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누군가 나에게 패턴이 있냐고 물었다.
패턴이라고는 뜨개질할 때 무늬밖에 모르는 나는 패턴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행여나 그 사람이 내 말을 믿지 못할까 서둘러 말을 보탰다.
-서스펜스소설 같은데 보면 암살자가 타깃을 정하고 오랜 시간을 거처 잠복하며 그 사람의 패턴을 파악하잖아요. 그 사람의 일상패턴을 알면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으니까 행동을 정할 수 있죠. 시간관리에 철저했던 철학자 칸트라면 쉬운 타깃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마 예측불가할 거예요. 하루도 같은 적이 없거든요. 그때그때가 달라요. 아무리 잠복을 오래 해도 저의 패턴을 찾을 수 없을걸요.
말을 하며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나는 보이지 않으니.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예의를 가득 담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 후로 패턴에 대한 생각은 저만치 밀어 두고 살았다.
-저는 힘든 일이 있으면 글이 잘 나와요. 그래서 일부러 일을 어렵게 만들 때도 있어요. 혼자 비극의 여주인공 놀이를 하기도 해요.
-그게 작가님의 글패턴이네요.
-네? 그게 무슨.
-작가님, 생각해 봐요. 요즘 글을 못 쓴다고 하셨죠? 왜 그럴까요? 이야기초반에 작가님은 아무 일도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편안한데 글을 못 써서 고민이라고 말하셨잖아요. 저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행불행과는 별개로 어떤 영감이 오면 그걸 잡고 글을 쓰거든요. 그게 제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 같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어떤 일이 있어야 그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야 글이 나온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힘들지 않으세요?
찾았다. 나만의 글패턴 : 나는 고통의 순간에 쓸 궁리를 한다.
정작 주어진 일에 집중하기보다
이걸 어떻게 글로 만들어낼까 머리를 굴린다.
어쩌면 그것은 고통을 고통으로 보지 않으려는
그래서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만들려는
나만의 방어수단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남편이 극심하게 반대하면 그만뒀어요.
아무리 하고 싶은 거라도.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게 정말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때 스쳐갔던 강렬한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것도 작가님만의 패턴이네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음, 지금까지 작가님의 말을 들어보면,
작가님은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매우 적극적인데
늘 중간에서 멈춘다고 했어요.
그 이유가 남편의 반대였고요.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른가요? 어때요?
찾았다. 나만의 생활패턴 : 나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면 만족하며 일어났다.
멀리서 그만 가자는 소리에 몇 번 미련이 남은 듯 고개를 돌리지만,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조금만 더 놀다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떼를 쓰고, 우기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상대를 곤란하게 만든다.
엄마가, 친구가, 남편이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그들이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랐다.
그렇게 가면 그들은 좋아했다.
속이야 어떻든 간에
나는 아주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편지를 쓰겠다고 <엄마의 유산>에 합류했을 때, 내가 고른 키워드는 '고통'과 '착함'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골랐지만, 마치 그들이 나를 선택한 것 같았다. 10개월 동안 '고통'과 '착함'에 대한 글을 썼다.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고치고 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얼마나 많이 가슴이 뛰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글을 썼다.
모르니까 쓸 수 있었다.
만일 내가 고통과 착함의 이면을 알아볼 혜안이 있었다면 쓸 수 없을 것이다.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쓰면서 알았다. 나에게는 고통이 와야만 글을 쓰는 패턴이 있고, 좋아서 하는 일도 누군가의 반대에 부딪치면 그만두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의 말과 행동은 패턴에서 나와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 무겁고 단단하고 거칠어서 안고 가기에 벅찬 이것들을 버리려고 한다.
발목을 잡는 것은 뿌리치고,
매달려 있는 것들을 뜯어내고,
무엇보다 손아귀에 쥔 것들을 손을 펴서 버리겠다.
좌우를 살피느라 정신없던 고개를 고정시키고,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는 것이 습관인 다리에게 바른 길을 알려줘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곳으로 가려한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간절히 바라던,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그곳으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가볍게 자유롭게 간다.
얽혀있던 패턴을 깨뜨린다!!!!!
2025년 12월 엄마의 유산 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똑같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세상 속에서 정신의 빈곤을 겪는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눈물로 써 내려간 엄마들의 12통의 편지가 들어 있는 <엄마의 유산>입니다. 저의 부족한 글 <고통>과 <착함>도 들어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잘 쓰고 싶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억지로 꾸미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하는 말에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엄마의 유산>은 그렇게 엄마들이 묵묵히 세운 정신을 계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