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일요일 아침 7시에 독서모임이 시작됐다. 2024년 12월의 독서모임 책은 노벨문학상을 기념하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올해 초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블로그포스팅까지 했기 때문에 이번 독서모임은 느긋하게 있었다. 그러다 바빠진 건 리더가 7개의 질문을 던지면서였다. 분명 책을 읽고, 그것도 몰입해서 읽고, 글도 썼는데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다.
독서모임날짜는 다가오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다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전에 먼저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소설 앞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 소설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속의 경하가 작가는 아닌가 싶다가 이건 소설인가 현실인가 싶다가 또 꿈인가 아닌가 하더니 죽었나 살았나로 이어졌다. 한강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몇 번 곱씹어야 겨우 읽히고, 눈부기에 아름다웠다.
소설의 재미만큼이나 재미있는 건 독서모임 참석자들의 다양한 해석이었다.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에 이런 글이 나온다.
문학작품의 '해석'은 줄거리 이면에 무언가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단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하면 우리는 그것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 조각씩 찾아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선 세심한 독서다. 줄거리 뒤에 숨은 이야기는 작은 뉘앙스 차이를 통해서도, 의미심장한 단어 하나를 통해서도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며, 때로는 소설 전체가 거대한 상징일 수도 있다. 이를 알아차리려면 대강의 줄거리만 파악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해석을 위해 세심한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가 및 작품과 관련된 정보다. 줄거리 이면에 숨어 있는 메시지는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나, 그가 살던 시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작가의 삶에 대한 정보와 그가 살던 시대와 지역의 사회문화적 상황에 대해 알고 있다면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는 일이 훨씬 쉬워진다.
오늘 독서모임은 여느 때보다 치열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읽으면서도 힘들었던 한강작가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소설가 한강에 푹 빠지신 회원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풀 빠져 풍성한 시간이었다.
나도 열심히 손을 들고, 발표했다. 독서모임에 처음 참석할 때는 내 해석이 틀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느라 틀에 박힌 말만 했는데, 이제는 솔직하게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한다. 나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두 시간이 소중해졌다.
독서모임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그만 글쓰기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말았다. 요즘 내가 읽은 소설들이 마침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이라 더 그런 건지도 모른다. 나는 대가들의 글을 읽으며, 이런 글을 쓸 자신이 없어서 글을 하나도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근황토크형식을 빌어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자 리더님이 말했다. 한강처럼 글쓰기에 사명을 갖고 어떤 소명의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것만이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포장만 그럴듯한 디저트느낌이라고 말하자 리더는 메인요리처럼 디저트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단편이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만의 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작가 지망생인 나는 그 말이 부러웠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나만의 글은 어떤 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어떤 날은 가볍고 사실적인 단편을 썼다가 어떤 날은 어둡고 진한 다크초콜릿 같은 글을 쓴다. 쓰다 말고를 반복하느라 노트북 안에는 미완성의 소설들이 한가득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작했던 소설들을 다 마무리 짓고 싶다. 지어야 한다. 짓고 다시 시작한다. 그것이 목표다. 중요한 건 생각만 하고 있다는 거다. 핑계.. 핑계.. 오로지 핑곗거리만 찾고 있다. 쓰기 *실픈 마음이 쓰고 싶은 마음을 누른다. 어떤 날은 쓰고 싶어 미치다가도 일어나 앉아 있으면 얼마나 고단할지가 떠오르면 마음을 접는다. 꾹꾹 눌러서 최대한 작게 만들고 구겨 넣는다. 몸 어딘가에 안 보이게 티 안 나게.
(*실프다 : 귀찮다의 제주방언 ex) 다 실프다. 쓰기 실프다.)
그러다 어떤 날은 바스락거리며 마음이 펴진다. 접혔던 자국대로 시간을 거슬리며 거꾸로 올라가 펴지면 생각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쏟아진 생각을 글로 주워 담지 못하는 날에는 와인을 마신다. 술을 마시는 건 잊기 위해서다. 불러내기 위해 약간의 알딸딸함이 필요하다고 믿었는데 아니다. 나는 도망치기 위해 술을 마셨다. 그걸 잊기 위해 마셨다. 마시면 잠을 잘 수 있으니까 새벽 2시에 깨어 멀뚱 거릴 것을 알고도 8시에 술을 마시고 9시에 잔다. 눈앞의 것만 보면서 소설을 쓰겠다고 자빠져있다. 나는 도대체 뭘까.
아무튼 이 글의 요점은 부러움이다. 나는 리더가 부럽다. 자신만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그 강인함이 부럽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한강이 아무리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도 나는 쓰면서 즐거운 글을 쓰겠다고 말하는 리더가 솔직히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진 사람은 말이 없어야 하는데 독서모임이 끝나자마자 이리 질척거리고 있다. 됐다. 썼으니 됐다. 이제 쌀을 씻고, 밥을 하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과 낄낄대야지. 금방 한 밥의 고소함이 부러움을 밀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