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3시 2

by 레마누


나도 그런 적 있어.

어?

그런 꿈꾼 적 있다고.

정말?

응.


결혼하고 5년 동안 아이가 없자 시어머니가 날 데리고 점집을 돌아다녔어. 그런데 가는 곳마다 주변에 죽은 사람이 없냐고 묻는 거야. 그때는 어렸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다 계셔서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거든. 그런데 하도 물어보길래 엄마한테 전화 걸어서 물었지. 엄마도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어. 엄마의 언니가 자살한 것도, 외삼촌 한 명이 타지에서 죽은 것도 그때 들었어. 그런데 그건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았지. 그래서 없다고 했어. 그런데 보살이 자꾸 있다는 거야. 보살이 있다고 하니 시어머니도 재촉하는 눈치였고, 어떻게든 누군가를 생각해 내야 했어.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데 나는 죽어도 모르겠더라. 답답했지, 그래서 그런 꿈을 꿨는지도 몰라.



스무 살 때 죽은 동네 친구가 있어. 초등학교 친구였는데, 반이 하나밖에 없어서 6년 내내 같은 반을 했거든. 근데 별로 친하게 지내진 않았어. 조용하고 착한 아이였던 건 기억나. 그 아이가 스무 살 여름에 죽었어. 동창들이 모여 장례 준비를 했어. 관에 들어갈 종이꽃을 접고, 남자아이들이 관을 들었어. 절할 줄도 몰라서 어른들에게 핀잔을 받았지. 불쌍해서 울다가 또 누군가 하는 소리에 낄낄거리기도 했어. 스물이 그렇잖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 기분. 엉성하고, 어리숙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



장례식이 끝나고 바로 2학기 개강 때문에 시내에 올라왔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하고, 시험을 치르느라 정신없었지. 그 와중에 중간중간 사랑하고, 이별도 했지. 혼자 세상의 모든 진 것처럼 진지했다가 허무해지고, 슬펐다가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서른이 되고, 나는 결혼을 했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친구가 꿈에 나오는 거야. 배경은 항상 초등학교였어. 우린 어렸고, 시험을 보거나 친구들과 놀고 있었지. 그런데 이상한 게 뭔지 알아? 그 애와 내가 단짝이라는 거야. 나는 꿈속에서 그 친구하고만 놀았어. 둘만 붙어 다니며 낄낄댔는데 깨고 나면 기분이 묘한 거야. 왜냐면 난 그 친구와 일 년에 한두 번 말을 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거든. 학교 다닐 때도 같이 놀아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왜 그런 꿈을 꾸는 걸까?



꿈에서 시험 본 적이 있니? 분명 시험공부를 했는데, 시험지를 받자마자 생각이 안 나서 아무것도 못 쓰는 꿈, 시험지를 받았는데 볼펜이 안 나오거나 수학 시험인 줄 알았는데 국어시험을 볼 때도 있었지. 어쨌거나 꿈속에서 나는 항상 시험을 봤고,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긴장하고 두려워서 손에 땀이 나곤 했지. 정말이야. 꿈속에서도 긴장하면 가슴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나고, 머리칼이 곤두서. 이 시험을 망치면 인생이 끝인데 시험을 못 봤어. 안절부절못하다 잠이 깨. 옆에서 아이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의식이 돌아오면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인생이 떠올라. 그래, 나는 시험을 망치지 않았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야.


과연 그럴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

동네 친구한테 전화해서 혹시 영희 꿈을 꾼 적이 있냐고 물었어. 친구는 없다고 대답하더라. 요즘 영희가 자꾸 꿈에 나온다고 했더니 넌 영희랑 안 친했잖아. 하길래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대답했지. 정말 몰랐거든. 그 아이가 왜 내 꿈에 나와서 나와 같이 놀고 있는지. 그나저나 꿈에서라도 환하게 웃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은 좋더라. 그 아이 지 목숨 끊으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스무 살 때 기억나? 허름한 자취방에서 친구와 낄낄대며 맥주병으로 머리 감았던. 뭐? 과산화수소? 나도 해봤지. 그걸 머리에 붓고 기다리면 염색이 아니라 탈색됐잖아. 싸구려 화장품으로 그림 그리듯 얼굴에 분칠을 했어. 책상 앞에 다리가 달린 둥근 거울을 놓고,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화장을 하는 거야.


-나 그때 다 쓴 마스카라를 라이터로 녹이고 속눈썹 파마하듯 눈썹을 말았다가 눈썹 다 탔잖아. 지금도 눈썹이 없어.

-불을 붙이고 잠깐 있어야지. 효과는 좋았는데 조금 위험하긴 했어. 요즘은 눈썹뷰러가 있어서 눈썹 탈 일은 없겠다.


나는 머리는 노랗고 입술은 빨갛고 눈은 퍼렇게 화장했어. ‘노랑머리’라는 영화 알아? 딱 거기에 나오는 이지은처럼. 학교에서 보면 티가 났어. 잔뜩 멋을 부리고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1학년이었고, 며칠 감지 않은 머리에 비비크림 바르나 마나 한 얼굴로 도서관에 박혀 있으면 3학년이었지. 4학년들은?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어딘가 있다가 종강 파티 할 때 나타나서 술값을 냈던 것 같아. 그때는 4학년이 하늘 같아서 쳐다보는 것도 어려웠어.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 지나면 무덤덤해지는 거 알지? 혼자 사는 것도 멋대로 화장하고 다니는 것도 조금 익숙해질 무렵 여름방학이 됐어. 시골집이 그리웠어. 엄마 밥이 먹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는 그만두고 시골에 갔어. 두 달 동안 실컷 빈둥거려야지 생각했지.


하루는 동네 친구가 놀러 와서 하는 말이 영희가 많이 아프다는 거야. 아파서 집에만 누워 있다는데 한번 가 보자고 하길래 같이 갔어. 할 일도 없었고, 그래도 친구니까 걱정도 됐거든. 하루가 멀다하도 친구네 집에서 놀았지만, 영희네 집에는 가 본 적이 없었어. 위치는 알고 있었지.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골목 안쪽 끝에 있는 작은 슬레이트 집이었어.


대문은 따로 없었고, 낮은 돌담이 옆집하고 경계를 만들며 빙 둘러싸였어. 마당은 시멘트바닥이었는데 경운기 한 대를 세우면 꽉 찰 것 같아. 유리문을 밀었는데, 뭔가 맞지 않았는지 열리지 않았어. 몇 번 좌우로 흔들자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 틈이 생기더라. 몸을 구겨넣듯 들어가서 영희 이름을 불렀어. 허름한 나무선반으로 만든 신발장에 신발보다 농약병들이 더 많이 쌓여 있더라. 밭에 갔다 오면서 묻어온 흙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어서 신발을 어디다 벗어야 하나 생각하는데, 집 안쪽에서 영희네 할머니가 나왔어. 거동이 불편한지 마루를 닦고 있었는지 무릎을 밀며 우리 쪽으로 오는 거야. 하얗게 센 머리와 굽은 등이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것 같았는데, 목소리가 참 컸어.


“영희야. 친구왔쩌.”. 하자 “누구?”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도 모르켜” 하면서 옆으로 비켜 앉길래 친구와 나는 바닥에 있는 신발들을 옆으로 밀고 나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어. 할머니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는데, 할머니는 그제야 허리를 세우고 앉더라. 마루는 걸을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어. 어두워서 그랬을까. 할머니 때문이었던 것도 같고. 아무튼 조금 무섭다고 생각하면서 방으로 들어갔어.


영희네 집에 처음 왔지만, 방문이 열려 있는 곳에 영희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 이불이 펼쳐있었거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영희와 나는 볼 일이 없었어. 중고등학교가 달랐거든. 학교 다닐 때 버스에서 몇 번 봤지만, 말을 하진 않았지. 그래서 많이 놀랐어. 오랜만에 본 영 영희는 얼굴이 노랗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게 순식간에 늙어버린 아이 같더라. 빗장뼈가 드러나 보이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앙상하게 말라버린 모습이었어. 얼굴은 그대로인데, 세월의 흔적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은.


우리가 들어가자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했어. 누워 있다 일어났는데 벽에 베개를 대고 기대앉는데도 시간이 걸렸어. 할머니보다 더 느리게 움직였어. 친구와 나는 과자와 음료수를 영희 앞으로 밀었지. 영희는 말을 하는 내내 기침을 했어.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다리를 아예 못 움직인다는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더니 영희도 모르겠대. 그렇겠지. 감기로 병원에 갔다가 열이 올라 입원을 했는데 퇴원할 때는 다리가 마비됐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런데 알다시피 영희는 그런 일을 겪었고,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 그게 나한테 닥치면 비극이고, 타인에게 일어나면 가십거리가 되는 거야.


오랜만에 앉아 본다며 영희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어. 찾아와 줘서 고맙다. 나는 잘 지낸다. 답답하지만 괜찮다. 가을이 되면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 볼 예정이다. 영희는 생각보다 밝았고, 내일이면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지. 우리는 또 오겠다고 말하며 나왔어. 영희네 할머니는 우리가 말을 하는 내내 마루를 기어 다녔어. 뭔가를 계속했는데, 들어올 때나 나올 때나 어지러운 마루는 그대로였어. 그게 뭐 중요한 건 아니야. 우리가 다시 영희네 집에 간 건 영희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지.


-

영희네 집에 갔다 온 날 나는 시내에서 산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어. 쨍한 노란색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예쁜 옷이었어.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다 봤는데 맘에 쏙 들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샀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꽃무늬를 참 좋아해. 화장도 했지. 스무 살 때는 집에 있을 때도 화장을 했어. 종일 거울만 보고 살아도 전혀 심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 아이 셔도우를 칠하고 마스카라를 발랐지. 컬이 생기게 속눈썹도 집었고. 그게 뭐?? 그때는 다 그러는 거 아냐?


-너 그때 뭐 입었었는지 알아?

영희네 집 옆에 살던 친구가 한참 지난 후에 말하는 거야. 내가 가고 나서 영희가 아빠에게 옷을 사달라고 했대. 희진이가 입고 온 블라우스랑 똑같은 걸로. 영희네 아빠는 병신 주제에 무슨 옷을 사냐고 소리를 질렀어. 할머니가 아무리 아버지를 잡아끌어도 술 취한 중년 남자의 입을 어떻게 막을 거야. 답답해서 그랬겠지. 영희네 아버지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누워만 있으니 속이 속도 아니니까 술을 마신 거고. 집에 오면 기어 다니는 늙은 어미와 이불에서 못 나오는 딸내미만 보이니 이놈의 집구석 확 불이나 질러 버린다는 말이 나왔을 거야. 너 죽고 나 죽자는 말은 왜 했을까? 할머니는 그게 꼭 자기에게 하는 말 같았다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친구가 말했어. 영희네 옆집에 살던 친구는 오랫동안 할머니의 넋두리를 들었다고 했지.


영희는 다음 날 현관에 있던 제초제를 먹었어.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는데 영희가 어떻게 현관까지 나왔을까. 죽을 힘을 다했겠지. 그렇게 기어 와서 농약을 먹고 죽은 거야. 죽기 위해 최선을 다한 영희가 왜 꿈에서는 나와 그렇게 친하게 웃고 있을까?


그 말을 들은 보살은 옳다구나 하는 얼굴로 말했어. 그 친구가 나를 잡고 있는 거래. 친구의 혼을 풀어주지 않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거야. 아니, 내가 3번 유산이 되고 시험관 두 번 실패한 게 그 친구 때문이라는 게 말이 돼? 그런데 보살이랑 엄마는 그게 말이 되나 봐. 엄마는 진지하게 보살에게 말했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보살은 기다렸다는 듯이 굿을 해야 한다고 말하더군. 답정녀도 그런 뻔한 답은 잠깐 망설이기라도 하고 내놓아야 하는 거 아냐.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보살은 술술 말을 하더군.


일단 시장에 가서 제일 화려한 블라우스를 사라. 그리고 몇 날 몇 시에 한라산 중턱 어딘가에서 만나자. 음식을 비롯한 모든 것은 내가 준비할 테니 당신은 돈을 준비해라. 아주 쉽지? 간단하지?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죽은 혼을 보살이 달래준다는 것도 십 년이 지난 후에야 그 친구에게 블라우스를 선물한다는 것도 이상한데 엄마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어.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하고 7년 동안 아이가 없으니 어미 속이 타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굿을 했지.


중산간 어느 도로에 차를 세우고 삼나무 숲에 들어가서 빌고 또 빌었어.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돗자리를 깔아놓으니까 또 빌게 되더라. 자꾸 빌다 보니 눈물도 나고, 내가 잘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서 나중에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눈물이 쏟아졌어. 보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날 쳐다봤고, 엄마는 중얼거리며 절을 했지. 머리가 땀에 젖을 정도로 절을 했어. 돗자리 아래에 있는 돌에 무릎이 찍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우리 셋은 한 시간 정도 서로의 역할에 충실했고, 끝나고 나서는 인사도 없이 각자의 차에 올랐어. 굿이 끝난 보살에게 인사를 하면 안 된대. 영희는 꿈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아이를 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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