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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다

by 레마누

고사리가 자라는 봄철이면 제주에는 며칠 비가 내리고 안개가 낀다. 그때를 '고사리장마'라고 부른다. '고사리장마'가 끝나면, 온 천지에 고사리가 올라온다. 산간지방도로마다 차들이 세워져 있다. 전부 고사리를 꺾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고사리가 많은 장소는 알려주지 않는다. 저마다 자신만 아는 고사리명당자리가 있다.


제라하게 (*제라하다 : 최고로, 제대로의 제주방언) 고사리가 많은 곳에는 뱀이 많았다. 뺄라지게(뺄라지다: 유별나다, 남과 다르게 행동하다) 혼자만 아는추룩 하면서 곶자왈 깊숙이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눈앞에 있는 고사리만 보면서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을 잃고 귀눈이 왁왁하게 된다.


출처 : 픽사베이


고사리철에는 집집마다 마당에 고사리를 삶고 말린다. 바짝 말린 고사리를 냉동실에 넣으면, 그해 제사준비가 끝난다. 부엌에서의 서열은 어떤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 집 서열꼴등인 나는 주로 야채를 다듬는다. 콩나물과 시금치는 데치지만, 같은 나물이면서도 고사리는 볶지 못한다.


어머니는 대부분의 음식준비를 큰 형님한테 넘겼지만, 고사리볶음을 할 때만큼은 옆에서 도끼눈으로 지켜본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큰 형님은 책에서 배운 대로 고사리를 볶는다. 반면, 어머니는 스스로 알아낸 본인만의 방식이 있다. 어머님은 그 방식을 큰 형님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만, 큰 형님은 받지 않는다. 고살리냄지를 사이에 두고 고부간의 갈등이 시작된다.


-고만히 내불라. 저스민 안 되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허지 말랜허난. 거 참.


어머니는 양념한 고사리를 약한 불에 은근히 졸이듯 익힌다. 반면 큰 형님은 중간중간 뚜껑을 열어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양념이 골고루 배이게 한다. 어머니는 두고 보라고 하고, 큰 형님은 알았다고 한다.


두고 보다


연구, 관찰 따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일정한 곳에 놓고 일정기간(一定期間) 살피다, 또는 어떤 상황이나 상태 속에 놓고 살펴보다. 실패의 만회, 보복, 복수 따위를 위하여 와신상담 기회를 엿보다.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나 능력이 없어서 일단 뒤로 미뤄놓거나 뒤로 빠져놓고 보다. keep watch over. watch.


두고 보다. :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기다린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다린다


작은 행운에 도취되어 멈추는 자를 두고 본다

하는 것보다 도드라진 성과를 주고 다음 행동을 두고 본다

기회를 주고 두고 본다.


둔다 : 유혹, 함정, 덫, 시간

유혹 : 가장 원하는 것의 형태로 나타남. 매혹적인 것. 더러운 것을 감추려 좋은 포장지를 쓰고, 향수를 뿌린다

함정 : 몰아넣음, 반드시 그곳에 갈 수밖에 없게 만듦. 치밀하게 맞아떨어짐.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일이 척척 풀림 -> 스스로 이룬 거라 착각하게 만들어서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면 성공

: 익숙한 공간에 익숙한 사람들, 물건, 교묘하게 위장함. 방심하는 순간 빠지게 됨.

시간 : 만회, 복수를 위해 필요함.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함. 단, 예전과 똑같아선 안 되고,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한. 개인의 역량에 확연하게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짐.


시련과 역경 앞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나타난다.

위기상황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느냐는 위기 상황이 되어 봐야 알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누구나 멋진 말,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다. 다짐하고, 맹세하며 큰소리친다.


영웅은 말없이 행동한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다. 영웅은 영광과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다. 찬사를 기대하지 않는다. 영웅은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반면 소인은 시련에 화를 내고, 역경을 외면한다.

겉을 키우는데 급급했던 소인은 제멋대로 커진 허상을 실제의 자신이라 믿고 살다 시련을 만나 쪼그라드는 자신을 본다. 그것은 매우 불쾌하고 기분 나쁜 일이다. 자만과 오만으로, 타인의 고통에 냉담했던 소인은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타고 넘을 힘이 없다.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은 약한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행운 앞에 성실한 자는 무릎 끓고 감사한다.

그의 일상은 행운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는 행운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행운이 과도하면 두려워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몸집을 키우려 한다.


자신의 그릇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남의 그릇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매일 똑같이 성실하게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보면 큰 그림들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있다.


반면 자만하는 자는 행운이 오지 않을 때는 오지 않는 행운을 원망하고, 우연히 행운이 찾아오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만하는 자는 자신이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 감사할 줄 모른다. 작은 성과에 만족하고, 기뻐한다.


자만하는 자는 자신의 크기에 관심이 많다.

이 정도면 됐는데,

저 사람은 나보다 못났는데, 왜 되는 거지?

나는 언제 될까?


결과에 집중하느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자만하는 자는 자신의 거대한 꿈이 목표가 자신을 이뤄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매번 그를 찾아오지만, 꿈만 꾸고, 실행하지 않는 자에게 실망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자만하는 자는 간장종지 같은 그릇에 바다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고 본다'라는 말에 빠져 있다.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라며 소리쳤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무섭다. 너무 무섭다. 그래서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조심스럽다. '두고 본다'라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일어날 일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 무섭다. 두고 보다 손을 놓을 것 같다. 두고 보다 돌아설 것 같다. 두고 보다 잊힐 것 같다.


책을 읽다 말고, '두고 보다'라는 말에 꽂혔다.

뭘 두고 보나 생각해 보니 내가 두고 보는 건 고사리였다.

사람도 고사리 익히듯 가만히 놔두면 될까?

알아서 익어가는 고사리처럼 그렇게 두고 보면 언젠가 드러나는 걸까?


굳이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드러날 일은 드러난다. 이제 그것을 믿기로 했다. 나와 상관없는 그러나 눈에 보이는 그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고사리는 약한 불에 은근하게 끓여야 한다. 단, 잊어버리면 안 된다. 가스불에 고사리가 있다는 것을 잊으면 고사리는 졸아서 바닥에 달라붙고, 냄비가 탄다. 신경은 쓰되, 신경이 오래 머물지 않게 한다. 어머니는 가스불 앞을 지켜냈고, 저녁에 푹 퍼진, 양념이 잘 배인 고사리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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