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버스가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 몸이 기우뚱거렸다. 돌들이 듬성듬성 있는 농로였다. 속도를 줄여도 버스 안이 출렁거렸다. 얼마 가지 않아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나는 사람들이 다 내리기를 기다렸다 마지막에 내렸다. 사람들이 땅을 파고 있었다. 새벽에 집에서 육개장을 먹고, 담배와 수건을 나눠 받고 먼저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아는 얼굴도 있었고, 낯선 사람도 보였다. 눈이 마주친 아무에게 고개를 숙였다. 남자 몇이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다 말고 담배꽁초를 멀리 던지며 일어났다.
큰 이모는 천막 안에 앉아서 믹스 커피를 마셨다. 여자 삼촌들 몇 명이 트럭 뒤에 있는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트럭 위에 올라간 삼촌 둘이 콘테나를 들고 아래로 내리면 밑에서 받아주길 반복했다. 상차림에 쓰일 음식이 가득 담긴 콘테나는 무거워 보였다. 사람들은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입을 열면 깊은 한숨이 쏟아졌다. 손이 빠른 동네 삼촌이 앞장서서 음식들을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이모는 비어 있는 종이컵을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남자 어른들이 “다 됐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엄마의 관이 내려갔다. “불쌍한 것”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큰 이모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커피로 기운을 차린 큰 이모는 목청이 좋았다.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누군가 내게 손짓했다. 금방 파낸 흙을 삽으로 떴다. 흙은 짙은 붉은색이었다. 흙을 던졌다. 관 위에 떨어지며 흙이 흩어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큰 이모가 삽을 들더니 갑자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나를 데려가라. 나도 같이 가자.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사느냐. 불쌍한 것. 이렇게 갑자기 가면 어떡하냐. 불쌍해서 어떡하냐.”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손과 발을 허공에 가르며 울부짖었다. 이모의 역할은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그러나 함께 죽을 수는 없는 산 사람이었다. 엄마가 있었으면 적당히 하라며 팔을 잡아끌었을 것이다.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큰 이모는 오랫동안 울며 소리쳤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남편이 영안실에 들어가 시신을 확인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얼굴이 놀랄 만큼 깨끗하다는 말만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우는 것도, 엄마의 마지막을 보는 것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결혼 10년 만에 임신을 한 나는 살얼음을 걷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세 번의 유산 후, 습관성 유산 진단을 받았다. 2번째 시험관 시술이 실패로 끝났다. 아무 기대도 없을 때 거짓말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배가 조금만 아파도 누웠다. 답답하거나 힘든 건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쉬운 일도 어떤 이에게는 어렵고 소중할 수 있다. 나는 아이를 지키는 일에만 몰두했다. 온 정신을 태아에게 집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과정이 어렵고 험했지만, 결론만 좋으면 괜찮았다. 임신은 살얼음 같던 결혼생활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확실한 매개체였다. 점점 몸은 무거워지고, 숨 쉬는 것이 버거웠지만 그조차 좋았다. 다 좋았다. 참을 수 있었다. 없이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호강에 겨운 불평이었다.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나는 엄마의 죽음이 마치 아이와 바꾼 것만 같았다. 둘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수에 맞지 않은 욕심을 부린 건 아닐까? 뱃속이 꿀렁거렸다.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미안해.”라고 중얼거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람들이 손을 털며 인사를 했다. 작은 이모와 외삼촌이 집을 치웠다. 아빠는 방에 들어가 누웠다. 고모가 따라 들어갔다. 남편은 막내 외삼촌과 마당에 있는 천막들을 걷었다. 나는 천천히 돌아다니며 구겨진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같은 것들을 주웠다. 허리를 굽혔다 펼 때마다 배가 꿈틀거렸다. 손으로 허리를 짚고 천천히 걸어 다녔다. 큰 이모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손을 잡아끌었다. 큰 이모는 나를 식탁에 앉히더니 헛기침을 했다. 어색했다.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기다렸다.
-사실, 너네 엄마가 나한테 돈을 좀 빌렸어. 이런 말을 지금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한데, 또 이런 건 미루면 안 되는 거잖아. 응?
이모의 시선이 내 배에 닿았다. 가래가 딱 붙어 있는지 잔기침을 연달아 하느라 이모의 얼굴이 빨개졌다.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이모에게 내밀었다. 이모는 고맙다고 하며 천천히 물을 마셨다. 특별히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왜 그런지 이모의 기침소리가 계속 거슬렸을 뿐이다.
-얼마나?
-오백
-언제?
-얼마 안 됐어. 마늘 팔면 갚는다고. 당장 인부 값이 없다고 해서 내가 이모부 몰래 줬는데. 그게 나도 효정이한테 빌린 거라. 아고. 망할 년. 그게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니.
이모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소리 내지 않고 눈물만 화장지로 찍어냈다. 처지고 짓물러진 큰 이모의 눈가는 엄마와 똑같았다. 엄마는 말하는 도중에 자주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훔치며 하나도 안 괜찮은 엄마는 언제나 괜찮다고 말했다.
-아빠한테 애기해.
-너도 알다시피 너네 아빠 성격이 좀 그러잖아. 그리고 이건 아빠도 모를 거야 아마. 그때 너네 엄마가 열흘이면 된다고 해서. 아고. 나도 정말 못 살겠다. 진짜로.
이모는 몰랐다. 한 시간 전에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뭐든 처음일 때가 힘들다.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계속 듣다 보면 무덤덤해진다. 큰 이모는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동네 삼촌들은 성질이 급했다. 손님들이 뜸한 오후였다. 조문객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졌던 나는 잠깐 들어가 쉬라는 고모의 말에 안방으로 들어갔다. 멍하니 앉아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진아 엄마와 철희 엄마가 방에 들어오더니 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어렸을 때는 한 집처럼 오가며 지냈지만, 20살에 동네를 떠난 이후에는 엄마를 통해서 소식만 들었던 삼촌들이었다. 삼촌들도 내 얘기는 엄마한테 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과장해서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삼촌들에게 나는 부잣집에 시집간 팔자 좋은 아이였다.
삼촌이 손을 내밀었다. 친한 것도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 것도 아닌 진아 엄마의 손을 잡아야 하나 어떡하나 고민이 됐다.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기, 은숙아.
엄마가 시집와서 만난 동네 삼촌들이지만,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냈다. 같이 슬퍼하거나 위로라도 해주려고 들어왔나 싶었다. 아니면 부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주인 내게 의논하러 올 수도 있었다. 예감은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잔뜩 뜸을 들인 말은 무거웠다.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빌려 간 돈들이 있는데. 뭐 자잘한 것들은 그렇다 쳐도. 어제 엄마가 인부 값으로 쓴다며 오백만 원을 빌려 갔어.
오백만 원이 여기서도 나왔다. 대꾸가 없는 게 믿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는지, 삼촌은 찢어진 노트 한 장을 보여줬다. 두 줄을 오가며 쓴 문장에는 ‘은숙이 엄마 오백만 원. 23년 7월 18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철희 엄마는 써 놓은 것은 없지만, 일 년 전에 빌려준 돈이 있다고 했다. 거래명세서도 차용증도 없는 엄마와 삼촌들만의 거래였다.
엄마가 없는 바로 지금 나에게 달려온 삼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죽자마자 돈을 받으러 올 줄도 모르고 나는 삼촌이라 부르며,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했다. 다 알아서 해 달라며 곳간의 열쇠를 맡기듯 삼촌들에게 부엌을 내어 주었다. 삼촌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며 눈물을 찍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거라는 말로 들렸다. 큰 이모는 세 번째 채권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