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4시에 은숙은 깨어 있었다. 습관은 무서워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똑같은 시간에 눈을 뜬다. 남편은 요란하게 자고 있었다. 씩씩거리다가 숨을 몰아쉬다가 그르렁거리다 이를 갈았다. 옆으로 돌아누운 남편을 바로 눕히자 코 고는 소리가 멈췄다. 무심히 남편을 보던 은숙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어제저녁 장사를 마치고 식당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남편이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내일, 문 닫는 거 알고 있지?
바닥을 쓸고 있던 은숙이 허리를 펴며 남편을 쳐다봤다.
-내일은 마음껏 쉬어.
선심 쓰듯 말을 내뱉은 남편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은숙은 젖은 행주를 들고, 10개의 테이블을 돌며, 식탁을 닦았다. 마음껏이라는 말이 가슴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종일 마스크를 하고 있으면 머리가 아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제사하는 집이 어딨어? 제삿날 모였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코로나에 걸렸다는 뉴스를 같이 봤는데, 어떻게 제사에 갈 생각을 하지? 그런 건 자기 선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할 말은 하고 살아야지. 언제까지 예예하고 듣기 좋은 대답만 할 건데.’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을 꾹꾹 누르느라 은숙은 가슴이 답답했다.
다음 날 은숙은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똥기사몰’을 검색했다. 어제 정순이가 약장수처럼 추천했던 사이트였다. 똥 싸다 기절할 뻔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8000개를 넘었다. 정순이가 “그것 봐. 내 말이 맞지?”하는 것 같았다. 구매하기를 클릭했다. 1초 만에 결제가 끝났다. 핸드폰을 끄고 일어났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은숙은 눈가를 몇 번 꾹꾹 눌렀다. 요즘 들어 부쩍 기미가 늘었다.
며칠 전 가게 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홀에서 서빙하던 직원의 그만둔다는 문자였다. 빗자루를 식탁 모서리에 세우고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숨을 돌리고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머리가 아팠다. 오른쪽 관자놀이를 누르며 은숙은 빗자루를 다시 들었다. 있을 때는 일이 서툴러서 맘에 들지 않았다. 은숙이 먼저 자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둔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단체 손님은 줄었지만, 혼자 오는 손님은 오히려 늘었다. 점심시간도 들쑥날쑥 이었다. 은숙은 종일 오고 가는 손님들의 상을 차리고 치웠다. 저녁이 되자 다리가 팅팅 알렸다. 이 시국에 직원을 다시 뽑아야 하나 어쩌나 머릿속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남편이 주방에서 나오며 앞치마를 벗었다. 손님 한 명이 뚝배기를 기울이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녁 9시였다. 남편은 쟁반에 밑반찬을 챙겨서 은숙 앞에 있는 테이블에 가져왔다. 김이 나는 순대국밥 두 그릇도 챙겨 왔다.
-밥 먹자
-별로 먹고 싶지 않아.
-그래도 먹어야지. 당신 점심도 안 먹었잖아.
-배가 안 고파.
-먹어. 먹다 보면 먹어져.
말을 끝낸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몸에 밴 고기 냄새에 은숙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먹고 싶지 않다면 그런가 보다 하면 될 텐데 왜 끝까지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부추김치를 몇 번 집어 먹었다.
-우리 내려가자.
5분 만에 밥을 다 먹은 남편이 말했다. 은숙의 밥은 그대로였다.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온 말에 힘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은숙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남편을 쳐다봤다. 선이 굵고 짙은 눈썹이 보였다. 크고 두꺼운 손으로 남편은 매일 돼지고기를 썰고 뼈 국을 끓였다. 뼈 삶는 냄새는 무겁고 진했다.
호텔 조리사였던 남편과 사귈 때 은숙은 이태리 레스토랑의 사모가 되는 꿈을 꾸었다. 이 남자라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말수가 적고 몸이 큰 남편이 옆에 있으면 주변이 묵직해졌다. 슬펐다가 화났다가 좋았다가 기뻤다가 무서웠던 스물다섯이었다.
-당신은 사투리를 쓰지 않아서 좋아.
남자가 은숙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남자의 손은 크고 단단했다. 한여름에도 얼음장 같은 은숙의 손에 온기가 흘렀다. 은숙은 몇 번 손을 빼려는 듯 어깨를 돌렸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게 싫지 않았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하고, 남편은 레스토랑을 그만두었다.
지금쯤 남편은 시골에 도착했을 것이다. 제사 시간에 맞춰 가도 될 텐데 일찍 출발한 건 제사 말고도 다른 일이 있다는 말이다. 일찍 내려가서 남편이 할 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은숙은 상관하지 않았다. 남편은 오랜만에 밖에 나온 강아지처럼 제 동네를 돌아다니다 저녁때쯤 집에 들어가겠지. 어머님은 혼자 온 남편보다 오지 않은 은숙을 못 마땅해서 눈을 흘기겠지만, 아들은 들은 둥 마는 둥 하며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은숙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는 장면들을 상상하다 말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은숙의 머리카락 안으로 들어왔다. 숨이 헉 막혔다. 거실과 부엌으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 바람이 마음대로 오가게 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여러 번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트럭 조수석에 앉아 어딘가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운전할 때 아버지는 담배를 쉬지 않고 피웠다. 어머니는 지갑을 벽장 안에 있는 이불속에 보관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이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엄마의 지갑이 손에 잡히면 그제야 배가 고팠다. 지갑이 없는 날은 가슴이 철렁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할머니는 욕쟁이로 변신했다. 은숙이 밥을 남겨도 잠을 일찍 자지 않아도 지애미를 닮은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술만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도 없어졌다. 은숙은 그만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 할머니와 동생과 동그란 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할머니가 갈칫국에 있는 갈치를 꺼내 살을 발라줬다. 동생은 맛있다며 밥을 두 그릇 먹었다. 은숙은 갈칫국을 먹지 않았다. 밥에 김치만 먹었다. 할머니가 미웠다. 은숙은 앞으로 할머니와 살아갈 생각을 하자 잠이 오지 않았다. 바람이 나무유리창을 거세게 때리는 밤이었다. 다음 날도 할머니는 갈칫국을 끓였다. 늙은 호박과 배추를 넣은 갈칫국은 아버지가 좋아했다.
저녁을 먹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어왔다. 은숙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가 활짝 웃으며 은숙을 안았다.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갈칫국을 뜨고 왔다. 한동안 아버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연정이네는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구멍가게였다. 등이 굽은 할머니와 연정이가 살았다. 과자, 계란, 휴지, 콩나물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은숙이가 아버지의 술 심부름을 가면 연정이 할머니는 은숙의 손에 잔돈과 함께 사탕을 집어줬다.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비가 오면 일을 못 하는 사람들이 아침밥을 먹자마자 달려갔다. 날이 좋으면 일을 끝낸 사람들이 저녁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몰려들었다. 시골의 겨울밤은 길고 지루했으며 여자들의 목소리는 컸다. 고된 노동으로 단련된 억센 손으로 빨갛고 앙증맞은 화투를 잡았다. 연정이 할머니는 연신 술과 안주를 대령했다. 항간에는 연정이 할머니가 돈놀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언제부턴가 어머니가 연정이네 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놀다 오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머니는 연정이네 집에 가고 없었다. 평소보다 빨리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은숙에게 술상을 차려오라고 말했다. 저녁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에 계란프라이 두 개를 하고 배추김치와 함께 상을 차렸다. 아버지는 소주 한 잔을 마시더니 연정이네 가서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은숙이 말을 더듬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은숙은 넘어질까 조심하면서도 뛰는 것처럼 걸었다. 바람이 얼굴을 깎는 듯했다. 따가웠다. 시린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갔다. 자꾸 기침이 났다. 은숙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연정이네 가게에 도착해서 문을 열기 전에 은숙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손을 몇 번 비벼서 얼굴에 갖다 댔다. 머리가 띵했다. “엄마.”은숙의 어머니는 방 안쪽에 있었다. 추운 데 있다가 갑자기 더운 기운을 받은 은숙의 뺨이 금세 빨개졌다. “엄마, 아빠가 엄마 데리고 오래.”은숙의 말이 사람들의 소리에 묻혔다. “엄마.”은 숙은 몇 번을 불러야 어머니가 일어설지 몰랐다. 사람 속을 비집고 들어가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었다. 빨리 가보라는 사람들과 어딜 가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엉켰다. 은숙의 어머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화투를 돌렸다. 은숙은 화투가 몇 번 도는 동안 계속 서 있었다.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술상 옆에 모로 누워 있었다. 은숙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어머니가 아버지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 은숙은 깜짝 놀랐다. “개쌍놈의 새끼. 할 줄 아는 거라곤 술 처먹는 거밖에 모르는 새끼. 네가 뭔데 날 오라 가라 하는 거야? 밤중에 아이한테 시킬 일이 따로 있지. 야. 이 새끼야. 일어나 봐.”아버지가 돌아누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 척하면 끝이지? 어? 안 자는 어 알아. 빨리 안 일어나? 일어나. 제발 무슨 말이든 하란 말이야.”처음 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은숙은 당황했다. 그제야 어머니가 술을 마셨다는 걸 알았다. 가슴에서 나오는 말이 은숙의 마음을 찔렀다. 할머니의 욕과는 다른 아픔이었다. 어머니는 진이 빠질 때까지 아버지를 때리고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물을 마신 어머니가 답답하다며 가슴을 손으로 쳤다. 일어서는 어머니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상 모서리에 있던 유리컵이 떨어졌다. 잔이 깨지고 유리 조각이 튀었다. 놀란 은숙이 걸레를 가지러 갔다.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자 아버지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천천히 유리 조각들을 휴지로 쓸어 모았다.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유리를 다 치운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날 밤 은숙은 유리창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보며 오랫동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