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마당에 나와 있었다. 연희가 길가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고 있던 어머니는 연희가 차에서 내리자 등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마음이 풀리지 않았구나. 가슴이 서늘했다. 하지만 곧 오른손으로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엄마” 하며 달려갔다.
-어쩐 일로?
다시는 안 온다고 하지 않았니. 가 생략된 말은 짧았다.
-숙희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마을회관에 갔다 왔어요?
-아니여. 은숙이 어멍 오민 고치 가잰 기다렴쭈게.
-아.
말이 막혔다. 이상했다. 엄마와 함께 친정집에 있는데 왜 말이 막히지? 연희는 괜히 주위를 돌아보다 일어섰다.
-엄마, 커피 마실래요?
커피포트에 물을 붓고 버튼을 눌렀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이 끓어오른다. 마루는 금방 걸레질을 마친 것마냥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았다. 물기하나 없는 씽크대와 잘 정리된 그릇과 컵들이 깔끔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쓸고 닦았다. 큰언니 말로는 증상이 심하다고 하던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엄마, 뻠뿌 결혼했어요?
-누게?
-왜 뻠뿌 있잖아. 우리 옆 집에 살던
-아, 그 뻠뿌. 결혼했지. 아고. 잘도 착헌 아이라.
-누가? 뻠뿌가?
-아니, 각시가. 외방아이 안 닮게 얼굴도 곱고 날씬하고 잘 웃고 일도 막 잘 헌다.
연희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던 엄마가 화색이 돌면서 말에 열을 올린다. 어머니는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연희가 100점을 받아오면 숙희는 몇 점이냐를 물었고, 연희가 결혼할 상대와 같이 왔을 때는 애써 키웠더니 먼 곳에 시집간다며 타박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티끌을 굳이 끄집어내며 불평을 늘어놓는데 능한 사람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눈에 든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게 뻠뿌 각시라는 것도 연희는 못 마땅했다. 연희는 입에 품은 날카로운 말이 나가지 못하게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아이들은 뭘 하다가 제 생각대로 안 되거나 말문이 막히면 “이 뻠뿌각시야.”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뱉는 순간 전세가 역전된다. 그 말을 들으면 일단 얼굴이 빨개지면서 전의를 상실했다. “이 뻠뿌각시, 야. 저기 뻠뿌 지나가네. 니 서방 지나간다. 뻠뿌각시야.”하며 도망가면 기를 쓰고 쫓아갔다.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진짜처럼 기분이 나빴다. 연희도 몇 번이나 뻠뿌각시로 불렸다. 연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벌개졌다.
가슴이 봉긋하게 나온 후부터 연희는 평소에는 물론이고, 체육시간에도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뛸 때마다 출렁이는 가슴이 싫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가리면서 뛰었는데 그게 더 눈에 띈다는 것을 안 후부터 뛰지 않았다. 엄마는 연희가 다른 아이들보다 빠르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 생리가 왔다. 또래보다 키가 크고 머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온 연희는 멀리서 보면 아가씨 같았다.
연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신의 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자꾸 어깨를 움츠리며 걸었다. 생리가 오는 날은 학교에 가기도 싫었다. 한번은 교실 의자에 빨간 피가 묻었다. 집에서는 괜찮았는데 학교에 오자마자 생리가 왔다. 담임선생님은 연희에게 집에 가라고 했다. 왜 집에 가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연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교문을 나왔다. 밑이 축축했다.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지만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냥 걸었다. 걸으면서 윗도리를 아래로 당겼다. 힘주며 당겼다. 연희가 아무리 잡아당겨도 당길 때만 내려왔다 금세 올라가 버리는 윗도리와 씨름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가맨? 타.
뻠뿌였다. 뻠뿌가 말을 걸었다. 쉬는 시간에 뻠뿌각시라고 불렀던 아이와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친구들이 보면 안 된다. 모퉁이를 돌아야 하는데 그래야 학교에서 안 보이는데. 연희는 걸음을 재촉했다.
-나도 집. 집에 가는데. 타.
뻠뿌의 자전거는 뻠뿌만큼이나 컸다. 친구들이 타는 손잡이가 양옆으로 구부러지고 바퀴가 작은 자전거가 아니었다. 안장이 높이 있었다. 뻠뿌는 자전거에 짐을 한가득 싣고 동산을 힘겹게 올라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나보고 저 짐칸에 타라는 거야? 미친 거 아냐?’
연희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입술에 힘을 주고 걸었다. 뻠뿌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긴 팔로 자전거를 끌며 연희를 따라왔다. 뒤에 타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
-나도. 집. 집에 가. 너 우리 집 옆에. 타.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나는 혼자다.’
-아팡 조퇴하는 거민 타. 타민 금방 간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나는 혼자다.’
-나는 나는.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어?’
뻠뿌의 자전거가 지나갔다. 방금까지 옆에서 말을 걸던 뻠뿌가 세차게 패달을 돌리며 가고 있다.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앞만 보면서 달려가는 뻠뿌의 자전거가 점점 작아졌다. 배가 아팠다. 집은 아직 멀었다. 동산은 높았고, 사람들은 밭에 갔는지 하얀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멀리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정신없는 새 한 마리가 뻐꾹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연희는 모든 게 다 싫었다.
하나 둘 셋하면 짠하고 공간이동을 해서 집에 도착하는 마법을 알고 있으면 축축한 아랫도리도 거짓말처럼 뽀송뽀송해질텐데. 뻠뿌가 마법사가 아니듯 연희는 비극의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수업 시간에 조퇴한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6학년으로 졸업하면 중학교 1학년이 된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다시 시작이다. 삶은 반복되는데 사람은 그대로일까? 달라질까? 연희는 발에 걸린 돌멩이 하나를 걸어 차 놓고 앞코가 아파 인상을 썼다.
-엄마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엄마가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연희도 고개를 갸웃하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엄마는 뭐가 그리 급한지 슬리퍼를 다 신기도 전에 여자 앞에 서 있었다. 여자는 뭔가를 엄마에게 건넸고, 엄마는 뭐 이런 걸 다.라고 하며 활짝 웃었다. 잡아끌고 싶은데 집에 화상이 있어서.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다음에 올께요. 하며 돌아섰다. 엄마는 고맙다고 말했다. 여자가 길을 건너고 저만치 사라질 때까지 엄마는 마당에 서 있었다. 연희와 비슷하거나 조금 어려 보였다.
-누군데 엄마를 엄마라고 불러?
-누군 누구라게. 창섭이 각시주.
-창섭이? 그 사람이 누군데?
-무사, 창섭이 모르는냐. 우리 옆집에 살았던 그 키 크고 착헌 아이. 아. 왜 교장선생 아들게.
-아, 뻠뿌.
-근데 왜 그 여자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냐고.
-나도 모르켜. 별난 게 다 시비다.
엄마가 손을 바지에 툭툭 털더니 부엌으로 갔다. 여자가 건넨 검은 비닐 째 냉장고에 넣었다.
뭔가 있다. 엄마가 숨기는 게 있다. 엄마는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이다. 대답을 회피한다는 게 수상했다. 연희는 그게 뭔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했다. 여자를 따뜻하게 쳐다보는 엄마의 시선이 낯설었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무뚝뚝하고 퉁명해졌다.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고, 모든 것이 불만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가도 엄마 입에는 짜고 싱겁고 매웠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정신 사납다고 했고, 한적한 곳에 가면 조만간 망할 것 같다며 혀를 찼다.
-나니까 딸이어서 맞춰주는 거지. 정말 엄마 이러면 며느리가 싫어해요.
참다 못해 한마디 했더니 엄마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뻠뿌의 이름은 이창섭이었다. 남자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직했는데, 사람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동네에서 유일한 공무원이었고, 조상 대대로 땅부자였다. 아들 둘과 딸 셋을 낳아 키웠는데, 자식들을 모두 시내에 있는 학교에 유학시켰다. 남자만 빼고.
남자는 교장선생이 오십 넘어 얻은 칠삭둥이였다. 임신 사실을 안 남자의 어머니는 진한 간장 물을 한 대접 먹었다. 뱃속이 꿈틀거리자 배를 문지르며 미안하다 미안하다했다. 속이 뒤집혀지는가 싶더니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남자의 어머니는 전날 먹은 생선국까지 다 게워내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간장을 먹고 나온 아이는 얼굴이 유난히 검었다. 기골이 장대했고, 크고 검은 눈동자가 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