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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교육을 위해

일요일 아침에는 라방을 켭니다

by 레마누
6월 22일 지담작가님의 유튜브라이브 스트리밍을 보면서 들은 내용과 제 생각을 담은 글입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7시는 지담작가님이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인문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동참만으로도 사고의 확장이 이뤄지는 신기한 시간입니다.


일요일 아침7시가 되면 유튜브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이 시작된다. 울집 아이들은 엄마가 라방을 본다며 신기해한다. 가끔 엄마가 있는 방에 들어와 같이 보다 나갈 때도 있다. 어깨를 툭툭 치며, "열심히 해."하기도 한다. 일요일 아침, 아이들이 일어나 티비를 켜고, 8시에 게임할 생각만 하는 동안, 나는 작가님들과 라방을 본다.


같은 상황, 다른 생각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연달아 일어난다. 좋은 일이 밀려오면 겹경사고, 나쁜 일이 쏟아지면 악재라 생각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파티를 하고, 나쁜 일 앞에서는 이참에 쉬어가자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과연 그럴

까?


좋을 때 좋은 일이 생긴면 신난다. 신날 때 즐기지 말고 하나를 더 하면 더 신난다. 나쁜 일이 반복되면 쉬어가는 게 아니라 그냥 하기로 한 걸 한다. 좋을 때는 좋아서 하나 더 하고, 나쁠 때는 나빠도 하나를 한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인간의 눈이 물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대상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다! - 카잔차스키


카잔차스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사람은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하는 행동을 보고 일부러 당해준다?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다는 자만

내가 알 수 있다는 자부

스스로 깨달은 자각


마주한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한다. 그래야 나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만큼 상대도 나를 모른다. 내가 나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듯 상대도 나를 판단해서 행동한다.


사랑은 단순히 거져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각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있게 안 주는 것이다

그것은 지각있게 칭찬하고, 지각있게 비판하는 것이다. -스캇 펙


사람을 그냥 사랑하지 말고, 지각있는 판단을 해서 지각있게 사랑하라. 지각있는 판단이란 내가 모르는 것까지 판단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깨닫고 움직여라. 깨닫는 것이 먼저다.


reslise 깨닫다, 알아차리다. 인식(자각)하다. 자각(自覺)은 현실을 판단하여 자기의 입장이나 능력 따위를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자각은 깨달음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고, 내가 모르는 길이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자각이다. 문 닫힌 창고에서 백날 물건을 찾아봐야 찾을 수 없다. 물건은 문 밖에 있다. 문을 열어야 찾을 수 있다. 문을 여는 행위는 실천이다.


자각은 안 해본것, 모르는 것에서 일어난다. 과거에서 아무리 찾아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 과거는 문 닫힌 창고다. 문을 열고 나와야 찾을 수 있다. 자각은 미래에서 일어난다. 현재에 발을 붙이고, 미래를 향할 때 자각이 찾아온다. 비로소 찾아다닌 물건이 보인다.


내가 상대를 알고 있다는 생각하는 오만

거기까지 안다고 생각하는 편견

오만과 편견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자각을 통해 오만과 편견이 깨진다.


집중하는 것에 먹이를 준다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안 하게 된다.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는 것도 게임을 하고 싶다는 혹은 게임에 먹이를 주는 행위다. 하지 말아야지. 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해야 할 것에 집중한다. 집중하는 것에 먹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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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빠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아빠는 우리가 뭘 하려고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길 원했다. 이런저런 일들이 생길 수는 있다. 그것을 알고 시작해라. 내 생각은 이렇다. 그렇지만, 너의 생각을 존중한다.


어릴 때는 그것이 방치라고 생각했다. 다른 부모들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학원을 알아봐주고, 세게문학전집도 사고, 학교도 정해주는데, 우리 집은 왜 내가 알아서 다 해야 하는지 불만이었다. 돈이 없는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희한한 건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아빠는 정말 없어서 못 해줬는데, 요즘은 없어서 못하지는 않는다. 있지만 절제하고 참아야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지금 부모들의 양육이 더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잘 해주고 싶고, 잘해줄 수도 있는데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조바심을 인내로

간섭을 자율로

불안을 믿음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느 곳에서든 잘 살기 바란다. 엄마가 없어도 살아갈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매번 참는다. 다 해주고 싶은 것을, 바로바로 해결해주고 싶은 것을, 다 먹여주고 싶은 것을 참는다. 참으려고 공부한다. 공부해야 알게 된다. 알아야 뭘 하든 바르게 할 수 있다.


학원이나 문제집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질서와 규칙을 알려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기본윤리를 알려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제대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기 위해 공부한다. 아이들이 커가듯 내 생각도 커져야 한다. 엄마의 생각이 바로 잡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눈높이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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