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인테리어였다

by rio

흔하디 흔한 대한민국 아이였다.

학창시절에 크게 혼나지도, 크게 싸우지도 않았던 친구들과 놀기 좋아한 남자아이였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인테리어업을 하고 계셨던 것 정도일 것이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식탁에는 도면이 있었고,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사무실이 딱히 없던 아버지는 집 전화번호가 대표번호였다.

밝은 목소리를 억지로 내는 법을 나름 깨달았고, 전화가 완전히 끊고 나서 혼잣말로 꿍시렁거리는

스킬도 그 때 눈으로 담았던 것 같다.


원래 나는 로봇 공학자가 되는게 꿈이었다.

실제로 초등학생 시절 지정된 코드를 입력하여 바닥에 줄이 그어진 노선을 따라가는 로봇을

교사분들과 다같이 만들어 과학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겪는 획일적인 교육시스템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였나, 아니면 어머니께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른 건 다 제외해도

다니게 하셨던 논술학원이 전환점이었나,

난 국어가 좋아졌다.

책을 읽다가 '아하'라고 외치는 걸 좋아했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납득하는 자세도 깨우친 것 같다.

이즈음 난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우리 가족은 내 10대 시절의 대부분의 주말을 당일치기라고 근교 여행을 다녔다.

자연스레 명소 주변의 카페를 많이 다니게 되었고, 숙소도 다양하게 다녔었다.

항상 아버지는 흔히들 있는 직업병처럼 어딜 가던지 그 공간을 심도있게 바라보셨다.

'이거 을지로에 가면 내가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처음보는 건데 뭘로 만든거지?'

국어 선생님이 장래희망이었던 나는 덕분에

내가 공간을 만들 수도 있겠구나라는 꿈이 생겼다.

장래희망과 꿈은 다른 법이니까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처음 여자친구를 교제하게 되었다.

사실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아이였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나에게는 이 아이말고는 여성분들은 '돌'이었다.

다들 겪는 그 시절의 주인공 역할에 빠진 드라마 속 남주 역할이 바로 나였다.


그 아이는 건축으로 특성화고를 진학한 상태였고, 난 내가 디자이너가 되서 그 아이의 삶에

끼어들고 싶어했다.

내 장래희망은 뒷전이 되었다. 대학입학이라는 부득이한 공부 속에 잠식된 장래희망은 뒤로 한채

내 꿈이 그 아이의 꿈과 일치한다는 기쁨에 사로 잡혔던 것 같다.


그렇게 난 미술공부 하나 하지 않은채 오로지 수능으로 디자인계열 학부로 입학했다.

물론 흔하디 흔한 드라마처럼 그 아이와는 헤어졌지만,

꿈까지 상실되지는 않았었다.

아버지 일을 같이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과,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꿈은 아직 유효했으니까


그렇게 난 흔하디 흔하게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고

무난하게 졸업을 하며 자연스레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며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현재 약 10년차의 디자이너 겸 현장소장의 역할을 해내어가고 있다.


간혹 상담을 하다보면 개인적인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중에 꽤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실장님, 저희 자녀가 아직도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요.

실장님은 어떻게 하다가 인테리어를 하시게 되었나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 긴 서사를 다 말해드릴 수는 없다.

하지만 오히려 난


'인테리어를 하게 된 스토리는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 업을 평생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있습니다.'


그럼 모든 부모님들은 바로 되물어보신다. 누군가의 결정적인 경험은 너무나 좋은 이정표인걸 알고 계시기에

그럼 난


'처음 입사하고 첫 날 현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아파트 단지에서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제가 매일 출근하는 이 아파트로 다들 매일 퇴근하신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 어떤 일이 이렇게 누군가의 삶에 직접적으로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공사가 진행되는 약 30일 간의 나의 출근은

그 누군가에게는 매일 혹은 평생의 퇴근을 책임진다.


내 일터는 누군가에게는 쉼터가 되고,

내 책임감의 결과물은 누군가의 매일의 종착점이 된다.


난 이 날의 경험 그 하나만으로 인테리어업에 평생을 종사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할 수도 있겠다는 꿈이 업이 되었다.

난 결국 인테리어였던 것이다.



난 이번 연재를 인테리어 각 공정의 순서에 맞게 짤막한 설명과 동시에

내가 혼자서 고뇌했던 어떤 의미를 써내려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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