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철수 엄마

착하게만 살면 어떻게 될까?

by 레마누

삼촌, 하영 아파쑤광?

어따게.

근디 무사 누웡만 살맨?

모르켜. 힘이 어서. 일어날 힘이.

손지들이 기다렴쑤게.

아고. 손 안에 든 자식이라. 지네 커졌댄 이젠 나 뵈리지도 안 헌다

아니라. 경해도 할망밖에 모르매

난이. 이제까정 헛산 거 닮아.

아들 셋 낳아그네 잘 키우고, 시어멍, 아방 건사하고,

동네에서 부자소리 들으멍 살아시민 됐주. 누게가 삼촌헌티 헛살았댄 험니까?

하다 그런 생각은 허지도 맙써. 삼촌 완전 잘 살아서.

게메. 나도 경헌줄 알아신디 아닌 거 닮아.

속 시원히 말 못한 것들이 막 하영 있쩌.

이걸 다 고르고 가살건디. 속을 베려보민 시커멍헌다.

창지머리 어신 것들은 그걸 몰라

아명 고라도 몰라그네 속솜해진디 잘못헌거닮아

싸우멍 튿으멍 경해도 고라야 알아실건디.

고랑 가고싶은디

나가 억울해그네 어떵 갈거니.


출처 : 픽사베이


철수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제일 착한 사람이다. 그런데, 치매에 이어, 뇌졸증으로 쓰러진 채 병원에 있다.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이기적인 면이 있고, 악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것들도 있다. 그런데 착한 사람은 그걸 참는다. 참고 한다. 왜 그럴까? 마음을 숨기고, 몸이 힘들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뭘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행동한다.

그래서 늘 가슴을 친다. 답답해서 가슴을 친다.

마음은 오른쪽으로 가려는데, 오른쪽은 쳐다도 보지 말고,

왼쪽으로만 가야 한다니 마음이 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네"라고 대답은 잘하지만,

얼굴은 늘 어둡거나 풀이 죽어 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만 착할 뿐이지, 정작 자신은 홀대한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줄 모른다.


철수네 엄마는 평생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동네에서 소문난 부잣집의 맏며느리로 살며, 시동생 6명을 건사했다. 철수네 아버지는 유명한 난봉꾼이었다. 동네 다방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철수네 엄마는 고된 밭일을 하면서도 아들 셋을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혼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손주 셋을 데리고 들어온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철수네 엄마는 어린 손주 셋을 업어 키웠다.


여전히 정정한 시부모님과 늙어가며 잔소리만 늘어난 남편, 이혼한 아들과 지독히도 말을 안 듣는 손주들까지 철수네 엄마 등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 그 짐들을 50키로도 안 되는 철수엄마가 다 짊어지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철수엄마는 그 말이 안 되는 것을 해냈다. 오랫동안. 그래서 사람들은 철수엄마만 보면 착하다고 했다. 장하다고 했다. 나라에서 주는 상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철수엄마는 병실에 누워 있다.


이번 추석에 친정에 내려갔을 때 철수엄마의 소식을 들었다. 우리 엄마도 살아 있었으면 철수엄마처럼 늙어갈 것이 뻔했다. 엄마 역시 철수엄마 못지않게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엄마가 빨리 돌아가셔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앞부분은 철수엄마를 만났다고 상상하고 썼다. 평소에 말수가 적었던 철수엄마는 이제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정신이 돌아왔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처럼 바보같이 살지 마. 착하게 살지 마.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9화귀눈이 왁왁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