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안녕3

by 레마누

언제부턴가 은숙은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왔다. 양치질을 해도 입에서 쓴맛이 났다. 못다 한 말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물을 마셔도 요구르트를 두 개 연달아 마셔도 내려가지 않았다. 답답했다.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고 소리를 내다 문득 엄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거동을 못 하게 되자 아버지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다리가 아플 뿐인 할머니는 뭐든 잘 먹었다. 잘 먹은 만큼 잘 쌌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똥 기저귀를 갈고 나오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은숙이 내려갈 때마다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요플레라고 대답했다. 더 맛있는 거 먹자고 해도 그게 제일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요플레를 하루에 5개씩 먹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집에 데려온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계신 방에 얼굴 한번 비추지 않았다. 할머니는 망할 년이라고 불렀던 어머니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는 걸 못 견뎌했다. 은숙이 내려갈 때마다 “내가 죽어야지. 죄 많은 내가 빨리 죽어야지.”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4년을 더 살다 가셨다.


닿지 않고 되돌아온 말, 가까운 이의 시린 눈빛, 함부로 대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태도. 은숙은 그 모든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었다. 벽인지 똥인지 상념인지 망상인지 모를 것들이었다. 밤이면 컴컴한 벽을 보며 마음의 크기를 헤아렸다.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나갔다. 오래된 기억일수록 뚜렷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아픔도 있었다. 질끈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이었다.


딸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아이들도 많은데 왜 굳이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냐는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고3이라는 것도 이유가 됐다. 집을 팔지 않기로 했다. 은숙도 제주시에 집이 있는 게 좋았다. 은숙은 자신의 의사를 또렷하게 밝히는 딸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렇게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였구나.’

은숙은 누구에게도 싫다는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고 싶었다. 착한 아이는 “싫어요.”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부딪치는 게 싫었다. 나만 참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 후부터 은숙은 안으로 삭히는 법을 익혔다. 아픈 게 싫었다. 무탈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욕심을 버려야 했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심,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며 올라올 때마다 은숙은 침을 삼키고 가슴을 쳤다.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였다.


남편이 하는 말에 습관적으로 “좋아요.”로 답했다. 저녁을 준비하며 은숙은 씽크대 앞에서 소주를 마셨다. 빈 속에 소주가 들어가면 몸에 순식간에 불이 붙는다. 얼굴이 벌개지고 입안에 쓴맛이 퍼진다. 별다른 안주 없이 소주를 마시며 은숙은 내일부터는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일주일째 화장실에 가지 못 하고 있다. 먹는 건 그대로인데, 나오지 않으니 속이 빵빵하고 답답했다. 아침에 먹은 게 늦은 오후까지 내려가지 않았다. 은숙의 장은 연동 운동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꼬르륵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언젠인지 모른다. 그나마 음료를 마시면 속이 시원했다. 저녁으로 막걸리를 마셨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삼시세끼를 잘 차려 먹는다. 한끼라도 시간을 놓치면 큰일 나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기 위해 일을 하고,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나는 남편은 소화가 안 된다는 은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남편이 맥주를 들고 와 은숙 옆에 앉았다. “나 이번 엄마 제사에 안 내려 갈거야.”은숙이 막걸리가 든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무심하게 말했다. 핸드폰에 눈을 고정시켰던 남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설에도 안 갔는데 제사에도 안 가면 아버님이 섭섭해하지 않을까?”“그냥 가고 싶지 않아.” 은숙은 빈 막걸리병을 버리고 부엌을 정리한 후, 안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거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은숙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다시 예전의 자상한 어머니로 돌아왔다.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아버지를 때리거나 은숙의 머리채를 잡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효자 노릇을 하기 위해 모셔온 할머니의 똥기저귀를 군소리없이 갈았다. 한번은 고모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할머니를 자신이 돌보겠다며 모시고 갔다. 하지만 이틀도 못 돼서 다시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던 할머니는 거동만 못 할 뿐이었다. 걷지 못한 스트레스를 입으로 푸는지 어머니가 보일 때마다 욕을 했다. 어머니가 차려 준 밥상을 받으면 남김없이 먹고 나서 치우는 어머니에게 눈을 흘겼다. 오줌을 많이 싸면 물만 처먹여서 그런 거고, 똥을 지리면 네가 제시간에 기저귀를 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은숙이 친정에 내려가면 은숙을 붙들고 어머니 흉을 봤다.


아버지는 밥 먹을 때만 들어왔다. 집 근처를 맴돌다 때맞춰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입에서 나오는 욕바가지를 뒤집어쓴 채 어머니는 하루에 세 번 밥 상을 차려 할머니 방을 드나들었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같이 밥을 먹지 않았다. 할머니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의 눈에는 거미처럼 말라가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나만 없으면 돼.”를 중얼거렸다. 은숙은 차라리 어머니가 예전처럼 집을 나갔으면 했다. 아버지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술을 마시면 말에 힘이 들어갔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언제 세수를 했는지 얼굴이 푸석했다. 은숙이 신경써서 고른 화장품을 바르지 않았다. 하얗던 얼굴에 검은 기미가 잔뜩 올라왔다. 파마기가 빠진 갈색 머리는 비에 젖은 낙엽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우나도 끊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싫어.” 거미처럼 마른 어머니가 말했다. 은숙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는 더운 여름날 안방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할머니가 배고프다고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가 안방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은숙은 악다구리를 하는 할머니와 씩씩대며 안방 문을 여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봤다. 하지만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어머니의 마지막은 도무지 상상이 안 됐다. 아버지는 각방을 쓴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렇게 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사냐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가 죽은 어머니보다 남은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어머니는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장례를 도와 주러 온 동네 사람들은 오래전 일들을 들먹이며 아침 드라마를 찍었다. 연정이네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제일 컸다. 장례식이 끝나고 은숙은 다시는 저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1년 만에 재혼했다.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과 아버지가 잘 살아야 너도 편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보다 12살 어린 여자는 아버지를 오빠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보험금과 장례식을 치르고 남은 돈을 남김없이 챙겼다. 여자가 친정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내려갈 때마다 가전제품들이 바뀌어 있었다. 식기세척기와 거실용 에어컨을 새로 들였다. 여자는 할머니의 기저귀를 두 달 갈아주고 요양원을 알아봤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죽어도 집에서 죽어야 한다고 요양원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아버지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가기 싫어하던 요양원에서 2년을 살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밭을 팔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문이 동네에 떠돌았다. 아버지는 더 이상 팔 땅이 없게 되자 은숙을 찾기 시작했다. 백만 원, 천만 원, 삼천만 원, 일억. 부르는 액수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하는 말은 똑같았다. “이번 일만 잘되면 다 갚아줄게.” 아버지는 장황하게 그 일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만일 실패한다면 그건 우리가 돈을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너무 하시는 거 아냐.” 아버지가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하며 돈을 빌려간 날 저녁을 먹으며 남편이 말했다. 금방 넘긴 밥이 가슴에 걸렸다.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말이었다. 지금까지 많이 참은 것도 사실이었다. 알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대꾸할 말을 찾는 사이 국은 시었고,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씽크대에 빈 그릇을 놓고 나갔다. 말을 해야 하는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식탁위에 놓인 빈 접시들을 치우며 은숙은 인생이 거지같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빌붙어 살고 있는 나와 딸에게 손 벌리는 아버지는 뭐가 다를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만 똑바로 살았으면 나도 떳떳했을 텐데. 동네에서 싫은 소리 한 번 안 들었다는 건 거절을 못 한다는 말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날마다 찾아온다는 건 우리 집이 고스톱을 치기에 제일 만만하다는 말인데 아버지는 그걸 자랑으로 떠벌린다. 은숙은 소주를 마실 때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생각하면 화가 나는데도 생각이 났다. 멀리 있을 땐 걱정되고 안쓰러운데 막상 보면 원망스럽고 미워서 궂은 말이 나갔다. 둘 다 서로를 잘 알기에 공격할 무기가 많았다. 상대를 가장 아프게 할 말을 고르고 골라 던지고 맞고 상처 입히고 피를 흘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택배를 받았다. 하나씩 개별 포장된 보라색 용기의 윗부분을 뜯자 염소 똥만한 알들이 보였다. 잠자기 전에 미지근한 물과 함께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었다. 약을 먹고 이틀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배가 묵직해졌다. 날카롭고 긁어내는 아픔이 아니었다. 화장실에 앉은 은숙의 몸 안에서 뭔가가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은숙은 처음으로 사람의 장기가 길다- 20 -는 것을 실감했다. 배에 가만히 손을 댔다. 1.5m의 대장 안에는 오래되고 묵은 기억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은숙이 밖으로 뱉지 못했던 말과 감정들이었다.

은숙은 손바닥으로 배를 천천히 문질렀다. 아직도 나오고 있는 것들을 느끼며. 은숙은 시원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 사용설명서에는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차전자피 식이섬유는 물을 마시면 부피가 30~40배 늘어난다. 그렇게 잔뜩 몸을 부풀린 채로 기세등등하게 장으로 향한다. 은숙의 묵은 변들을 몰아낸다. 아침에 1포, 잠자기 전에 1포를 먹는다. 2L의 물을 수시로 마신다. 지금 은숙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은숙은 아주 오래 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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