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 가운데 하나는 약을 챙겨 드시는 노인들의 모습입니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은 물론이고,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각종 영양제와 건강보조제까지 그 종류와 양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알약과 캡슐 약이 담긴 봉지를 옷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시간을 맞춰 복용하는 모습은 마치 약이 일상의 중심이 된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많은 분들이 약을 많이 먹어야 비로소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신 듯 보이기도 합니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약 이야기로 흘러가곤 합니다. 어떤 약이 관절에 좋더라, 어떤 영양제가 혈액순환에 탁월하더라, 전립선에는 이것이 좋고 눈에는 저것이 좋다며 각자의 경험담을 풀어놓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약 이름을 줄줄 외우고, 어느 회사 제품이 더 효과가 있는지 비교까지 곁들입니다. 그 모습은 때로 제약회사에서 나온 세일즈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마음이 앞서 그러겠지만, 듣고 있노라면 씁쓸한 미소가 지어질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창 너머로 작은 뜰과 화단이 보이는 조용한 한정식집이었습니다. 계절 나물이 담긴 반찬과 따뜻한 국,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습니다. 우리는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그릇을 말끔히 비웠습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자마자 친구는 작은 가방을 열더니 약봉지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손바닥 위에 알약을 한 움큼 올려놓았습니다. 오메가 3, 칼슘, 비타민 C와 D는 물론이고 이름조차 생소한 외국산 영양제까지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이며 물과 함께 알약을 삼켰습니다. 정갈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마친 직후, 한 움큼의 영양제를 복용하는 모습은 제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약을 많이 복용하면 오히려 속이 상하지 않을까?”
제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답했습니다.
“몸에 좋다니까 먹는 거지. 뭐.”
그 짧은 대답 속에는 나이가 들수록 몸이 여기저기 약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마치 약이 건강을 보장해 주는 수표라도 되는 양, 그는 그 알약들에 크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그것은 불안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약을 오남용 하시는 분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건강 정보에 귀가 얇은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일흔에 가까운 한 여성분도 그러한데, 누군가가 무슨 약이 몸에 좋다고 말하면 망설임 없이 그 약을 구입해 복용합니다. 관절약, 눈 건강 영양제, 혈액 순환 개선제에 대해서 누군가가 새로운 약 이야기를 하면 복용하는 약이 있는데도 불고하고 또 다른 제품을 마련합니다. TV 홈쇼핑에서 소개하는 건강보조제도 빠짐없이 주문하여 드십니다. 그녀에게 약은 건강에 대한 불안을 진정시키는 위안이자, 건강에 대한 염원을 해결해 줄 존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해롭다는 뜻입니다. 약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의사가 필요에 따라 처방한 약은 분명 치료의 도구가 됩니다. 하지만 남이 좋다고 하여 덥석 집어 든 약이나 영양제는 자칫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며, 필요한 영양소 또한 다릅니다. 그럼에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믿고 복용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복용한 약이 몸에 들어가면 위를 지나 간과 신장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약의 성분이 강하거나 너무 많이 복용하면 위 점막이 손상되어 속 쓰림이나 위염, 위궤양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간은 몸속에서 약을 해독하는 중요한 기관인데, 여러 가지 약을 오랫동안 함께 복용하면 큰 부담이 쌓이게 됩니다. 특히 노화로 인해 이미 기능이 약화된 간과 신장은 약물의 무게를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간 손상이나 신부전과 같은 심각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건강을 위해 먹은 약이 오히려 몸에 부담을 주고 건강을 해칠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약을 먹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조차 몇 번 복용하다가 중단하곤 합니다. 영양제나 건강 보조 식품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를 유난히 아껴주시던 형님께서 매년 가을이면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먹어보려 했지만, 몇 번 복용하고 나면 끝내 계속 이어나가질 못했습니다. 제 몸이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 정말 중요한 것은 약이나 영양제가 아니라 기본에 충실한 생활입니다. 규칙적인 생활, 무리가 가지 않는 꾸준한 운동,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 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건강의 조건이며, 값비싼 약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건강은 어느 날 갑자기 약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습관 속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병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건강의 답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이며,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