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애도1

by 레마누

8월 첫째 주 월요일 아침 7시에 덕수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작년에 녹색 신호등만 보며 동산을 내려오던 렌터카가 황색 불에 길을 건너던 오토바이를 쳤던 바로 그 장소였다. 마을에서 신호등체계를 바꾸거나 현수막을 내걸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자는 말이 돌았지만, 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죽은 사람이 윗동네 은숙의 엄마라는 말을 들은 진아 엄마는 어제 은숙의 엄마에게 빌려준 돈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람이 죽었는데, 돈 생각이 난 걸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진아 엄마는 서둘러 은숙이네 집으로 향했다. 구급차가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마을 안으로 난 도로를 지나갔다.



어떤 이는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선 것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 나를 비켜갔음에 감사하고 난 후에야 가까운 이의 죽음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숨긴 채 서로를 쳐다보며 말을 아꼈다. 은숙이는 아직 오지 않았느냐는 말에 누군가 오는 중이라고 답했다. 시집간 딸이 유일한 상주이고, 장례식을 친정에서 치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은숙을 도와야 했다. 그것이 동네의 인정이었고, 사람 된 도리였다. 태풍이 오기 전에 마늘씨를 뿌려야 하는데 며칠 늦춰도 될까? 어제 인부들을 맞춰서 3일 장이 나야 일에 지장이 없을 텐데. 하며 저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은숙엄마가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 듯 몸서리치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진아 엄마와 일 년 전에 빌려준 돈을 못 받은 철희 엄마는 다른 걱정에 싸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을 기다리지 못하고 빠르게 걸어갔다. 뛰고 싶었지만, 배가 무거웠다. 입구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길을 터주듯 양쪽으로 갈라섰다. 평소 같으면 인사를 주고받으며 말을 섞었을 것이다. 익숙한 얼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응급실로 갔다. 문 앞에는 큰 이모가 있었다. 엄마를 꼭 닮은 크고 검은 눈동자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큰 이모가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토할 것 같았다. 손을 배 위에 올리고, 숨을 크게 쉬었다. 그때 문이 열렸고, 빠르게 하지만 주저하면서 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나왔다.

나는 그렇게 열리길 기다렸던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려는 것을 남편이 막았다.

-내가 갈게. 앉아 있어

남편의 말은 짧고 무거웠다.


세 번째까지 유산되면 희망이 없어.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 남편이 응급실에 오는 내내 했던 말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섭섭했다. 엄마가 되기도 전에 엄마를 잃어버린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문지르는 동안 응급실에 갔다 나온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교통사고치 고는 얼굴이 멀쩡하다는 말이 들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거짓말 같은 일들이 진짜 일어나고 있었다. 헐렁한 바지, 얇은 남방과 주머니가 많은 조끼, 검은 얼굴의 아빠가 일어났다.



안방에 병풍을 두르고, 상이 차려졌다. 어제까지 엄마가 텔레비전을 보며 잠들었던 곳이다. 영정사진에 쓸만한 사진을 찾아보라고 작은 아빠가 말했다. 핸드폰 사진 중에 제일 밝게 웃는 사진을 들고 사진관에 갔다. 10년 전 내가 결혼할 때 한복을 입고 웃는 사진이었는데, 28*35cm로 확대된 엄마의 얼굴이 웃는 듯 우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그 말을 고모에게 했더니 고모는 한번 슬쩍 보고 나서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어디가 괜찮은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내 손에 있던 사진을 들고 가서 액자에 담았다. 또 누군가 그 액자를 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결혼식장에서 환하게 웃었던 엄마의 얼굴 양쪽에 굵고 검은 줄이 그어졌다. 엄마가 갇혔다. 나올 수 없는 곳에.



큰 이모는 사람들에게 답례품을 나눠주다가 시간이 되면 안방에 들어가 곡을 했다. 마당에서 조문객들과 몸국을 먹고 있던 고모와 부엌에서 국 간을 맞추고 있던 작은 어머니가 손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앉자마자 “아고, 아고”소리를 내며 곡을 하기 시작했다. 몸을 쥐어짜며 곡소리를 내는 저 사람들은 방금까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조문객들과 말을 했다. 슬퍼해야 할 공간에서도 할 일이 있었고, 해야 할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몰랐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닥에 엎드리며 뒹굴고 싶었다. “엄마, 엄마” 부르며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울부짖고 싶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상조회사 사람이 옆으로 오더니 작은 소리로 “곡하세요.”라고 말했다. 소리는 입 안에서 맴돌았고,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물속에 감긴 것처럼 귀가 멍했다. 재촉하듯 날 쳐다보는 사람의 말대로 곡을 하지 못했다.

사진 속 엄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신부 화장을 하다 말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쓰는 게 아니었다. 사진 속에는 그때 그 시간이 들어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을 축하하며, 할머니가 되긴 싫지만,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엄마가 말했고,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엄마가 몸조리해 줘야 하는데.’,‘아이 낳으면 엄마가 봐주기로 해 놓고 이게 뭐야?.’



웃는 엄마를 울면서 보느라 곡을 하지 못했다. 엄마의 눈을 피하느라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곡하는 것이 서툴러서 화가 났다. 제일 잘 나온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눈이 슬퍼 보였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대답하지 않았다.



곡을 하던 사람들은 끝나는 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만족하며 눈물을 닦으며 방을 나갔다. 밥을 먹다, 대화하다, 앉아 있다가도 곡하는 시간이 되면, 영정사진 앞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 사람이 울면 더 크게 울었다. 울다 보니 곡이 나오는 건지 곡을 하다 보니 절로 눈물이 나오는 건지 가늠이 안 됐다.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애도가 눈물로 보이고, 곡소리로 들렸다.



세 번째 안방에 들어갔을 때 가슴에서 울컥하는 것이 나왔다. 앉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러나오더니 절로 곡소리가 나왔다. 영정사진 속 웃는 엄마 앞에서 이모와 고모, 작은 엄마와 내가 울었다. 가슴을 쥐어짜듯 소리 내 울었다. 이모는 아고아고 울었고, 나는 흑흑흑 울었다. 고모는 짧고 굵게 토해내듯 울었고, 작은 엄마는 가늘고 높은 소리로 곡을 했다. 그렇게 누런 삼베옷을 입은 나와 베옷 바지를 입은 여자 셋이 한참을 울다 나오니 주변이 깜깜했다.



마당에 전깃불을 끌어다 놓고 불을 켰다. 사방은 컴컴한데 우리 집만 환히 빛나는 게 엄마의 영정사진만 아니면 잔칫날과 진배없었다. 뱃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누군가에게 엄마의 죽음은 그저 하룻밤 먹고 마시며 입에 올릴 에피소드에 불과했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할 때마다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불행할수록 안줏거리는 풍성해진다.



마지막 설거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삼촌들 손에 두루마리 화장지와 참기름과 슈퍼 타이와 맥심 커피믹스가 들려 있었다. 삼촌들은 오지 않은 딸과 며느리,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음을 나열했다. 삼촌들이 원하는 건 하나였다. 이러저러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화장지와 참기름을 두 개씩 챙겨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가 잘 모르겠지만 촌에서는 원래 그렇다. 만일 네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너는 어미의 죽음을 옹졸하게 치르는 속 좁은 딸이 된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들렸다. 몸으로 눈짓으로 삼촌들은 대화했다.



모든 것이 한 편의 연극 같았다. 은숙의 역할은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어리둥절하는 외동딸이었다. 당황스럽지만 성실하게 장례를 치른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삼촌들이 말하는 대로 대꾸하지 않고, 착하게 네.라고 대답하는 주인공이었다. 슬픔을 밖으로 내보이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다.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문상객들은 배를 내밀고 서 있는 내게 고생하라고 했고, 힘내라고 했다. 뭐가 고생이고, 뭘 힘내서 해야 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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