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애도 3

by 레마누

얼마 전 엄마는 전화로 오백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김서방에게 말 좀 해 달라는 말에 그전에 빌려 간 돈의 이자라도 한번 줬냐고 대꾸했다.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엄마의 마지막은 한 번도 마지막인 적이 없었다. 이번 일만 잘되면 빌린 돈을 다 갚겠다는 말에 제발 그렇게 좀 해 달라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른 때보다 목소리를 높였던 건 임신해서 감정의 기복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랬을 것이다. 임신한 딸에게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돈을 빌려달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안쓰러움이 짜증처럼 들렸을 것이고, 당장 돈이 급한 사람에게는 입에 발린 소리보다 돈이 더 반가울 것이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통화가 돈이야기로 끝났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오백만 원이 공중에서 떠다녔다. 죽기 직전의 엄마는 사람들에게 오백만 원을 빌렸다. 어렵게 말을 꺼내고, 씁쓸하게 전화를 끊는 엄마, 진아 엄마를 찾아간 엄마, 이모와 오래 통화하는 엄마, 나와 영상통화를 하며 희미하게 웃었던 엄마가 지나갔다. 나는 엄마에게 몇 번째였을까?



이모에게도 똑같이 마늘을 수확하고 갚을 테니 오백만 원만 빌려달라는 말을 했겠지. 이모는 어땠을까? 나처럼 돈이 없어서 속상했을까? 이모는 아파트 단지 안에 사는 갓난아이를 돌보며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효정이는 어땠을까? 이모가 그렇게 자랑했던 서울에서 잘 나가는 사촌 동생 효정이는 오백만 원이 통장에 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것들이 절실한 사람에게는 목숨을 살릴 지푸라기가 된다. 엄마의 지푸라기는 언제나 물에 가라앉았다. 엄마는 절실함과는 별도로 운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때 잠깐 큰 이모네 집에 산 적이 있었다. 커다란 가방 두 개를 들고 들어간 후 나는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모부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밥 먹었냐고 물었다. 작은 몸집에 얼굴이 크고 목소리가 걸걸했다. 아침부터 소주 한 병을 옆에 두고 밥을 먹었다. 큰 이모는 숟가락이 다섯 개 놓인 아침상을 차렸지만, 나는 한 번도 아침을 먹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이모가 세탁기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걸 본 적이 있다. 하얀 연기가 사라지는 끝에 작은달이 걸려 있었다. 이모는 입술을 오므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담배 한 모금이 이모의 폐 속으로 들어가면 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들이마실 때보다 더 천천히 숨을 뱉었다. 이모는 담배 연기와 한숨을 함께 뱉어냈다.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쪼그리고 앉은 이모는 세제 통에 들어갈 것처럼 작아 보였다. 담배 연기는 희미하지만 길게 이어졌다. 연기의 끝에 이모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모든 불행은 세상이 내 생각대로 굴러간다고 느끼는 순간 시작된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느낀 건 이상한 배신감이었다. 엄마는 초복날 나와 삼계탕을 함께 먹을 시간도 없이 일했다. 섭섭해하는 내게 엄마는 다음에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오백만 원을 빌려주지 않아서 엄마가 저녁을 안 먹는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날 엄마는 저녁까지 마늘밭에 닭똥비료를 뿌렸고, 다음 날 새벽일을 마무리하러 갔다 사고를 당했다. 엄마의 죽음에 놀란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황망한 얼굴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온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에게 나는 임신한 상태로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불쌍한 아이였을까? 엄마 대신 돈을 갚을 사람이었을까?



엄마와 친했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엄마의 무덤에 흙을 뿌렸다. 엄마의 인생을 안타까워하며 울던 얼굴로 내 손을 잡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빨리 돈을 달라는 말로 들렸다. 위로에 목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후부터 들리는 말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했다.



장례식이 끝나도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고 없는 죽음 앞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아무 말이나 했다. 큰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의 인생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극적이고 불행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맞장구를 칠 때마다 소금을 뿌리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당신들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죽음과 오백만 원을 시소에 태우고 무게를 헤아렸다. 오백만 원이 내려갔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어 화가 났다. 엄마의 빚이 엄마를 잃은 슬픔을 누르고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죽음은 면죄부가 아니었다. 슬픔과 부채는 별도였다. 믿었던 큰 이모까지 나를 졸졸 따라다니자, 대책 없이 떠난 엄마에게 짜증이 났다. 완벽한 애도는 완벽한 상황에서 나온다. 슬퍼할 새도 없이 빚쟁이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은 엄마가 살았을 때 가장 의지했던 지인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을 것이다. 엄마를 잘 알고, 엄마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을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그것은 왠지 엄마를 욕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당할 수도 없으면서 싫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숨겨둔 돈도, 몰래 들어 놓은 보험증서도 없었다. 일하다 죽었고, 죽음과 동시에 눌러왔던 부채들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달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외롭고 슬펐다. 엄마의 죽음을 완벽하게 애도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연극에는 대본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그러나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깊은 우물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두려웠다. 무엇이 있을까? 얼마나 깊고 어두워서 엄마는 나오지 못하는 걸까?



늦은 오후가 되자 부엌에 있던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장례식에서 먹다 남은 몸국과 돼지고기 수육을 데우고 있었다. 밥도 밑반찬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엄마가 죽어도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후식으로 과일도 챙겼다.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 올렸던 과일들은 크고 실했다. 사람들은 사과와 배를 깎아 먹으며 맛있다고 했다.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에 큰 이모가 웃었다.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로 눈물이 고여 있던 눈으로 웃었다. 배가 맛있어서 웃는 거겠지 하면서도 마음이 쓰렸다.



나는 도무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배 속의 아이가 밥을 달라고 발길질을 했다. 남들은 입덧이 심해서 밥을 먹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먹는 입덧을 했다. 배가 고프면 못 견뎠다. 수시로 입에 뭔가를 넣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 먹은 게 없었다. 물만 마셨다. 눈물로 다 빠져나갔을 것이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울 때마다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야 했다. 배 속의 아이를,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를, 그리고 오백만 원을.



-사고 보상금은 얼마나 나온대요?

-꽤 나오지 않을까?

-거의 일방이죠?

-그럼, 음주 운전에 신호 위반인데.

-그래도 은숙이 엄마가 트럭 뒤에 앉아 있어서 100% 일방은 안 될걸요

-뭐가 걱정이야. 은숙이가 그렇게 잘 산다는데. 돈이 문제겠어.



가끔은 소곤대는 소리가 크게 말하는 것보다 더 잘 들릴 때가 있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말을 하면 덩달아 귀를 잔뜩 열었다. 듣고 싶지 않았지만 들리는 말들과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듣게 되는 말들이 오갔다. 사람들은 엄마의 죽음과 돈과 우연과 허무함을 상자에 넣고 마구 흔들었다. 뭐가 나올지 몰랐지만, 뭐든 좋다는 생각으로 랜덤 박스 안에 손을 넣었다. 순서를 기다리다 하나씩 집어 나오는 키워드를 앞에 두고 한참을 떠들어댔다. 말 말 말. 말들이 넘쳐났다.


장례식이 끝나고 엄마의 영정사진이 상에서 내려왔다. 침대 옆에 있던 제상을 치우고, 물건을 정리했다. 엄마의 가슴만큼 늘어진 브래지어와 면팬티를 검정 비닐에 담았다. 입을 사람이 없는 옷들을 서랍에서 꺼냈다. 신발도 누추하긴 마찬가지였다. 뒤축은 닳고 앞코는 벗겨진 검은 구두를 들고 보니 가슴이 아팠다. 좋은 신발은 주인을 멋진 곳으로 데려다준다는데, 이 신발을 신으면 저승길조차 험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옷 하나 없는 엄마의 옷장이 서러웠다. 슬펐다가 화가 났다가 안쓰러웠다. 빚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엄마는 돈을 빌려 어디로 가져갔을까? 차라리 엄마가 딴 주머니라도 찼으면 좋았을걸. 분에 넘치는 것을 입고 마시며, 제 마음만 챙기던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 같았다.



엄마의 58년 인생 속에서 한 번이라도 돈이 걸리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을까. 엄마의 죽음 앞에서 완벽하게 애도를 할 수 없었다. 죽음 앞에서 애도를 논하기에는 돈의 덩치가 컸다. 그러고 보니 영정사진 속 엄마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엄마도 알고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아귀처럼 달려드는 또 다른 사람들을. 받을 돈이 있는 사람에게 애도는 어울리지 않았다. 눈으로는 울면서도 돈 받을 궁리를 한다. 절을 하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굴린다. 아는 사람들이 반갑지 않았다. 엄마의 물건들을 태웠다. 옷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큰 이모는 여전히 집에 가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을 해야지 마음먹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큰 이모의 딸이자 서울에 사는 사촌 동생 효정이였다.

“언니”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큰 이모만큼이나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미안해, 언니. 내려가 보지도 못하고. 내가 이모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라 비행기표도 못 구하고, 또 아이도 백일밖에 안 돼서..”

“그래, 알지. 알아. 괜찮아. 효정아.”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울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효정이의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덕분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런데 효정아. 미안한데. 오백만 원 있잖아. 내가 조금 늦게 줘도 될까? 지금은 돈이 없어서.”

“네? 무슨 돈?”

“우리 엄마가 큰 이모한테 빌린 돈 있잖아. 너한테 빌려서 준 거라던데.”

훅. 하고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 소리 같기도 했다.

“내가 못 산다. 진짜. 언니. 우리 엄마 어떡하면 좋을까?”

대꾸하지 못했다. 엄마가 없는 마당에 효정이가 걱정하는 큰 이모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언니. 돈 그거 아니야.”

말은 들었는데 말을 못 알아들었다. 아니라는 말이 뭘까? 돈이 아니라는 걸까? 금액이 다르다는 걸까?



“엄마 실은 치매가 왔어. 얼마 전에 검사했는데 진행이 꽤 됐대. 내가 내려가 봐야 하는데 상황이 그래서 남동생이 지금 돌보고 있어. 그런데 엄마가 자꾸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줬다고 말을 하고 다니는 모양이야. 나도 진짜 미치겠어. 저번에는 글쎄 김서방이 자기한테 돈 천만 원을 줬다고 하는 거야. 그런데 알고 봤더니 십만 원이었던 거 있지. 내가 못 산다. 진짜.”



하나도 안 들리는 말 중에 딱 한소리만 박혔다. 큰 이모는 돈을 빌려준 적이 없다. 큰 이모는 오백만 원을 엄마에게 빌려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엄마와 통화하는 내내 이모는 효정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딸에게 돈을 빌려 동생에게 줄 생각만 했겠지. 엄마가 괜찮다고 말해도 이모는 괜찮지 않았다. 큰 이모는 마음으로는 오백만 원이 아니라 오천만 원이라도 엄마에게 빌려줄 수 있었다. 돈만 있다면. 이모가 장례식 내내 그렇게 슬피 울었던 건 엄마의 죽음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돈에 걸어져 허망하게 가버린 동생이 불쌍했다. 자신의 삶이 동생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던 이모는 엄마를 묻으며, 마치 제 머리 위에 흙이 떨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언니, 미안해. 내가 미리 말을 해야 했는데. 거기서 또 그럴 줄은 몰랐지. 나는 그냥 언니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한 거야. 언니. 내 얘기 듣고 있죠? 언니. 우리 엄마 또 무슨 얘기한 거 없어요? 있으면 얘기해 줘요. 내가 아주 속상해서 죽겠어. 그렇게 진지하게 돈 얘기를 한다니까. 엄마는 왜 하필이면 돈에만 집착하는지 몰라. ”



나는 효정이에게 고생한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시소 타기가 끝나자 폭력적인 허기가 찾아왔다. 뜨겁게 데운 몸국을 먹었다. 뱃속이 요동쳤다. 엄마가 없어도 잘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아 엄마와 철희 엄마도, 큰 이모도 각자의 방식대로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내 슬픔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고, 믹스커피를 마시며, 힘을 짜내어 곡소리를 내며 죽은 이를 애도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남겨진 자들에겐 그들만의 그림자가 있다. 살아간다는 건 배가 고프다는 말이고, 밥을 먹어야 살아진다. 살아난다.



한 달 전에 엄마는 장아찌를 두 통 했다. 엄마는 아주 오래 살 생각이었을 것이다. 김장김치를 하고, 장아찌를 담가서 김치냉장고를 꽉 채워 넣으며, 임신한 딸에게 갖다 줄 생각도 했겠지. 트럭 위에서 날아갈 줄도 모르고, 사람들에게 마늘만 팔면 갚겠다며 돈을 꾸었다. 아니다. 엄마는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다가올 날을 걱정하는 것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엄마였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때마다 밥을 새로 했다. 금방 한 하얀 밥만 있으면 김치에 밥 한 공기를 먹는다. 엄마의 부엌에서 엄마의 밥솥으로 만든 밥을 엄마가 만든 장아찌에 먹었다. 모든 것이 있는데 엄마만 없었다. 그리고 갚아야 할 오백만 원도 사라졌다. 동네 삼촌들에게 갚아야 할 돈이 있지만 그건 아버지에게 맡길 생각이다.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된다.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도 이제 그걸 알아야 한다.



엄마는 평생 양쪽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일의 경중을 따져가며 균형을 맞춰 살았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몸도 마음도 기울어진다. 내려가기는 쉬워도 올라오는 건 어렵다. 그게 뭐든지 간에. 엄마의 시소는 이제 멈췄다. 고군분투하며 살다 환갑도 되기 전에 비닐포대와 함께 날아가 버린 엄마. 죽음과 동시에 짐을 내려놓고 황망하게 가버린 엄마. 그리고 내가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엄마 밥을 먹으며 나는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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