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안녕 2

by 레마누

11시쯤 가게 문을 닫고, 식탁 의자를 정리했다. 어제 꾼 꿈이 자꾸 생각났다. 집에 가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이 앞치마를 벗어 탁탁 털고는 건조대 위에 걸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올게. 초등학교 동창들이 와서.”남편은 목소리로 미안함을 표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은숙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나간 가게를 둘러보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온기가 없는 식당 안이 추웠다. 은숙은 카운터 의자에 걸쳐 두었던 카디건을 가져와 입었다. 소주 한 잔을 마셨다. 살 것 같았다. 은숙은 혼자 오랫동안 식당에 앉아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은숙은 저녁 손님들이 몰려오기 전에 집에 갔다. 딸의 고등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딸은 금방 한 하얀 밥을 좋아했다. 학원에 가기 전에 잠깐 집에 들러 저녁을 먹는 딸을 위해 은숙은 부지런을 떨었다. 쌀을 씻어 취사 버튼을 누르고, 딸이 좋아하는 갈비찜과 갈치구이를 했다. 고3이라고 특별히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미안함 때문에 은숙은 저녁상에 특히 공을 들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얼굴을 보며 밥이라도 같이 먹고 싶었다.


현관문이 열리자 은숙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거실로 나갔다.

-딱 맞춰 왔네. 밥 먹자

-됐어.

-밥 다 차렸다니까. 얼른 먹어 응? 엄마 식당가야 해.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방에서 책을 바꾸더니 방문을 소리 나게 닫고 나갔다. 은숙은 얼굴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정답을 전혀 모르는 시험지를 받고 당황하는 꼴이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맞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설령 그게 가족일지라도 내 마음을 속이면서까지 삭히고 싶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스팸과 라면을 사다 놓고 저녁 시간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은숙은 소주 마시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아버지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마셨다. 아침에는 해장한다고 마셨고, 점심에는 반주로 먹었으며, 저녁에는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휘청거리며 걸어오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은숙은 술 마시는 남자와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주를 마실 줄은 몰랐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가 소주잔을 건넸다. 은숙은 소주를 못 마신다고 말했다. 선배들은 처음에는 다 그렇게 말한다며 은숙이 밀었던 소주잔에 술을 따랐다. 은숙은 어색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고 소주를 찍어 맛을 봤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윽.” 있는 대로 인상을 쓰는 은숙에게 선배가 말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었다. 은숙은 그 후로도 소주를 마시지 못했다. 냄새만 맡아도 역한 게 올라왔다. 동기들이 선배가 되고 소주를 못 마시는 후배들을 보며 낄낄댔다. 소주를 못 마신다는 것이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 우스웠다.


동기들은 참치 찌개 하나를 시켜 놓고 소주 열 병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말이 더 많아지는 사람들과 4년을 보냈다. 은숙은 말이 없었고 소주를 마시지 않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은숙은 가끔 동기들처럼 김치에 소주를 마셨으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소주를 마신다는 것은 인생의 쓴맛을 안다는 것인데, 소주를 못 마시니 소설에 깊이가 없고, 겉에서 맴도는 글만 쓰는 거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은숙은 입술을 지근지근 씹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망할 년”이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개쌍놈의 새끼”라고 했다. 얼굴이 하얗고 호리호리한 어머니는 작업복을 입어도 맵시가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쌀뜨물로 세수하고 선크림을 발랐다. 오이 마사지를 자주 했다. 어머니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몇 달에 한 번 시내에서 세팅파마를 했다. 뽀글 머리 아줌마들 사이에서 굵은 컬을 한 은숙의 어머니는 눈에 띄었다. 은숙은 가끔 어머니가 학교에 오면 어깨가 으쓱했다.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은숙이 그걸 눈치챈 건 6학년 가을 운동회 때였다. 시골의 초등학교 운동회는 동네 사람들의 마을잔치나 다름없었다. 학부모이자 이웃사촌들이 운동장에서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기는 행사였다. 어른들이 집행부 옆에 있는 커다란 파란 천막 아래서 술과 고기를 먹었다. 아이들이 천막을 오가며 밥을 먹고 뛰쳐나갔다. 경기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사람들로 천막은 종일 들썩거렸다.


은숙의 어머니는 그늘이 있는 스탠드에 앉아 운동회를 구경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은숙과 동생이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는 돗자리에 아침에 먹었던 콩나물과 밥, 김치를 꺼냈다. 참치캔 하나를 땄다. 할머니가 천막 안에서 손짓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의 손끝을 따라왔다.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은숙과 동생은 왠지 할머니한테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식은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빨리 오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사 안 왐시니?” 누군가의 말이 높게 퍼졌다. 점심시간이 길었다. 오후 경기가 시작됐다. 은숙은 달리기와 4백 계주에서 1등을 했다. 운동회가 끝나고 할머니는 아버지가 있는 걸 확인한 다음 집에 들어왔다. 은숙이 세상에 아는 욕이란 욕을 모두 쏟아부었다. 아버지는 “그만 헙써.”라는 말만 했다.


은숙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 어머니가 사라졌다. 아버지도 집을 나간 며칠 후 은숙은 초경을 했다. 할머니가 은숙에게 생리대를 사 줬다. 은숙은 방바닥에 아픈 배를 대고 누워 엄마를 생각했다. 한 달 후에 어머니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은숙을 안아주지 않았다. 은숙은 어머니가 돌아와서 좋았지만, 뽀글 파마를 한 어머니는 다른 사람 같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던 어머니는 저녁만 되면 집을 나갔다. 할머니 말로는 연정이네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일이 끝나면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잤다. 다음 날 아침밥을 먹을 때 술 냄새가 났다. 익숙한 냄새였다. 은숙이 커가는 동안 어머니의 주량도 같이 늘었다.



매일 술을 마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은숙을 때렸다. 은숙이 어머니보다 키가 커졌을 무렵이었다. 은숙은 머리카락이 가늘고 숱이 없었다. 머리카락 빠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어머니는 술에 취하면 은숙의 머리를 잡아챘다. 예고 없는 공격이었다. 은숙이 휘청거리며 끌려갔다. 머리가 통째로 빠질 것 같았다. 아프고 슬펐다. 참았다. 아버지가 몸을 웅크려 어머니의 발길질을 참아낸 것처럼. 어머니가 제풀에 지쳐 떨어질 때까지 참았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건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알아줄 대상이었다. 어머니가 왜 화가 났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은숙이 일어나 두 병째 소주를 꺼냈다. 저녁은 건너뛰었다. 낮에 먹다 남긴 강냉이를 접시에 덜었다. 요즘 부쩍 살이 찌고 있다. 평소보다 먹는 양을 줄였는데 몸무게는 늘었다. 텔레비전에서 뱃살 타파에 대해 박사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던 은숙이 채널을 바꿨다. 이 약만 먹으면 지방이 분해돼서 뱃살이 싹 빠진다는 광고가 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채널을 돌리며 소주를 마셨다. 100개가 넘는 채널 중에 끌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술을 반 병 남기고 은숙은 가게를 나왔다. 12시가 조금 넘었다.


집은 가게가 있는 건물의 4층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며 몇 번 비틀거렸다. 현관에 남편의 운동화가 없었다. 신발은 가족의 부재를 알려준다. 은숙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살피는 버릇이 있다. 딸의 뉴발란스 운동화가 있었다. 뒤축이 눌러져 있었다. 현관 옆에 있는 방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은숙은 방문을 열려다 말고 화장실에 갔다. 식탁 위에 가정통신문이 놓여 있었다.


세수하며 은숙은 딸아이를 생각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은숙이 말을 하면 쳐다보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딸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말로 딸의 가슴을 후벼 파고 싶었다. 아파서 우는 아이를 안아주고 토닥이고 싶었다.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은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머니를 닮아 유독 하얀 은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꿈속에서 은숙은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자주 잡혔다. 한 번이었다. 은숙이 딸의 때린 적이.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딸은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재수업에 2년째 참가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수학영재였다. 식당 일에 바빠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를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공부를 어떻게 시키냐고 물으면 본인이 알아서 한다는 말만 했다. 사람들은 은숙앞에서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우고 돌아서면 자기들끼리 모여 입을 삐쭉거렸다. 알고 있었지만, 은숙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은숙이 한 일이라고는 동네 공부방에 보낸 것과 식당 일이 아무리 바빠도 저녁을 차려주는 것뿐이었다. 내심 알아서 뭐든 척척 해내는 딸이 기특했다. 그래서 그날 오후 담임의 전화를 받고 은숙은 큰 충격에 빠졌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여자아이들은 사춘기가 빨리 온다는데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 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아닌가 싶었다. 은숙은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무심한 자신을 탓하며 서둘러 앞치마를 벗고 집으로 갔다. 집은 비어 있었다. 학원은 6시 30분에 끝난다. 딸은 8시에 들어왔다. 기다리는 동안 은숙은 커피를 두 잔 마셨다. “엄마.”은숙을 본 딸이 당황했는지 신발을 벗다 넘어질 뻔했다.


은숙이 그런 딸을 무표정하게 보고 있었다. 걱정과 자책, 염려와 불안 속에서 은숙은 이미 지쳐 있었다. “가방 줘 봐.”“왜?”“가방 가져와 보라니까.” “그러니까 남의 가방을 왜 보냐고.” “내가 남이야? 엄마가 딸 가방도 못 봐?” “싫어.” “싫어? 왜 싫어? 너 뭐 있지?” 은숙은 침착하게 말을 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말이 생각보다 빨랐다. 절로 나오는 말에 짜증과 분노가 달려 있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엄마 이상해 정말.” 툭 튀어나온 딸의 말에 은숙은 비위가 상했다. 속이 뒤집혔다.



‘내가 이상해? 뭐가 이상해? 우리 엄마처럼 매일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노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너를 때리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상해? 너 정말 이상한 엄마 만나봤니?’



“문제집 꺼내 봐.”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비명도 울음도 아니었다. 은숙은 제게서 나온 소리가 낯이 익었다. 속에서 더럽고 고약한 것이 나왔다. 참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표출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딸의 머리채를 잡았다. 딸이 질질 끌려왔다. 은숙은 오른손으로 딸의 머리채를 잡고 왼손으로 가방을 낚아챘다. 당황한 딸이 은숙의 팔을 잡았다.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은숙이 거세게 딸의 손목을 비틀었다. 공책, 필통, 문제집이 쏟아졌다. 만화 캐릭터가 가득 그려진 연습장이 펼쳐졌다. 은숙이 딸을 쳐다봤다. 무슨 말이든 해봐. 하는 마음이었다.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힘이 빠진 은숙이 털썩 주저앉았다. 늘어진 손 옆에 머리카락이 보였다. 화장지로 바닥을 쓸며 “미친년, 미친년”하고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로 딸이 보일 때마다 은숙은 미안하다고 했다. 바닥만 쳐다보며 은숙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딸은 고등학생이 되자 입을 닫아 버렸다. 은숙도 꼭 할 말만 하며 지냈다.

식당이 오히려 편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나이가 들면 절로 어른이 되고 어른은 뭐든 다 아는 건 줄 알았다.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나이를 먹으면 아무것도 아닌 어른이 될 뿐이다. 무엇보다 은숙은 자신의 손이 다시 또 딸의 머리채를 잡을까 두려웠다.

남편은 고향에 내려가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거라고 말했다. 가게에 손님이 없을 때는 큰소리로 어딘가에 전화를 했다. 언제부턴가 두 사람은 단답형의 대화만을 이어갔다. 남편은 주로 딸의 안부를 물었다. 은숙 역시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전화가 안 오면 잘 지내는구나 생각했다. 시댁 옆에 작은 공터가 있었다. 남편은 그곳에 2층을 짓고, 1층은 식당을 한다는 것이었다. 쉬는 날마다 남편은 시댁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났다. 은숙은 같이 가지 않았다. 은숙은 내려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남편은 어머니 앞에서는 영락없는 막내아들이었다. 커다란 등으로도 은숙을 가려주지 못했다. 가기 싫다고 말해야 한다. 시골에서 살기 싫어. 그게 너네 집 옆이면 더 싫어. 너는 우리 집 옆에서 살고 싶니? 늦은 밤 소주를 마시며 은숙은 혼잣말을 했다. 넋두리도 아닌 것이 하소연도 아닌 것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은숙도 모르는 마음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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