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아, 진짜. 쟤가 막 이렇게 해요
날 거슬라햄시녜. 내불라게. 경허당 말테주.
입술 삐쭉거리며 씩씩대는 아이에게 제일 나쁜 말은?
너 왜 그래?
속상해 죽겠다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네가 잘못했네.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 화장한 얼굴로 담배 피우는 학생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은?
학생이 그러면 돼?
밖으로 돌던 사람이 맘 잡고 집으로 들어올 때 하면 안 되는 말은?
뭐 하다 이제 들어와?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이 나가는 순간 상황이 바뀐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일수도 있고, 제발 그 말만은 하지 말아 줬음 하는 말을 기어이 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이지만, 힘이 있고, 무게가 있다. 말은 맘을 달래기도 하고, 흔들기도 하고, 아프게도 한다.
말에도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하지 말아야 할 때 하면 말의 의미가 퇴색된다. 바르고 옳은 말도 시도 때도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말을 하는 사람의 진심이 전달되려면 듣는 사람과의 교감이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은 말의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나와 상관은 없지만, 말을 걸어야 할 때는 최대한 상대방도 납득할만한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선입견을 갖고 나오는 말보다 행위자체를 놓고 말을 하면, 반박이 불가하다.
우리 집은 골목에 있다. 오며 가며 사람들이 쉬어가기 좋게 안으로 들어와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담벼락에서는 학생들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 근처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학생들에게 우리 집이 담배피우기 좋은 명소로 소문이 났는지,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에 우르르 몰려와 담배를 피운다.
예쁘고 착하게 생긴 아이들의 손가락에 담배가 끼워져 있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남편이 있을 때는 큰소리로 혼을 냈다. 아이들은 건성으로 고개를 숙인 후, 꽁초를 버리고 갔다. 나 혼자 있을 때는 학교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사진을 찍으며 혼을 내서인지 한동안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담벼락에는 여전히 꽁초들이 있었고, 나는 주기적으로 청소하며 구시렁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아뿔싸. 여학생 3명이 골목에서 또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짧아도 너무 짧은 교복치마, 진한 화장, 부풀린 머리, 큰 키와 예쁜 얼굴.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이들이었다.
"학생들."
최대한 다정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혹시 담배 다 피우고, 여기 버리고 갈 거예요?"
"녜?"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전투대세에 돌입했던 아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아니요."
(활짝 웃으며)
"정말? 담배꽁초 안 버릴 거예요?"
"녜. 저희가 줍고 갈게요."
"아, 너무 고마워. 내가 여기 청소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거든. "
"아, 죄송합니다."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아이들이 인사했다.
"그리고, 미안한데, 다른 데서 담배 피우면 안 될까? 여기 초등학생들이 많이 살거든. 보기에 좀 그렇잖아?"
"아, 네.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몇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오다 문득 '담배꽁초를 가져갔나?'생각이 났다. 그래서 담벼락을 살폈는데, 깨끗했다. 주변에 있던 쓰레기까지 치우고 간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만일 그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만 하고, 꽁초를 버리고 갔다면 나는 무척 속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약속을 지켜줬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작은 일에 약속을 지키고,
처음 보는 어른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아이들이라면,
지금은 비록 밖에서 맴돌지 몰라도 언제든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고, 불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어찌할지 몰라 제일 쉬운 담배로 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날 거슬라하고 있다."
안 그래도 잔뜩 화가 나 있는데, 건드리기만 해 봐. 나 폭발할 테니까.
그렇게 맘먹고 있던 동생을 할아버지는 사랑으로 대했다.
뭘 해도 오냐오냐하며 웃었다.
건드리면 다 죽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건드리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의 외침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말은 험하지만, 사실은 저도 어쩔 줄 몰라서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럴 때 애매하게 말을 걸면 그 말이 도화선이 된다. 불이 붙으면 무서운 속도로 번진다. 그래서 불 붙이면 안 돼.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면, 너 죽고 나 죽고가 된다.
"내불라게"
가만히 놔두라는 것은 방치가 아니라 믿음이다. 저러다 말겠지. 그럴 아이가 아닌데 그러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 그것이 해결되면 돌아오겠지. 하는 믿음이 깔려 있다. 따라서 할아버지는 동생을 내불었다. 몸도 마음도 마음껏 돌아다니게 내불었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제 하고픈대로 살던 동생이 어느 날인가 물었다.
언니, 나 어떡해?
그때가 말을 들어줄 타이밍이다. 말을 해도 먹힐 때다.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하는 말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독이 된다. 하지만, 간절히 원할 때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때 하는 말에는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친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던 동생이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집이 최고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경 허당 말테주."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정말로 그렇게 하다가 말았다. 동생은 누구보다 착실한 어른이 되었고, 두 아이를 키우는 멋진 워킹맘으로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끔 만나서 그때 얘기를 하면, 깔깔거리며 웃는다.
집을 나갔다 돌아온 동생을 공항에 데리러 간 적이 있었다. 잔뜩 기가 죽은 동생에게 맛난 저녁을 사주고 집에 데려와 이불을 깔아줬다. 동생은 푹 자고 일어나 다시 예전의 동생으로 돌아왔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하지 않으려고 하는 말을 일부러 다그쳐서 들을 까닭이 없었다.
돌아왔으니 된 거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동생이 그때의 일을 입에 올렸다
큰 일도 지나고 나면 안주거리가 된다.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동생은 경허당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