뻠뿌3

by 레마누

남자는 8살 때까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스스로 한글을 떼고 구구단을 외웠는데, 남자는 더듬거리며 말하거나 울먹이는 게 다였다. 어미는 마흔 넘어 낳은 막둥이가 모자란 게 제 탓인 듯 싶었다. 속도 없이 잘 웃었던 막둥이는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어미는 막둥이의 텅 빈 속에 뭐라도 집어넣고 싶었다. 밥도 떡도 빵도 주는 대로 받아먹은 막둥이는 동네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어른 아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걱정 없던 교장 선생님을 동정했다. 다른 형제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의사가 되고, 시집, 장가를 가서 손주들을 척척 낳아올 때도 사람들은 막둥이를 들먹였다. 시기와 질투 사이를 묘하게 오가며, 마치 은밀한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수군거렸다. 잘 나가는 자식들은 제사 명절 때 얼굴을 잠깐 비추고는 바쁘다며 올라갔다. 한 번은 제사가 끝나기도 전에 전화받은 큰 아들이 작은 방에서 자는 돌쟁이를 안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제사라도 끝나서 가라고 잡았지만, 급한 일이라 지금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어서 가라며 배웅했다. 남자의 어머니는 잘난 아들은 내 몫이 아닌 법이라며 섭섭함을 달랬다.


아들과 대학 동기인 며느리는 남자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아이들이 삼촌이라도 부르는 것도 질색 팔색이었다. 제삿날 남자가 절을 하러 방에 들어서면 벌레 피하듯 벽에 붙어서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남자는 “형수님.”이라고 불러도 며느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은 건 며느리나 사위나 매한가지였다. 남자는 먹을 게 많은 제사와 명절에 예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왜 맛난 밥은 안 먹고 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땅을 아들에게만 나눠 준다는 말에 큰딸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딸은 자식 아니냐고 하자 교장은 출가외인이라는 방패를 들었다. 셈이 빠른 둘째 딸이 재빨리 언니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자리에 앉히고는 몇 번 헛기침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아버지. 선산은 아버지 말씀대로 오빠와 창섭이에게 간다고 해요. 그럼 남은 과수원이랑 밭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건 그때 가 봐야지.

-그때가 언젠데요? 농사도 짓지 못하는 땅 가져 있어서 뭐 하시려고요. 경기 좋을 때 땅 팔아서 시내에 아파트 하나씩만 장만해 주시면.. 그러면 제가 정말 잘할게요.

눈물을 훔치며 빠르게 말을 뱉었다. 둘째는 유일하게 전셋집에 살고 있었다.


-일단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 그 후의 일은 차차 알아서 할 거고. 나 죽어서 진흙탕 싸움 되는 거 보기 싫으니 가급적 죽기 전에 정리할 생각이다.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현명하게 나누었다고 생각했던 재산들은 어느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흩어졌다.


-창섭이가 정말 난 사람이다. 난 사람. 잘난 형제들은 재산에만 눈이 멀어 아픈 부모 생각 안 하고 돈 줄 때만 내려왔는데 창섭이는 뭐니. 응? 아버지 제사 꼬박꼬박 챙겨. 치매 걸린 어머니 요양원에 안 보내고 글쎄 지금도 창섭이가 똥기저귀를 간다는구나.

-며느리는 뭐 하고?

-쑨도 거들지. 애 셋 건사해. 밭일 잡부로 일하면서 지 용돈벌이해. 시어머니 삼시세끼 차려줘. 뭘 더 바라겠지? 그 이쁜 것이 타국에 와서.. 그런 얘 드물다

-이름이 쑨이야? 어느 나라 사람인데?

엄마의 말이 길어질수록 연희는 속이 꼬이고 입이 나왔다. 들으라는 소린지 일부러 작정하고 들려주는 건지 모르는 엄마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열흘 전 연희는 남편과 함께 친정에 내려왔다 두 시간도 안 돼서 올라갔다. 엄마는 방문을 닫으며 그런 소리 할 거면 오지 말라고 했고, 연희도 다시는 안 올 듯이 현관문을 세게 닫았다.

-어머님은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야?

운전하는 내내 말이 없던 남편이 입을 열자 연희는 숨이 막혔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지 원. 아니. 생각이라는 게 애당초 있기나 한 거야? 그 큰 집에서 혼자 살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내가 남이야? 왜 나를 남보다 못하게 취급하는데? 어?


남편은 화가 나면 목소리가 더 작아졌고, 이를 갈 듯이 말이 잘게 씹혀 나왔다. 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번듯한 집안에서 자라 법학과를 나오고 마흔 중반에 대학교수가 된 남편은 교과서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완벽한 아버지였고, 연희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모임에서 연희는 아무 걱정 없는 사모님으로 통했다.


남편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완벽한 삶을 추구했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잡지에 나오는 모델처럼 처럼 앞치마를 입은 연희는 모델 하우스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연희는 날마다 집을 쓸고 닦으며 자신의 몫을 했다. 남편이 만들어 놓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남편은 연희에게 당신은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집에서 놀고먹으니 얼마나 속이 편할 거냐며 비아냥거렸다. 나도 출근하기 싫다. 그렇지만 너와 아이들을 위해 참고 살고 있다. 그러니 불평불만이랑 접어두고 똑바로 잘해라. 남편이 구두에 신경질적으로 발을 집어넣는 아침마다 남편의 등은 연희에게 경고했다.


-힘들면 친정에 가서 쉬었다 와.

주부들이 제일 듣고 싶은 말을 남편이 무심하게 던졌다. 친정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다.

-그래도 돼?

그렇지 않아도 혼자 지내는 엄마가 걱정이던 연희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남편은 핸드폰에 얼굴을 박은 채

-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서 푹 쉬고 와.

라고 말했다.


연희는 이민용 캐리어를 옷장에서 꺼내 옷가지를 챙겼다. 내려갈 때는 한 달을 생각했지만, 연희가 집에 돌아온 건 일주일 후였다. 집은 연희가 나가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잘 정돈된 거실과 물기 하나 없는 싱크대를 보며 연희가 느낀 감정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라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가 하나도 반갑지 않은 것 같았다. 연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집을 생각하면 한시도 친정에 있을 수 없었다는 말을 못 했다. 안 그래도 존재감 없는 집에 부재중까지 찍히면 영영 잊힐 것만 같다는 생각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요즘 친정집에 관심이 많다. 어머님 연세도 있으신데, 우리가 모셔야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고마웠다. 차가운 척 해도 속은 따뜻한 사람이지 싶은 게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어서 나온 말이 연희의 가슴에 박혔다.


-돌아가실 때 옆에 있었던 자식이 재산을 갖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어머님을 모셔와. 어머님 혈압이 안 좋다고 했지? 노인네가 혼자 살다 험한 꼴 당하기 전에. 그리고 집문서 어디 있는지 잘 기억해 두고.

-처남은 서울에서 계속 살 생각인 거지? 나중에 어머님이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가 모셔야 할 거 아냐. 지금부터라도 잘 챙겨드려야지.


남편의 말이 혼란스러웠다. 눈을 보고 싶었다. 핸드폰 좀 그만 보고 얘기하자고 말하면, 남편은 듣고 있으니 말하라고 한다. 연희가 보는 건 언제나 남편의 휑한 정수리였다. 눈을 보지 않고 오가는 말은 진의를 파악할 수 없다. 남편의 관심사는 장모일까? 집일까? 양념 반 후라이드 반도 아니고, 대등하게 중심을 잡고 버티고 있는 시소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남편의 의도야 어떻든 간에 연희도 엄마와 함께 살고 싶었다. 시골의 대문 없는 집에 엄마 혼자 사는 게 마음에 걸렸다. 시내에 살면 언제든 병원에 갈 수 있다. 정 심심하면 동네 노인당에 가서 고스톱이라도 치시겠지. 젊었을 때 동네 삼촌들과 무허가 댄스 교실에 종종 가곤 했던 엄마다. 연희가 운전을 배우고 제일 많이 간 곳이 읍내에 있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엄마를 내려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엄마가 왔다. 머리칼이 땀에 젖고, 볼이 발갛게 상기된 엄마는 주름이 많은 아이 같았다. 엄마는 아무리 배워도 늘지 않는다며 연희 앞에서 몸을 흔들었다. 연희가 보기에도 엄마의 춤은 로봇처럼 딱딱했다.


언젠가 연희가 나이트클럽에 갔을 때 합석한 남자가 말했다. “연희 씨는 나이도 어린데 춤은 꼭 아줌마 같아.” 엄마가 춤추는 것을 보는데 그 말이 생각났다. 우스웠다. 내가 엄마를 닮았구나. 흥은 많은데, 즐길 줄 모르고, 몸 따로 마음 따로 노는 게 똑같네.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스쿠터를 탔다. 시속 60이 최고인 스쿠터를 타고 부르릉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직장 동료가 회식 때 베트남 남부 여행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행을 가서 동네 투어를 신청했는데 젊은 베트남 여자가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탔단다. 생글생글 웃으며 “오빠, 안녕”이라고 인사한 여자는 터프하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베트남 시골길은 하얀 시멘트길과 비포장도로가 반복됐다.


여자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에 탄 남자들은 처음에는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여자가 손을 뒤로 뻗더니 남자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고 한다. 순간 놀란 남자가 움찔했다. 그러나 뭐 어쩌랴 싶어 남자도 여자의 허리를 꽉 잡고 달렸다고 했다.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은 베트남 어디냐며 나도 빨리 가야겠다고 농지거리를 했다. 왜 그 장면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흑백사진 속 젊은 엄마의 얼굴과 쑨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러고 보니 웃는 눈매가 닮은 것 같았다.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의 49제가 끝나고, 엄마는 정신을 차려야겠다며 미용실에 갔다.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뽀글이 파마를 했다. 엄마는 안방에 있던 아버지의 물건을 다 치웠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으니 집이 깨끗해졌다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했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사람 같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과 혼자서도 잘 살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 있으면 적적하다며 코카스 파니엘을 키우기 시작했다. 갈색 인형처럼 생긴 강아지는 성격이 밝고 신발만 보이면 물고 도망쳤다. 사람보다 개가 낫다는 말이 뭐라고 가슴이 쓰렸다.


-엄마, 올라가서 같이 살아요. 엄마, 얼마 전에도 장염 걸려서 혼났잖아. 혼자 있다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요.

-시끄럽다 게. 그때 한 번 그런 거 가지고. 난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니까 절대 그런 소리하지 말아.

-엄마는 왜 그렇게 엄마 생각만 해?

-너도 나 생각하지 말라게.

말이 아프다. 엄마가 하는 말은 가장 약한 부분을 찌른다. 언제나. 내가 네 속을 모를 것 같냐는 말이 더해져서 날아온다. 모든 말에 의미가 달려 있다. 엄마의 말은 무겁고, 아프다.


-김서방 오면 싱크대 수도꼭지나 좀 봐줘라.

싱크대에서 유리잔을 씻던 엄마가 수도꼭지를 여기저기 돌렸다. 호스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 걸치고,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보고 있는 걸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엄마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멀리 살면 딸이고 동기간이고 다 필요 없다. 그저 옆에 있는 사람이 최고인 거라.

눈을 보지 않은 대화가 이어졌다. 옷을 갈아입은 엄마가 물티슈로 바닥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창섭이 어서 시민 난 여기 못 살았쩌. 쑨이랑 창섭이가 아침저녁으로 오멍가멍 들린다게. 시장 갔다 사 왔댄 허멍 도너츠나 찐빵도 사다 주고.


‘그깟 도너츠와 찐빵이 뭐라고. 내가 사다 주는 건 뭔데? 한 번 누가 더 잘하나 내기라도 해 봐? 철마다 설화수 화장품에, 백화점 마네킹에 걸린 블라우스, 돼지고기와 소고기, 엄마가 좋아하고 필요한 건 다 내가 사 준 거잖아. 왜 그건 기억을 못 하는데? 난 엄마 때문에 남편한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고.’

-그런 아이들 세상에 없다. 다리 아팡 옴짝못하는 어멍한티도 그추룩 잘 헌다. 쑨이는 나만 보면 고향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난댄 허멍 나한티 엄마, 엄마 부르는데. 그걸 부르지 말랜 해지느냐. 잘도 착한 아이라. 속이 능구랭이같은 놈들하고는 천지차이여게.

‘그만하시라구요. 엄마 딸은 누가 뭐라도 나니까.’


-엄마, 그러니까 왜 다른 사람들한테 아쉬운 소리 하면서 살아요. 그냥 나랑 같이 올라가 살아요. 맘 편하게.

-편하긴 무슨. 그 호랭이 굴 속으로 내가 미쳤다고 들어가느냐?

-누가 호랑이고, 무슨 굴 속이야? 엄마 진짜 왜 그래?

그때 길에서 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갔다. 간다는 말도 없이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은 가볍고 시원했다. 연희는 진이 빠졌다. 이대로 집에 가면 남편에게 뭐라 말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연희가 가방을 가지며 일어서려는데, 마당에 트럭이 들어왔다. 창섭이었다. 조수석에서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 둘이 내렸다. 집 안에 있던 개가 먼저 뛰쳐나갔다. 엄마네 집 개와 똑같이 생긴 개가 뛰쳐나왔다. 개 두 마리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걸 보고 있는데 창섭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고.


연희가 옆으로 비켜서자 창섭이는 익숙한 듯 부엌으로 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개들과 놀고 있었다. 엄마가 키우는 개와 똑같은 견종이었다. 연희가 마당을 보는 사이 창섭은 고장 난 싱크대를 뜯어내고 새 수도꼭지로 갈아 끼웠다. 능숙한 솜씨였다. 화장실 문을 몇 번 열어본다. 오랫동안 물을 먹은 나무 문은 뻑뻑했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귀신 집에 나오는 소리 같았다. 엄마는 소변을 자주 봤다. 연희는 안방에서 본 요강을 떠올렸다. 어쩌면 엄마가 밤에 화장실에 가지 못했던 건 저 삐거덕거리는 소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창섭은 가방에서 스프레이통을 꺼내더니 문에 달린 경첩에 뿌렸다. 그리고 몇 번 잡아당겼다. 신기하게도 문이 조용하게 열리고 닫혔다. 엄마가 오랫동안 연희에게 말했던 것을 창섭은 십 분 만에 해결했다.


나이 든 부모가 자식에게 뭔가를 말할 때는 불편함을 견디다 도저히 살 수 없을 때다. 웬만하면 자식의 도움 없이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말을 꺼낸다. 자식은 그런 노모에게 이번 주말에 갈게요. 다음에 갈게요라고 말을 한다. 주말에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대회에 나간다. 미안해도 빠질 수 없는 일이라 하면 괜찮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전화라도 하면 다행인 걸까? 가끔은 바삐 사느라 혼자 있는 어미가 했던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한참 후에 생색이라도 내듯 찾아간다.

어미는 얼굴 봐서 좋은 것보다 서러운 게 더 많았다.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오냐. 우리 집에 오는 게 그리도 싫다면 나도 싫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더니 내 자식도 틀린 게 없네. 하는 순간 입에서 독한 말이 나온다. 자식은 자식대로 섭섭하다. 나만큼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하냐고 울먹인다. 없는 시간 쪼개서 온다고 하면 그래, 그러면 내가 아고 고맙습니다 하고 절이라도 할까. 그럴 거면 아예 오지를 말아. 하는 소리가 나오는 순간부터다. 서로의 속마음이 절로 나온다. 만난 지 딱 십 분만이다.


창섭은 엄마의 말을 듣고 바로 우리 집으로 왔다. 은숙이엄마 차를 타고 마을회관에 간 엄마가 회관입구에서 창섭이를 만났다. 창섭이 인사하고, 엄마는 싱크대가 터져서 불편하다는 말을 흘리듯 한다. 엄마가 식당에 들어가고, 창섭은 윷놀이를 구경하다 말고 공구를 챙겼다. 옆에 사는 사람이 최고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연희가 어렸을 때, 여름이면 아버지와 밤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여름 바다는 밤새 한치잡이 배가 켜놓은 불로 환히 빛났다. 저녁을 일찍 먹고, 용머리 해안가에 도착했을 때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파도가 있어서 고기가 잘 잡힌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버지는 산등성이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던졌다. 바다와 산이 붙어 있는 곳이었다. 물고기가 유독 많이 잡혔다. 낚싯줄 하나에 물고기들이 줄줄이 딸려 들어왔다. 미끼를 끼우자마자 줄이 날아갔다. 잡은 물고기를 양동이에 넣느라 바빴다.

그러는 사이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연희네보다 조금 아래에서 낚시하던 동네 삼촌과 남자가 연희네 쪽으로 왔다. 뻠뿌였다. 별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한치 배들도 어디로 갔는지 바다가 새까맸다. 파도가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와 동네 삼촌들이 양동이를 챙겼다. 해안가로 가는 길은 이미 파도가 들어찼다고 했다. 산등성이를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산을 넘으려면 절벽 사이를 건너야 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아래 검은 파도가 요동치고 있었다. 연희는 덜컥 겁이 났다. 한 발짝만 잘못 떼도 안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밑을 보지 말라는 말에 자꾸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버지가 앞에 섰다. 연희가 가운데 있었고 남자가 뒤에 따라왔다. 그 뒤로 사람들이 있었다. 연희는 아버지의 등을 보면서 걸었다. 양동이와 낚싯대를 잡은 아버지가 신중하게 걸음을 뗐다. 연희가 몇 번 흔들렸다. 그때마다 남자가 뒤에서 재빨리 연희의 몸을 잡았다. 연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크고 거친 손이 연희의 손을 감쌌다. 따뜻했다. 손에 힘을 꽉 주고 걸었다. 파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남자가 손을 놓지 않았다. 길게 자란 풀들과 커다란 돌들로 바닥이 거칠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가 손에 힘을 주고 버텼다. 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걷기만 했다. 아스팔트 도로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삼촌들과 인사를 했다. 남자도 고개를 숙였다. 연희는 얼굴을 돌렸다.

연희는 그때처럼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게 손을 잡아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 하면서, 어찌할 줄 모르는 것이 꼭 바보 같았다.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면 된다. 그게 뭐라고 아닌 척 시치미를 떼고, 관심 없는 사람처럼 먼 산을 보는 체했다. 다른 사람의 좋고 싫음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마음의 소리에는 귀 닫고 살았다. 그래야 맞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저, 고맙습니다.


창섭이 쳐다봤다. 눈동자가 까맣고 컸다. 한번 말을 뱉고 나자 말이 쉬워졌다

-엄마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삼촌 덕분에 제가 마음이 놓여요. 정말 감사합니다.

연희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창섭은 얼굴이 빨개져서 우물쭈물거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뭘 하는지 상관없이 마당에서 개들과 장난치기에 바빴다.

연희가 시동을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의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 화면에 내 사랑이 떴다. 연희는 오랫동안 전화음이 울리는 것을 지켜보며 운전했다. 끈질기게 울리던 전화가 끊기고 부재중 표시가 떴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멜론에서 “도어즈”를 찾았다. 연희가 고등학교 때 밤새 들었던 노래였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듣지 않았던 노래이기도 했다. 짐 모리슨의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들렸다. 연희는 반복 재생을 설정하고 출발했다. 심장을 찢어 놓을 것 같은 기타소리가 계속된다. 연희는 핸들을 잡은 손을 가볍게 두들기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러다 문득 “이 뻠뿌야,”라고 소리쳤다.

빙신, 팔보, 귀껏, 뚜레를 외쳤다. 바보 멍청이를 불렀다. 그 모든 말은 연희와 상관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두 연희에게 하는 말이었다. 연희는 자신이 뻠뿌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물 속에 있는 물을 퍼 올리려면 뻠뿌가 필요하지 않나? 그럼 나쁜 뜻이 아닌데 왜 우리는 뻠뿌가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보이는 것 그대로 믿고, 들리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키득거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진짜 바보같다. 연희가 그러거나 말거나 짐 모리슨은 모든 것을 불태우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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