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린 선생의 추천으로 내가 시문학사에서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때, 우리나라에서는 63빌딩이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시를 너무 쓰고 싶어 함동선 선생이 계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들어갈 때도 63빌딩은 여전히 제일 크고 높았다.
노량진 대성학원에서 삼수하던 친구와 술을 마시고, 그의 남루한 하숙방에 누웠을 때, 좁은 창으로 붉은빛이 깜박이며 들어왔다. 저게 뭐냐고 묻자 63빌딩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저 불빛 때문에 자주 잠에서 깬다고 했다.
“그럼 안 되지. 내가 저 63빌딩 없애 줄게.”
지방에서 유학 온 내게 안 그래도 63빌딩은 그쪽으로 더는 가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로 여겨져 눈엣가시 같은 상징물이었다. 사랑하는 친구의 성공적인 삼수 생활을 위해 쓴 시가 바로 「63빌딩」이었다.
아주 오래되고 이상한 얘기지만, 우리나라에 63빌딩보다 더 높은 건물이 생기면서부터 난 시를 쓰지 못했다. 더 이상 시가 써지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의 첫 행조차 시작할 수 없었다. 큰 변화라면, 학교를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만큼 바빠졌고, 서울 생활이 만만해졌다는 것이다.
그때 나이가 스물일곱이었으니 30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구차한 변명 다 차치하고, 그 긴 세월 시를 쓰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였으리라. 나의 글쓰기 실력과 시를 대하는 나의 소양과 살아온 나의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시를 잊고 살던 내게 지난해부터 작은 생각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높은 빌딩을 보려 고개를 들지 말자. 대신 땅을 내려다보고, 눈을 맞춰 사람을 보자.’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인의 시선으로 시를 대하자는 생각이 깊어지자 행운처럼 시가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40편이 넘는 시가 새로 써졌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좁은 이마, 불량한 눈빛을 가진 내게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주고, 등단의 기회를 준 《시와경계》의 최광임 발행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나의 졸작에 과분한 사랑과 평을 실어주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이승하 교수께 감사드리며, 더 치열하게 시를 짓겠다는 약속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