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누 Nov 19. 2024

몸이 아프면 글을 못 쓴다

쓰고 싶으면 몸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마트에 갔는데, 국내산 배추 3 포기가 5,600원이었다. 카트에 배추를 잔뜩 싣는 사람들 옆에서 나도 크고 실한 배추를 골라 카트에 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김치냉장고에 김치가 떨어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본격적인 김장을 하기 전에 6포기 정도만 가볍게 할 생각이었다. 김치찌개와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 식구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신김치가 넉넉히 있어야 한다. 작년에 사다 놓은 굵은소금과 어머님이 주신 맛있는 젓갈이 있었다. 다른 때는 절임배추를 사고, 시장에서 양념을 맞춰 사서 김치가 힘들지 않았는데, 너무도 싼 배추를 보니 욕심이 생겼다.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된다.

배추를 절였다. 예전에 소금을 적게 쳐서 김치가 무른 경험이 있었다. 그 후부터 나는 약간 과하다 싶게 소금을 친다. 짜면 씻으면 되지만, 싱거우면 답이 없다. 소금물에 종일 절인 배춧잎 하나를 집어 구부렸다. 딱딱해서 꺾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휘어졌다. 절인 배추를 씻고 소쿠리에 널어놓고, 물을 뺀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앉은 자세로 배추를 씻는데, 왼쪽 엉덩이 어딘가에서 뿌득 소리가 났다.

기분이 이상했지만, 하던 일을 계속했다. 소쿠리에  배추를 나란히 올려놓고 일어서는데 “아이고.”소리가 났다. 그 후로 어떻게 김치를 하고, 저녁을 차렸는지 모른다. 나는 90세 난 노인처럼 걸으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자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다음날 차에 올라타는데 "악"소리가 절로 나왔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심한 고통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손을 뻗을 수도 없었다. 고개를 숙이면 왼쪽 허리와 엉덩이 어딘가에서 깊은 통증이 밀려왔다. 


 걸으면 오히려 괜찮았다.

앉아서 글을 쓰고 일어났더니 눈물이 났다. 책을 읽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그마저 안 되니 소파에 누워 티브이만 봤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집 앞에 있는 한의원에 갔다. 38년생 시어머니가 강추한 그곳에서 처음 보는 한의사님께 증상을 말씀드렸더니 일주일정도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사혈을 했는데, 덩어리 피가 나왔다. 간호사가 피를 보여주며 많이 뭉쳐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저 덩어리가 내 몸에서 나왔는지 신기했다. 나의 아픔은 거짓이 아니었다.


 고개를 숙여도 아프지 않았다.

거짓말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도대체 왼쪽 엉덩이와 목은 어떤 관계가 있길래 침을 맞고, 전기치료를 하자 내 몸이 제대로 움직이는 걸까. 저녁즈음 통증이 다시 찾아왔다. 약기운처럼 침기운도 시간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에도 한의원 침대에 누웠다.


 토요일 생리가 찾아왔다.

믿기지 않았다. 두 달 동안 4번째다. 달력을 보니 15일에서 19일 간격이다. 폐경이 가까워지면 생리가 불규칙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도 그럴 때가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기는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허리통증이 가라앉았다. 아픔을 더한 고통으로 잊은 셈이다.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쓴다. 며칠 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니 꿈자리가 사나웠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밤마다 찾아왔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다. 앉아서 글을 쓰지 못하는 나는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들에 숨이 막혔다. 글을 쓰지 못하는데 답답했다. 말은 종일 안 해도 살 수 있는데, 글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누가 읽든 말든 쓰고 싶다.

그러려면 몸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껏 마음의 소리에만 신경 쓰느라 몸을 소홀히 했다. 하루에 만보를 걷고, 30분 스트레칭을 한 후에 “이 정도면 됐지?”하고 돌아섰다. 나이를 먼저 먹는 몸이 늙어가는 건 모르고, 어린 정신만 붙들고 살았다. 덜 아파지니 다시 글을 쓴다. 이제는 몸도 추스르며 천천히 함께 가야 한다. 아프고 나니 다시 아프기 싫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