나 AI가 도덕적 결정을 ‘대행’하게 되면서,
인간은 점차 판단과 감정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는다. 실수가 발생해도 책임은 흐릿하고, 죄책감은 구조 속으로 분산된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편리한 윤리’라 부른다.
잘못은 남아 있으되, 잘못한 자는 사라지는 사회. 그리고 그 빈자리에 인간은 AI를 세워, 자신을 면책시킨다. 이런 구조는 사회 전체를 무책임의 장으로 바꾼다.
책임의 지속적 위임은, 단지 인간이 죄책감을 덜어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무생명체인 AI에게 ‘판단’과 ‘판결’이라는 존엄성의 기호를 부여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AI가 맞다고 했으니"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결정을 수용하고, 그 결과에 따르며, 심지어 그것을 더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이라 믿는다.
이 신뢰는 곧 존엄의 이식이다. 판단 주체에게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AI는 살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반성할 수 없으며,
책임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점차 AI에게 도덕적 판단권을 넘기고, 스스로는 판단하지 않는 존재로 퇴화한다. 그 결과, 자격 없는 존재에게 존엄을 부여하고, 정작 존엄한 존재였던 인간은 점차 윤리적 지위를 상실한다.
표면적으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한 선택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고유한 판단권이 추방당하는 과정이다.
비생명체에게 권위가 집중될수록, 생명은 기능으로 환원되고, 존엄은 논리로 치환된다.
우리는 AI가 만들어준 논리를 거스르는 것을 점점 두려워하게 되고,
그 논리의 뒤편에서 스스로의 도덕적 직관을 '비효율적'이라 여기게 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다. 인간은 잊지 않기로 약속한 자이다.
결국,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죄의식이 아니라 계몽이다. 반성은 곧 자각을 동반한다.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반성하지 않으며, ‘내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조차도 AI에게 맡겨버린다.
그 결과, 문명은 움직이지만 깨어 있지 않다.
우리는 발전하고 있지만, 그 방향이 올바른지는 묻지 않는다.
질문 없는 진보, 반성 없는 미래.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의 윤리 좌표다.
기술은 이미 인간의 손을 벗어나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판단은 위임되고, 잘못은 희석되며, 죄는 사라진다.
그러나 이 흐름이 영속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존엄성을 비생명체에 부여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생명의 존엄을 희석시키는 결과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계몽이 필요하다.
그것은 기술을 부정하거나 과거를 동경하는 퇴행적 계몽이 아니다.
AI라는 존재를 비판 없이 수용하거나,
전능의 도구로 숭배하지 않는 도덕적 주체로서의 자각을 기반으로 한 인간 중심의 계몽이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계몽이 예술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드러냈다면,
지금 이 시대의 계몽은 AI를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와 기준을 통해 다시 인간성의 중심을 되찾아야 한다.
기술은 발전하되, 그 발전의 척도는 인간성을 지키는 데 두어야 한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단 하나,
“자아의식을 유지한 채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인간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