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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마귀의 유혹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집 중 <바보이반>을 읽고

by 레마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단편선


옛날 옛적, 한 왕국에 어떤 부자 농부가 살고 있었다. 이 부자에게는 군인인 큰아들과 상인 둘째 아들, 바보 이반과 농아인 딸이 있었다. 형들이 전쟁에 나가고, 장사를 하러 도시에 갔을 때, 바보 이반과 어린 누이는 집에 남아 등이 굽도록 땅을 일구고 있었다.



타지에 나가 흥청망청 누리고 살던 형들은 돈이 떨어지자 아버지를 찾아와 재산을 3분의 1씩 나눠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집안을 위해 너희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반대했지만, 바보 이반은 형들에게 재산을 나눠주었다.



늙은 마귀는 재산 분할을 할 때 형제들이 다투지 않고 의좋게 헤어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작은 악귀 셋을 불러 삼 형제가 서로 눈알을 뽑도록 괴롭히라고 명령한다. 악귀들은 군인인 첫째에게는 군대와 명예를, 상인인 둘째에게는 물질욕과 시기심을 건드렸고,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다. 바보 이반은 작은 악귀들과 늙은 마귀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마귀들은 그를 피해 도망갔다.


늙은 마귀는 삼 형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건드렸다. 군인인 첫째에게는 군대를 주고 난 후, 전쟁에 피하게 만들었고, 상인인 둘째에게는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주고 난 후, 물질적 탐욕을 이용해 그를 가난하게 만들었다. 바보 이반에게는 엄청난 양의 일거리를 안기고, 그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바보 이반은 마귀의 도움을 거절하고,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했다.


어느 날 남편이 힘들면 그만하라는 말에 했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에 골머리를 쓰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고, 매번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가다가 멈추는 일을 반복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리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다 크고 나서 시간이 생기면 그때 해라. 아프면 누워서 쉬어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말아라. 다 너를 위해 하는 말이다.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유혹은 달콤하다. 그리고 집요하다. 나의 빈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장 약한 부분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 그리고 집중공격한다. 그래서 흔들린다. 넘어간다. 언제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이 잘못일까? 약점을 공략하는 사람이 잘못일까? 어쩌면 나는 누군가 그만두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멈출 수 없지만, 아이들을 위해, 시어머니 때문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한다는 건 훌륭한 방패가 된다. 나는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어.


정말일까?


학교 가기 싫은 날 배가 아프다고 떼굴떼굴 구르면 정말 배가 아픈 것도 같다. 숙제를 안 한 날은 열도 난다. 아픈 게 먼저인지 싫은 게 먼저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마를 짚은 엄마가 오늘은 학교가지 마라고 하는 순간 열은 달아나고, 배가 고파진다.



종일 텅 빈 집에서 뒹굴거리며 지금쯤 수학시간이겠네. 지금은 점심 먹고 있겠다. 정애가 싸 오는 소시지반찬 정말 맛있는데, 맞아. 오늘 은경이가 파김치 가져오기로 했는데 하며 천장 보고 얘기한다. 마음과 싸우면 언제나 졌다. 쉽게 넘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유혹은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중에 최고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해 주는 걱정이다.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안 해도 돼. 쉬엄쉬엄해. 힘들다고 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힘들어? 그럼 하지 마.라고 명쾌하게 말한다. 이번에도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다행이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을 읽어서 늙은 마귀의 유혹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귀는 가장 간절히 원하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한꺼번에 무너뜨리기 위해 최대한 높이 쌓아 올린다. 원하는 것을 줘서 자만하게 만들고, 가장 중시하는 것을 건드려 생각할 겨를 없이 무너뜨린다. 바보이반이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건 그가 요행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바보 이반의 왕국에서는 지켜야 할 풍습이 하나 있었다. 손에 굳은살이 있는 사람은 식탁에 앉고, 없는 사람은 남은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주 1)



그는 손이 부드러운 사람을 믿지 않았다. 몸을 쓰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을 경계했다. 누구나 편히 살고 싶은 세상에서 바보 이반은 묵묵히 일하며 하루를 보냈다. 더 바라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았다. 바보이반에게 세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살아갈만한 세상이었다.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물을 펼쳐놓고 누군가 걸리길 기다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주저앉는 순간 유혹은 안락한 소파를 준비한다. 지친 몸을 쉬어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며 그럴듯한 말로 꼬드긴다. 넘어가는 사람이 있고, 다시 일어나 제 갈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주1)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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